잘 먹는 이야기

by 희량

인생은 새옹지마다. 위가 아프니 게으른 몸을 움직여서 정성껏 먹을 동력과 당위가 생겼다. 나태함으로 굳어진 도시인은 간편한 가공식품에 한없이 익숙해졌지만, 유전자에는 나고 자라며 먹어온 집밥이 선명히 기록되어 있음을 안다. 내 뒤에는 밥과 국과 반찬을 기쁘게 먹었던 시간들이 길게 늘어서있다. 나는 본래 정갈한 입맛을 가졌다. 나물과 야채와 두부와 버섯을 사랑하고 삼삼한 간을 즐긴다. 지금 나는 음식을 공장에서 만드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곧 나의 본질을 열심히 되새기기로 마음 먹었다.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왔다. 무얼 먹을 때마다 배가 콕콕 쑤시고 아파서 위기감을 느낀 참이었다. 이제는 미룰 수 없다. 귀찮으면 건너뛰거나 아무거나 먹으면서 위를 괴롭혀온 시간을 배상해야 하는 시점이다. 커다란 양배추를 하나 사왔다. 생각보다 묵직한 것이 속에 꽉꽉 눌러차있는 듯했다. 양배추를 쪄서 본가에서 가져온 쌈장과 함께 싸먹으니 새삼스럽게도 황홀한 맛이다. 양배추는 이렇게 달고 감칠맛 나는 야채였는데, 오랫동안 짜장면에서만 마주친 것 같다.


그동안 미역국도 끓여보고, 참치야채죽도 쑤어보고, 감자도 조려보고, 된장찌개도 끓여보았다. 귀찮음은 한순간이지만 뿌듯함의 여운은 길었다. 요리 실력이 뛰어나진 않지만, 형편 없지도 않았다. 찾아본 레시피에 듬성듬성 없는 재료들이 많아도, 적당히 변주를 주어가며 냉장고 상황에 맞출 줄 알았다. 레시피에는 언급하지 않았던 후추를 살짝 뿌리는 용기도 가졌다. 아, 이러다 한식 조리사 자격증까지 쟁취하는 거 아냐? 김칫국도 거하게 마셨다.


레시피를 구경하는 일이 재밌어졌다. 레시피 어플도 냅다 깔아보았다. 원래는 ‘만개의 레시피’를 검색해서 보다가, ‘우리의 식탁’이라는 어플이 눈에 들어왔다. 디자인이 깔끔하고 레시피도 단정해서 자꾸 들여다보고 싶었다. 50개가 넘는 레시피에 책갈피 표시를 해두었는데, 모두 한번씩 요리해보겠다는 거창한 다짐도 세웠다. 내일은 순두부달걀국을, 그 다음날에는 양배추 덮밥을 만들어보기로 마음 먹었다. 야채와 버섯과 두부의 맛은 얼마나 다채롭고, 또 요리법도 얼마나 다양한지. 경이로운 일이다.


예고편만 보았는데도 마음 속에 강렬히 남은 드라마가 있다. 왓챠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라는 드라마인데, 시한부라는 아주 슬픈 주제이지만 깨끗한 부엌을 배경으로 정성 들여 만든 건강한 식사에 눈길이 갔다. 예고편에 등장한 간장 없는 하이얀 잡채가 자꾸만 생각이 났다. 무해하고 순수해보이는 그 잡채를 어찌나 먹어보고 싶던지. 배우 한석규의 담담한 나레이션까지 섞이니 차분한 분위기가 시끄러운 도시인의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요리엔 관심도 없으면서, 깔끔한 요리 영상을 감상하는 걸 좋아했다. 말 그대로 감상이었다. ASMR 영상을 보고 들으며 안심을 찾는 것처럼, 분주하지 않고 느긋한 요리 과정과 간간이 들리는 부엌의 소리가 좋았다. 그래서 참고하지도 않을 요리 영상을 많이도 찾아보았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음식을 즐기는 방법엔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야채를 만지고 다듬는 무념의 시간, 색색의 재료가 구성하는 장면, 나박나박 썰고 휘리릭 볶아내는 소리, 점점 형체를 갖춰가는 맛있는 냄새, 이 모든 과정이 모여 탄생한 맛. 오감을 가득 즐기는 시간이다. 요리는 삶을 만끽하기 위한 아주 좋은 방법인 듯하다.


우리가 요리를 해야 하는 이유는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라고 말하겠다. 이 말은 도시에서 새롭게 조명될 필요가 있다. 오감을 누리는 요리의 시간과 하루의 단정한 식사는 멈춤의 시간이다. 언제나 팽팽히 흘러가는 서울의 공기 속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똑바로 응시하고 챙기는 시간이다. 그래서 요리는 현대인이 지나치기 쉬운 숨겨진 문이다. 나는 지금 이 무거운 문을 조금씩 열고 있다. 이 다음 마주할 문은 ‘아침 먹기’다. 의사 선생님이 약은 꼭 삼시세끼와 함께 챙겨먹으란다. 내게는 어려운 주문이다.


그제도 야채와 버섯과 두부를 한바탕 사왔다. 요리하며 겸사겸사 야채 위주로 채식을 ‘또 다시’ 시도해보는 중이다. 육식을 완전히 삭제하진 못했지만, 고기가 과포화된 식탁을 덜 마주친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았다. 가끔은 식물과 동물의 죽음으로 생을 이어가는 일이 슬프게도 여겨지지만, 바꿀 수 없는 일에 매진하지는 않기로 했다. 물론 축산업을 거친 동물을 먹는 일은 자제할 수 있지만! 부디 앞으로도 꾸준히 채소를 만지며 요리를 이어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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