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상처의 길_ 산부인과
스무 살 아름답고 찬란했던 그때에 나는 참 순수했고 인간을 사랑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직감이 잘 맞아떨어지는 사람이었다. 친구 가지(가지라 지칭하겠다)가 하룻밤에 임신을 해버린 것이다. 나는 눈치챌 수 있었다.
나는 가지가 혼란스러웠겠지만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길 바랐다. 가지의 선택은 출산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다. 낙태이다. 임신중절이라고 해야 할까, 어떤 말을 가져와도 자극적일 것이다. 그 당시에는 낙태죄가 있었기에 산부인과에서 수술을 불법으로 하는 곳이 있었다.
나는 가지의 옆에 있어주기로 했다. 수술을 받고 나온 가지는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난 두려웠다. 겉으론 두렵지 않은 척 괜찮은 척 가지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 몸은 깊숙이 기억하고 있다.
그날의 두려움을..
그날 이후로 가지는 나를 차갑게 보았다. 가지의 눈빛은 마치 내가 그날의 증거가 되는 듯하였다. 나를 피하고 나를 다른 이에게 험담하고 나를 싫어했다.
첫 번째 상처의 길을 지나면 센터가 나온다.
그곳에는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그저 누군가의 존재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점차, 그들은 나에게 더 많은 걸 요구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나온 상처의 길을 따라, 그들은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 했다.
그들의 표정 속에서, 나는 내가 어떤 의미에서 사람들을 구하려고 했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그들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계속해서 나를 희생하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 더 많은 상처를 안겨줄 뿐이었다.
그들이 나에게 묻는다. ‘그 길을 지나온 너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나는 고개를 숙이고, 내 속에 있는 상처를 감추려 했다. 그들은 내 아픈 기억을 묻지만, 나는 그들에게 대답할 용기가 없다.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주려고 했는지, 지금은 알 수 없다. 다만 그때 그 선택은 내가 누군가의 친구로서 선택한 마지막 기회였음을 알게 됐다.
내가 경험한 그 상처의 길을 지나면, 결국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그때마다 내가 했던 선택들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그 길을 지나면 끝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그 길을 지나온 후에 내가 무엇을 배우느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