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의 대가

아무도 믿지 않는 이들

by RayShines

사람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이나 사회적 시스템을 믿도록 진화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어느 정도는 의심을 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도록 진화하기도 했습니다.


의심의 뜻을 찾아보며 “확실히 알 수 없어서 믿지 못하는 마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뭔가에 대해서 명확히 알 수 없을 때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일단 믿지 않는 것을 디폴트 값으로 설정하는 것이겠지요.


이렇게까지 단순화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인간의 뇌에는 두 가지 작동 방식이 있다고들 합니다. 이 구별은 시스템 1과 시스템 2, 뜨거운 시스템과 차가운 시스템, 충동적 뇌와 이성적 뇌, 변연계와 전전두엽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립니다. 이름은 다르지만 전부 충분한 숙고 없이 빠르게 반사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과 충분한 검토를 거친 뒤 느리게 작동하는 시스템이 있다는 것입니다.


평균적인 시스템 1과 시스템 2의 세팅도 있을 수 있겠지만, 분명히 사람마다 미묘하게 그 조성이 다를 것임이 분명합니다. 어떤 사람은 별생각 없이 덮어 놓고 남들의 말을 무조건 믿기도 하고, 상황을 무조건적 좋은 쪽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반면 어떤 이들은 아무리 탄탄한 전제가 놓여 있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상대를 절대 믿지 않기도 하고, 상황을 무조건 부정적인 쪽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는 아마도 즉각적 반응을 하게 되어 있는 시스템 1, 혹은 자동화 사고, 혹은 우리 뇌의 오토파일럿에 어떤 회로가 탑재되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무조건 어떤 말이든 믿는 것은 사실 상당히 리스크가 높습니다. 사기를 당하거나 이용을 당할 가능성이 너무 높아지니 말입니다. 이럴 때 아주 오래는 아니더라도 적당한 숙고를 거치기만 해도 그럴 가능성을 줄일 수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무조건 상대를 믿지 않고 의심하는 것은 리스크가 없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사회적 평판을 훼손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뢰라는 것은 상호 주관에 가깝습니다. 서로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눈으로 명확히 보이거나 손에 잡히는 객관적인 실체가 아닙니다. 만약 한쪽이 한쪽을 믿지 않는 것이 명확하다면 신뢰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러면 그런 개인은 고립될 가능성이 꽤 높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과도한 의심은 개인의 정신을 갉아먹습니다. 누군가를 의심한다는 것은 끝없는 불안에 시달려야 한다는 의미이니까요. 영어로 paranoid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 말로는 편집증이라고 해석합니다. 여기서 편은 치우치다, 집은 꽉 잡다는 뜻입니다. 즉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고집스럽게 꽉 잡고 있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paranoid를 조금 더 전문가적 용어로 표현하면 self-referential 하다고 표현합니다. Self는 자기 자신, referential은 ‘관계가 있는’ 정도로 해석됩니다. 즉 ‘모든 것은 나와 관계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즉 ‘나를 둘러싼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에 압도되어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이 나를 이용하려고 한다거나, 나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 삶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을 믿어도 어려운 일들을 헤쳐나가기가 어려운 것이 세상이니까요.


의심하는 자는 미워하고 화내게 됩니다. 혐오와 분노를 뿜어내는 개인에게 다른 개인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을 리 없습니다. 그 개인은 이것을 타인들이 자신을 배척한다고 믿으며 방어벽을 더 높게 쌓아 올리고 더 날카로운 방어구들을 설치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생각을 검증해 볼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타인과의 교류입니다. 고립된 인간은 이 과정이 차단되므로 자신의 생각에만 천착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을 더 공고하게 굳혀 나갑니다. 생각의 장벽은 높아지고 종국에는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됩니다.


영화나 소설을 보면 아무도 믿지 않는 성격 때문에 엄청난 성공을 이뤄낸 이들의 예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렇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이들의 개인적 삶에 뿌리 깊은 고독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혼자 지낼 수는 있지만 혼자 생존하기는 어렵습니다.


혐오와 분노는 답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의 시작이 되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아무나 믿어서는 안 될 것이지만 우리는 신뢰라는 것이 명확히 상호 호혜적 성격을 띤다는 것을 반드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합리적 의심은 우리를 발전시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전방위적, 무조건적 의심은 개인을 파괴합니다. 파괴된 개인은 주변도 파괴합니다. 그런 관계에 놓였다면 파괴당하기 전에 관계를 폐기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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