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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니펌프 Oct 11. 2020

눈물로 행복 한 남자

우는남자



<A형은 감정에 약하다>고 한다. 굳이 인터넷을 찾아 보지 않아도 스스로 아주 잘 알고있다. 

저녁노을의 발그레한 여운에 취하고, 구름 뒤의 수줍은 달에게 말을 걸고, 시골밤에 쏟아진 별을 그리워한다. 

그 감성을 지닌 책임으로 시도 때도 없이 눈물보가 자주 터지곤 한다. 

예상도 못한 곳에서 맥없이 눈물이 흐르는데 눈물이야 눈이라도 크게 뜨며 환기를 시키면 살짝 넘어갈 수있다. 

하지만 따라서 흐르는 콧물은 치켜올릴 때 나는 소리때문에 주위 사람에게 들통나기 일수다. 

이제 가족들 앞에선 그냥 대놓고 훌쩍이며 말한다. 

"슬프지 않아? 너무 맘아프다~ 그 옆에 휴지 좀..." (훌쩍훌쩍)

내가 다른 남자들과 다른 A형들보다 서너배는 큰 눈물주머니를 갖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소설책만 집중해서 읽어도 울컥이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고교시절 읽었던 <아버지>라는 책은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성실히 살아온 가장이 병에 걸려 홀로 죽음을 준비 하는 이야기다. 아버지는 기차에 앉은 딸에게 

간식을 전해주기 위해 반대편 승강장에서 뛰어내려 위태롭게 철로를 건너온다. 간식만 건네주고는 이내 뒤돌아 뛰어간다. 반대편 승강장 위로 쉽게 올라가지 못해 온몸으로 발버둥치는 아버지를 딸은 모두 보고있다. 작가는 그 장면을 슬프다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눈물을 쏟을 수 밖에 없었다. 잠시 책을 덮고 흐르는 눈물에 자유를 주고 마음것 코를 훌쩍였다. 자식을 위한 아비의 사랑에 위태로움따윈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당신이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곳 인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오직 사랑하는 자식에게 주어야 하는 것만이 최선이고 사명이다. 인간의 자발적 의지 중 가장 강력한 것이 있다면 모성애와 부성애라고 단언코 말한다.   

(이런,지금도 눈이 뻘게지며 코끝이 찡하다. 이건 병이 아닌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도 민망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함께보는 여성은 멀쩡한데 나는 자꾸 코가 찡해지고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아슬하게 눈물이 맺힌다. 

예상에도 없던 감동이라 휴지도 준비 못 한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하물며 스피드하게 달리던 차가 뒤집어지는 액션영화나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영화에는 왜 이런 감동을 숨겨놓은 것인지... 감성을 컨트롤 하기 어려울정도로 대책 없이 눈물이 흐른다. (모두 내 개인적인 감동일뿐 남들은 신나게 잘보고있다.) 

<퍼펙트월드> 는 내가 중학교때 개봉한 영화다. 

영화의 결말쯤 케빈코스트너가 꼬마아이에게 사진을 주기위해 뒷주머니로 손을 옮기는 찰나에 저격을 당하고 쓰러진다. 나는 모아둔 눈물폭탄이 있었다는 듯 퍽!하고 터져 눈밖으로 쉼없이 흘러내렸다. 입에 주먹을 들이밀어야 참을 지경이였다. 

<국제시장>에서 할아버지가 된 황정민이 혼자 방에 들어가 돌아가신 아버지사진을 바라보며 이 가족을 지켜내는 것이 힘들었다고 독백하는 장면.  

<해운대>에서 119구조대 이민기가 양아치같은 놈이지만 본인의 책임을 다하기위해 헬기에 달리 줄을 자르며 바다로 떨어지는 장면.  그리고 영결식에서 이민기가 남긴 손목시계가 우는장면. 

<다만 널사랑하고있어> 에서 남자주인공을 짝사랑하는 여자가 남자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자와 친하게 지내기 시작하고, 세 명의 관계를 불편해하는 남자주인공에게 짝사랑하는 여자가 말한다. 

"뭐가 어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려 노력할 뿐이야!"  

나는 또 울컥! 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가! 생각이야 다들 다르겠지만 사랑이 이루어지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 사랑의 크기를 가늠 할 수있는 장면이었고 엇갈린 사랑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장르를 불문하고 조금만 감정을 건드리면주책 없이 눈물이 나온다. 

50이 넘은 아저씨들이 자주 그런다는데 나는 30이 넘기도 전에 시작됐다. 

중년의 아버지는 아기공룡 둘리가 엄마를 만나는 장면에 울컥해서 남몰래 화장실을 가셨다고 한다.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생기는 노화의 변화라면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젊음이 한 창인 남자에겐 다소 불편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감에 덧칠하 듯 삶을 꾸려가는 방식을 배웠다. 이제는 눈물이 많은 것도 < 나 >로 받아들이기로 

했고 축복받은 감성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꽁꽁숨겨진 감동까지 찾아서 내 것으로 만드는 초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언제나 쏟을 수 있는 눈물도 항상 준비 되어있다. 

그러고나니 영화든 책이든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그 순간이 너무도 행복할 따름이다. 

영화를 자주 볼 시간이 있는 건 아니지만 시간이 된다면 고교시절 일요일을 보내듯이 하루종일 이불을 휘감고 영화만 보고싶다. 맥주 한 잔 정도로 말초신경에 윤활유를 바르고 영화 속 모든 감정을 느끼고싶다 


남자는 테어나서 세 번만 울어야한다는 구시대적 가르침을 과감히 버렸다. 물론 이미 세번을 훨씬 넘게 울어버린 뒤의 결정이만 말이다.

나는 눈물이 많은 남자고 눈물이 날 땐 참는 것 보다 우는게 행복한 남자다.  

창피 할 것이 없으니 홀가분히 감정을 표현하는 지금이 좋다!




눈물이 많은 A형이라면 

굳이 참으려 <꺼이꺼이> 박자 놓친 숨소리로 괴로워하지 마시고 후련하게 놓아주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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