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누군가의 악마였으니
노동연구원 등의 분석에 의하면, 간호계 '태움' 문화, 사업주의 폭행, 기업 오너 일가의 폭언 등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사안들뿐만 아니라, 직장인의 70% 내외가 괴롭힘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태움 문화'란 한국 의료계, 특히 간호사 사회에서 오랫동안 관행처럼 이어져 온 신입 간호사 교육 방식 중 하나로, 정신적 압박과 강한 통제를 동반하는 가혹한 관행이다.
‘신입 간호사를 불태우듯 몰아붙여서 빠르게 일을 배우게 한다’는 의미인데, 용어는 다르지만 일반 회사에서는 소위 ‘갈아 넣는다’라는 표현이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이는 조직이 개인의 감정과 권리를 배제한 채, 성과와 생존을 이유로 인간을 소모품처럼 다루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일부 조직에서는 “버티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암묵적 룰 아래 혹독한 환경을 감내해야만 한다.
'태움이나 갈아넣기' 외에도 직장 내 괴롭힘의 행태는 '언어폭력, 공개적인 망신주기, 고립(왕따), 과다한 업무지시, 업무 배제, 성희롱/성추행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문제는 전체 직장인의 70% 내외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신고('23년 총 10,028건)는 많지 않은데, 그 이유는 신고 후 보복에 대한 두려움과 어차피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자포자기에 있다. (※ 고용노동부의 '23년 직장 내 괴롭힘 실태 조사에서 피해자의 60% 이상이 '두려움 혹은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라는 이유로 신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있다.)
이토록 시리즈 첫 연재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유명을 달리한 내 지인의 사례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 사례 말고도 사회적으로 이슈화 됐던 사건들이 있다.
**2014년 윤 일병 사건 (군대 내 괴롭힘)
**2018년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갑질 사건
**2023년 전영진 사망 사건
**2024년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사망 사건
**2025년 하이브 직원 과로사 및 괴롭힘 의혹 (진행 중)
직장갑질119와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2023년 직장 내 괴롭힘 경험률은 30.1%로, 2019년 44.5%에 비해 감소했다. 그러나 괴롭힘이 '심각하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38.2%에서 48.5%로 증가해, 경험률은 줄었으나 피해의 강도가 높아졌음을 시사한다. 결국, 피해 강도에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목숨을 포기하게 될 만큼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직장 내 괴롭힘은 단순한 갈등이나 의견 충돌이 아닌,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폭력이며, 개인의 정신을 침식시키는 조용한 살인일 수 있음을 우리는 자각, 자성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오랜 시간 배움의 터에서 사회인의 한 사람으로서 제 몫을 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준비하고, 자신의 재량 껏 최선을 다해 회사에 기여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한다. 그런 과정에 상사와 동료로 만난 이들과 적절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계를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그 관계가 위계에 기반한 일방적 지시와 통제, 그리고 권력의 남용으로 변질될 때, 우리는 그토록 갈망했던 ‘성장의 공간’에서 오히려 존재의 존엄이 훼손되는 고통의 경험하게 된다.
직장은 단지 생계를 유지하는 장소가 아니라,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며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적 관계를 맺는 중요한 삶의 무대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괴롭힘은 단순한 스트레스가 아니라, 삶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중대한 위협이다. 때문에 우리는 이제 괴롭힘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조직과 사회의 문제로 인식해야 하며, 이를 방치하는 조직은 더 이상 성과 중심의 성공 신화를 말할 자격이 없다.
진정한 조직의 성장은 성과가 아니라 사람을 존중하는 문화에서 시작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이 근원적으로 갖는 3대 욕구가 있다.
'성욕, 식욕, 수면욕'이 세 가지인데, 여기에 하나 덧붙이면 그것은 '인정욕구'이다.
성욕, 식욕, 수면욕은 일상 가운데 특별한 제약이 없는 한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생활 권리이고 개인이 타인에 의지하지 않고 혼자 해소할 수 있는 욕구이기도 하다. (성욕조차도 그렇다.) 그러나, 인정욕구는 다른 세 가지와는 달리 반드시 타인의 피드백이 있어야 경험할 수 있다.
인정욕구란 '누군가 나를 알아주고, 내 존재나 행복을 가치 있게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심리학에서는 '존중의 욕구(esteem needs)'라고 불리며 매슬로우 욕구 5단계 중 4단계이다.
※ 매슬로우 욕구, 인간의 욕구 혹은 동기는 위계 구조를 가진다는 이론으로써 기본 욕구가 충족되어야 상위 욕구로 올라간다는 구조다. 1943년 아브라함 매슬로우가 발표했다.
