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의 시간 2.

헐거운 연결을 원하는 (극 I인) 나와 낯선 사람

by 라영이


내 자리는 창가 쪽이었다. 하지만 좌석에는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실례합니다. 여기 제 자리 같은데, 티켓 한번 확인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라고 여쭈었다. 앞줄에 앉아야 했던 아주머니가 자리 배치를 착각하셨다고 했다. 곧이어 그분이 내게 자리를 바꿔줄 수 있냐고 부탁하셨다.

나는 장난스러운 미소로 “에이 어머니 안 돼요.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귓속말하듯 속삭이며) 혹시 가다가 죽을 수도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아주머니께서 “이런 건 젊은 사람 말을 들어야 해!”라며 유쾌하게 받아주셨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이전과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이전이라면 내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있는 상황부터 약간 마음에 짐이 되었을 것이다. 마땅한 일임에도 내가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어야 하고, 그 말이 요청하는 말이며, 그 와중에 좌석을 바꿔달라는 부탁도 부담스럽고, 그것을 거절해야 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단계가 조금도 내게서 에너지를 앗아가지도 않고, 부담스럽지도 않으며 평안이 깨지지도 않았다. 심지어, 능청을 떨며 위트 있게 상황을 대처했다. 나로서는 내가 무척 많이 변화했다고 생각하는 일이었다. 변하겠다는 목표 설정과 실천은 없었다. 지난 몇 년간 몸이 아프면서 마음에도 힘 빼기, 물 흐르듯 나를 거스르지 않고 살기, 내 감정 존중하기에만 집중했다. 그런데 목표 설정과 실천으로 해내겠다 해도 좋을 법한 일들이 자연스러운 평안의 열매로 맺혀있는 게 신기했다.

알고 보니 세 분은 공항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다. 연배가 비슷해 대화가 잘 통했고, 이내 친해져 함께 앉아가길 원했던 것이다. 그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내 앞자리에 혼자 앉아계신 아주머니의 여행이 더욱 궁금했다. 물론 나에겐 질문할 만큼 열정은 없었다.

내가 보통 비행기에서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는 성격임을 떠올리면, 이번 경험은 이례적이었다. 사실 나는 인간관계에서 깊은 관계 몇몇을 제외하고는 헐거운 연결을 원하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아주머니들과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며, 아주머니께서 내가 화이트와인에 사이다 섞어 마시는 것을 따라 해보고 싶어 하실 때 안내도 하고, 내가 와인을 그렇게 마시는 이유와 좋은 점도 설명하고, 아주머니의 건배 제의에 동참도 한 것은 특별한 사건이었다. 소소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그들의 친절함과 따뜻한 태도는 나를 스멀스멀 녹아 함께 어울리면서도 평안하게 갈 수 있게 해 주었다. 물론 내 개인의 시간엔 말을 걸지 않으시고 내 개인의 정보를 묻지 않는 어르신들의 존중이 더욱 평안을 안겨준 것 같다.

대화 중, 내가 예전에 시각장애인과 비행기에 동행을 자주 하여 복도 자리를 주로 양보하고 안쪽이나 창가를 타는 습관이 생겼다는 경험을 이야기하자, 옆자리 아주머니가 “NGO에서 일했어요?”라고 물었다. 깜짝 놀랐다. NGO라는 단어를 같은 분야 연구자들 외의 사람에게서 듣는 건 드문 경험이었다. 알고 보니 그분은 관련 지원기관에서 일하다 은퇴한 분이었다. 짧은 대화였지만, 평소라면 관심을 보이지 않고 넘어갔을 이야기가 이번엔 유독 따뜻하게 다가왔다.

비행이 끝날 즈음, 나는 감기 기운이 올라 약을 요청했지만, 승무원은 진통제만 있다고 했다. 그때 아주머니께서 본인의 감기약을 건네주시며, 약 먹을 물까지 직접 요청해 주셨다. “뜨거운 물에 차가운 물도 섞어야 마실 수 있어요,” 하시며 세심히 챙겨주시는 모습에 마음이 뭉클했다.

내리기 전, 아주머니들은 본인들이 패키지여행이라 괜찮다며 비행기에서 안 먹은 빵과 고추장을 혼자 긴 여행을 하는 나에게 챙겨주셨다. 마치 고향집에서 운전하며 올라갈 때 차에 마지막까지 뭐 하나 더 넣어주는 할머니처럼.

우리는 이름도, 연락처도, 귀국 일정도 모른 채 각자 길을 떠났다. 하지만 공항에서 헤어지기 전, 나는 그분들을 찾아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짧은 시간 동안 내가 느꼈던 따뜻함은 이번 비행을 아주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특별한 비행, 조금 낯선데 분명 자연스럽기만 했던 나.
이번 여행이 조금 낯설지만 나에게 자연스러운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싹텄다.


2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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