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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작가 Nov 30. 2022

20211201 수요일: 나의 조울그래프

두번째 입원: 20211130~20211208

입원하고 다음날은 아침에 늘어지게 잠을 잤다. 11시까지 쭈욱 자는데 중간에 보호사님이 아침밥 먹으라는 말을 하러 온 것 같았고.. 하지만 나는 무시하고 쭈욱 잤다. 아침은 약간 우울하고 무기력했다. 일어나자 마자 샤워실로 향해 몸을 깨끗이 씻고 새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이러고 나니 우울한 마음이 조금은 걷히는 것 같았다.


어제 치료진에게 든 부정적 감정은 어느정도 처리가 되었다. 내가 입원 전에 주치의에게 미리 개방병동 가고싶다고 말해뒀으니, 주치의는 나를 위해서 교수님께 그렇게 말을 했을 테고, 교수님도 나를 존중하니까 바로 허가해준거라고.... 걍 닥치고 개방병동에 가자고 마음을 정리했다.


오전부터는 간호사 스테이션에서 어떤 할머니가 자꾸 자기는 입이 말라서 안되겠다며.. 입이 말라 집에 가서 죽어야겠다고 난리를 쳤다. 흠..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 답답함이 많이 느껴졌다.


오늘은 좀 이른 주치의 면담이 있었다. 주치의쌤은 자기가 나랑 작년 입원했을때부터 진료 봤던 기록들을 싹 다 정리해봤다고 말하면서, 오늘은 우리 같이 그래프를 그려볼거라고 말했다. 이런거 기대도 안했는데 너무 좋았다. 그래서 쌤한테 오오~~ 이럼서 박수도 쳐줬다 ㅋㅋㅋㅋ 일단 쌤이 프린트 해오신 내 진료기록물들을 같이 살펴 보면서 작년 7월부터 올해 12월까지 1년 4개월간의 조울그래프를 그려보았다. 그런데 당황스러웠던것이, 주치의쌤이 나한테 이때 이렇게 말씀 하셨던거 기억나세요? 하면 기억이 하나도 안나는거다... 제가 그랬다고요??? 하면서 놀랐는데, 대부분 그때의 기록이란 조증일때의 기록이었다. 나는 왜 붕 떠있을 때의 내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가.... 내가 당황하자, 주치의는 그럴수 있다며... 어떤 사람들은 우울한때를 기억 못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조증일 때를 기억못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프를 다 완성해놓고 보니, 정말 롤러코스터처럼 굴곡이 많긴 많았다. 주치의는 자잘한 굴곡을 제외하고서라도 큰 것들만 봐도 6군데 정도가 보인다고 했다. 이정도면 정말 잦은거라고..... 그래서 내가 치료가 좀 어려운 케이스라고도 했다.





주치의는 내가 저번에 상태가 점점 안좋아지면 안좋아졌지 나아지지는 않는것같아요. 라고 말해서 놀랐다고 한다. 분명 좋아지고 있는데... 나는 점점 더 안좋아진다고 느낀다고 하니... 아마 주치의는 해상도가 높아져서 일거라고 했다. 예전에는 내가 이렇게 굴곡이 많아도 인지를 못했기 때문에 그냥 우울한가보다.. 했을테지만, 이 병원에서 치료 시작하고서는 굴곡진 곳들을 더 자세하게 들여다 보니까 해상도가 높아져서 안좋아진것도 더 눈에 확 띄니까, 더 안좋아지는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했는데, 무척 동의가 되었다. 조울증 진단 받은것도 작년에 입원하고서 부터이니까..... 확실히 치료는 이제부터 시작인건가.. 주치의 말대로.... 우리는 얘기를 나누다가 주치의 콜이 와서 아쉽게 이따가 다시 보자고 하고 헤어졌다. 이따가 다시 할 얘기는.. 쌤이 최근 내 상태가 다시 안좋아진데에 영향을 미친것들이 어떤것이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오라고 했다.





그래서 간략하게 정리


최근 다시 안좋아진데에 영향을 미친 것들


1. 다이어트

극한의 다이어트. 살 못빼면 죽어야지 하고 생각함. 스트레스가 심했다.