1단계: 생리적 욕구 (먹고, 자고, 숨 쉬는 가장 기본적인 생존 욕구)
2단계: 안전 욕구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욕구)
3단계: 사회적 욕구 (친구, 가족, 소속감을 느끼고 싶은 욕구)
4단계: 존경(존중의) 욕구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
5단계: 자아실현의 욕구 (자기 잠재력을 최대한 실현하려는 욕구)
인간은 누구나 '자아실현의 욕구'를 역시 갖고 있는데 매슬로우 욕구 5단계에서 주장하는 욕구의 위계관계를 전제하면, '존중의 욕구'를 해소하지 못하면 '자아실현의 욕구' 역시 실현할 수 없기에 '인정욕구' 역시 가장 본능적이고 근본적인 욕구의 한 가지인 것으로 이해된다.
그럼, 인정욕구가 중요한 이유는 무얼까? 이는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를 이해하면 된다.
피그말리온 효과란 타인의 기대가 실제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심리학 이론인데, 누군가 나에게 큰 기대를 하면 실제로 더 잘하게 되는 현상이다. 흔히 얘기하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속담에 드러난 사람은 칭찬을 받으면 동기부여되고, 행동이 변화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속담에는 왜 다른 동물이 아닌 꼭 '고래'를 등장시켰을까?
이 이유가 상당히 재밌다. 고래는 덩치가 크고 무거워 움직임이 둔해 보이는 동물인데, 그런 고래조차도 기분이 좋으면 물 위로 튀어 오르고, 회전하며 춤추는 듯한 행동을 한다는 의미다. 즉,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칭찬은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의 반대는 '골렘 효과(Golem Effect)'이다.
'골렘 효과'는 부정적인 기대나 인식이 실제로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심리 현상이다. 예컨대, 타인이 "넌 못할 거야", "네 실력으로는 엄두도 못내". "넌 그게 문제야, 실력이 없고 형편없어!"라고 말하거나 그런 뉘앙스를 심리적으로 영향받으면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고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되는 현상이다.
많은 리더십 강의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예시가 이 골렘 효과인데, 피그말리온 효과와는 달리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대화를 통해 동료나 구성원을 위축시키고 무기력에 빠지게 하는 행위이다. 이는 실제 자존감 하락과 요즘 얘기하는 가스라이팅에까지 이어져 자기부정, 부정적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에 까지 빠지게 된다.
자기충족적 예언이란 처음엔 사실이 아니었던 믿음이나 기대가 그 믿음에 따라 행동이 변하면서 결국 현실이 되어버리는 현상으로 피그말리온 효과에 따라 긍정적인 기대는 긍정적인 결과로 부정적인 기대는 부정적인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마치 '거울 효과'와 같이 어떤 시선으로 그를 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실제로 그렇게 변하는 것과 같다.
이토록 시리즈 연재에 중 '01 이토록 두려운 회사', '02 이토록 무서운 당신', '05 이토록 가혹한 당신'에 등장했던 상사 유형이 이 '골렘 효과' 조장하는 분들이었다. 그 결과로 상황은 많이 다르지만 내 지인은 끔찍한 결정을 한 바 있고, 나는 이직이란 가장 소극적인 결정을 내렸었다.
한 가지 지금도 생각하면 뒷목 잡게 하는 얘기는, 그렇게 폭언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뒤로는 “사람이 밉거나 무시하는 게 아니라 ‘일 자체’만을 놓고 지적하는 것이기에 너무 마음에 담지 말라”는 말이다. 언뜻 보면 굉장히 나이스해 보이는 언사일 수 있지만, ‘일’은 대상일 뿐, 그 일을 한 사람의 존재와 분리될 수 없다. 결국 지적의 형태가 폭력적이었다면, 그것은 ‘일’이 아닌 ‘사람’을 향한 상처가 된다.
개인에게 있어 ‘인정 욕구(존중의 욕구)’는 ‘자아실현의 욕구’로 이어지며, 인정 욕구가 충분히 충족되어야 그다음 단계인 자아실현 욕구도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자아실현의 욕구는 자기 계발, 창의적 활동, 인생 목표 추구와 밀접하게 연결되며, 이는 직장인에게 있어 개인의 성장은 물론 회사의 성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개인의 인정 욕구 충족은 조직문화와 인재 육성 측면에서 단순한 배려를 넘어, 전략적으로 세심하게 관리되어야 할 요소다.
이제 '나도 누군가의 악마였으니, 이토록 시리즈'의 마지막 챕터를 쓸 때다.
이전 화에서 언급했던 이 시리즈를 써야 했던 이유는 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였다. 곱든 밉든 글로서 배설하고 다 비운 후에 새롭게 새 마음을 가져야 했기에.
조직문화, 인간관계 회복에 있어 나는 이 한 단어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Apprivoiser (길들이기라는 뜻의 프랑스어)
어른을 위한 동화 <어린왕자, 생텍쥐페리>에서 어린왕자와 여우가 조우하는 내용에서 등장하는 굉장히 의미 있는 단어이다.
어린왕자는 여러 별을 여행하며 다양한 어른들을 만난 끝에 지구에 도착하고, 한 들판에서 여우를 만난다. 어린왕자가 자신의 곁으로 여우를 부르자 여우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길들여지지 않았어, 넌 나에게 아무 의미도 없어." 어린왕자가 "길들인다는 게 뭐야?"라고 묻자, 여우는 “길들인다는 건 관계를 맺는 거야. 나에게 넌 세상 수많은 소년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너와 내가 관계를 맺게 된다면 넌 나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는 거지.” 그리고 덧붙여, "사람들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어. 사람들은 이미 만들어진 물건만 사니까 친구가 없지. 친구가 필요하다면 나를 길들여야 해.”
여기서 '길들이다'는 표현은 단순히 조련하거나 길들이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특별해지는 과정, 신뢰를 쌓는 누적의 시간을 의미한다.
길들임의 과정에 대해서 여우는 이렇게 요구한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자신을 길들이려면 매일 같은 시간에 와야 한다고 말함.
**처음엔 멀리 떨어져 앉고, 매일 조금씩 가까워지며 서로를 익숙하게 만들어가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함.
**여우는 반복적인 접촉과 기다림을 통해 마음이 열리게 된다고 말함. ‘의식(ritual)’의 중요성을 강조.
**이 과정을 통해 서로를 신뢰하고 특별한 존재로 받아들이게 됨.
Apprivoiser(길들이기)의 핵심은 이것이다.
첫 번째. 신뢰의 관계 형성 >> 서로가 특별해지는 과정
두 번째, 반복되는 긍정적인 행동 >> 신뢰와 친밀함을 형성
세 번째, 시간의 축적 >> 지속성 있는 진정한 '관계'의 맺음
결국, 모든 관계는 '길들임'의 과정 위에 세워진다. 하루아침에 신뢰가 생기지 않듯, 건강한 조직문화 또한 인정, 이해, 신뢰를 천천히 쌓아가는 반복과 기다림 속에서 만들어진다.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에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될 수 있다. 그 시작은 상대를 존중하고 다가가는 의식(ritual)이며, 시간을 들여 서로를 알아가려는 진심 어린 태도다. 회사는 단순히 일만 잘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합이 아니라, 서로를 길들이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신뢰 관계의 공동체’여야 한다. 명령과 지시만이 아닌 공감과 배려가 중심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함께 일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리더십에서 구성원들과의 특별한 관계를 맺는 한 가지 팁(Tip)을 제안한다.
그 사람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당신 역시 소중히 여기길 바란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일(Work)에 진심으로 관심을 갖고 함께 협력하길 바란다. 공감과 경청이다.
그 사람이 사랑(Love)하는 이에게 관심 갖길 바란다. 자녀가 있다면 그 아이의 이름을 기억하라.
그 사람의 건강(Health)에 관심을 가져라. 진심 어린 안부를 전하라.
마지막으로 그의 자아실현의 욕구 즉, 꿈(Dream)에 대해 귀 기울여라!
꿈은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깊은 내면의 힘이며, 누군가의 꿈을 기억해 주는 사람은 그 사람에게 결코 잊히지 않는다.
Apprivoiser와 관련된 <어린왕자> 이야기는 연애 초기에 내 여자친구(지금의 아내)에게 가끔 들려줬던 얘기다. 그리고, 세월이 20여 년 흘러 직장 내 괴롭힘의 원인을 해소하고 비록 목적 집단에서 만난 관계라 하더라도 우리가 어떤 자세와 진심을 갖느냐에 따라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로 각인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이 단어를 '나도 누군가에 악마였으니, 이토록 시리즈'의 맺음말로 선택했다.
여러분 주변의 동료는 각각 존중받아 마땅한 세상의 유일한 존재이다.
당신이 존중받고 인정받아 자아의 욕구를 실현하고 싶다면 먼저 당신의 동료와 구성원을 당신 대하듯 하라. 그것이 신뢰의 시작이고 가치 있는 관계의 씨앗이다.
부족한 글재주지만 공감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어, 문장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소 지난했던 연재를 끝까지 응원해 주신 브런치 동료 작가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 까칠한 펜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