먹고싶은 걸 못먹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

살이 안빠지면 어쩌지에 대한 스트레스

살찐 내 모습에 대한 스트레스

단톡방에서 후기 올라오는데 나만 변화 못느낄때 스트레스


2. 회사

일하기가 너무너무 싫다 (일부의 일)

걍 회사 나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

회사에서의 인간관계: 이쁨받고싶음 -> 좌절 -> 소외감 -> 자살충동

회사가 너무 갑갑하다

회사만 안나가도 좀 살 것 같다


3. 엄마

자꾸 살쪘다고 하고, 오빠랑 나를 차별한다


4. 친구 Y

힘들어서 전화했는데 회사라며 뚝 끊고, 나는 화가 났다. 입원전에 전화해도 되냐고 물었는데 받겠다면서 회사 미팅땐 못받는다고 했고 나는 화나서 어차피 월요일이면 나도 너한테 전화안해! 하고 말았다. 이후로 연락안했고, 입원했다는 메시지도 안남겼다.



5. 지치는 것, 무기력한 것

대체 언제까지 이 치료를 지속해야 할지 답이 없고. 나는 이미 너무 지쳤다. 너무 지쳐서 이제 그만 두고 싶다. 그래서 죽어야 한다.








주치의가 생각해보라는 것들에 대해 끄적이고 난 뒤에는 교수님과의 면담이 있었다. 주치의는 바쁜지 교수님 혼자였다. 교수님은 아까 주치의랑 그래프 그린 거 어땠냐고.. 나는 당황스러웠다 말했고, 교수도 덩달아 당황스러웠다말했다. 왜인가 했더니.. 분명 여기 대학병원와서 진료받고 나아진 부분이 있는데 내가 모르겠다고 해서.. 라고 하셨다. 흠.. 뭔가 기분이 나쁘셨나?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고, 교수는 그 일치되지 않는 간극을 한번 맞춰보자고 했다.




그리고 오늘은 아침에 피를 두번이나 뽑았는데 너무 빡쳤다. 첫번째 왔을땐 그러려니 했는데.. 두번째 왔을땐 진짜 넘 빡쳐서..... 간호사가 나한테 어떻게 지내셨냐 물었는데.. 빡쳐서 아무 대답도 안했더니.. 생각중이신거에요? 하시더니.. 나에게 아는척을 하는게 아닌가... 작년에 봤다고... 그땐 단발이셨는데 머리 잘랐네요? 라고 디테일하게 기억하시니 진짜 놀랐다... 와 눈썰미 대박. 그리고 순간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나를 아는 간호사라니... 근데 작년에 나에게 애정을 많이 주었던 ㅈㅇㅈ 간호사는 다른데로 갔는지 이제 없더라ㅜㅜ 은근 서운했다 그 사실이.




주치의가 아까 한번 더 온다고 했는데 안와서 화가 좀 났다. 주치의.. 나한테 거짓말을 했어!!!!!!! 하면서 말이다. 이제 퇴근했을 시간이니.. 안오겠지.. 퇴근했겠지... 도대체 어디에 환자가 그렇게 많으면 그러는것이야!! 역시 오늘도 주치의만 기다리네.. 주치의 바라기....




3인실인 우리 병실에 나랑 다른 한 분만 있다가, 오늘 한명이 더 왔다. 정말 놀란게, 오자마자 먼저 나한테 이름과 나이를 말해달라는게 아닌가.....!! 그래서 조심스레 말도 트고 약간 친해져서 밥도 같이 먹었다. 이 친구는 우울증으로 들어왔다고 했고 나이는 29, 결혼도 했단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여튼 힘들어서 들어왔구나..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갑자기 병동 사람들 몇몇과 말을 트게 되니, 개방병동에 가게 될 일이 조금 아쉽기도 하다. 내가 느낀 폐쇄병동의 사람들은 다들 너무 유약한데 따뜻하다. 내게 알 수 없는 그 따뜻함이 전해져왔다.




오늘 종일 "입이 말라요" 라고 외치던 할머니, 진짜 밤까지 종일 그러네. 도무지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술이 당긴다는건지.. 입이 마르다.. 이 의미가 뭘까 대체.. 무척 궁금하다.. 뭔가 상징적인 의미일까. 아님 그냥 하는 말일까? 모르겠다.




훗, 우리 주치의 ㅋㅋ 퇴근한 줄 알있는데 스테이션에 있더라고. 그래서 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쌤 이동하실때도 또 쳐다봤떠니 갑자기 나를 부르셨다!! 아까 하자던 얘기는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하자며 ㅎㅎ 교수님과 무슨 얘기 했냐고 묻고 갔다. ㅎㅎ 낼 만나면 오늘 안와서 혼쭐 내려고 했더니 다행이다. 나를 잊지 않고 있어서!




같은 병실 새로 온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공감이 가고 좋았다. 얘랑 헤어질 생각을 하니 조금 아쉬워진다..ㅜㅜ 벌써 정들어간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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