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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앨리스 Oct 20. 2023

엄마와 꼭 닮은 아이

붕어빵도 이 정도로 닮기는 힘들 거야

  리안이가 아직 뱃속에 있을 때, 나에게는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었다. 보통 혼혈하면 떠오르는 이국적인 외모, 그리고 다름에서 비롯되는 차별이 그것이었다.

  입체초음파로 처음 얼굴을 확인하던 날, 확연하게 드러나던 혼혈아 특유의 이목구비 때문에 걱정은 눈덩이가 불어나듯 더욱 커져가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혼혈아라 더 예쁠 것이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해왔다. 내 자식이니 나는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세상이 그렇게 따뜻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미 숱한 경험을 통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나였다.


  세상에서의 첫 호흡을 알리는 울음소리가 들리고 내 품에 안긴 아이의 얼굴을 보았을 때, 입체초음파 사진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 감동을 느끼기도 전에 의아함이 앞섰다. 소개팅 전 사진 교환을 했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정도로 나의 심정을 빗대어 말할 수 있겠다.

  리안이는 혼혈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전형적인 한국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머리색이 조금 밝은 것과, 피부가 유난히 희다는 점을 빼면 말이다.

닮아도 너무 닮은 엄마와 아들.

  부모님은 리안이를 보며 어린 시절의 나와 꼭 같다고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그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었는데, 부모님이 보내준 나의 어릴 적 사진을 보니 납득이 되었다. 붕어빵도 그렇게 닮기는 힘들 것이다. 나는 새삼 내 유전자의 강인함에 감탄하게 되었다.

  리안이는 커갈수록 점점 더 나를 닮아갔다. 전쟁통에도 잃어버릴 일은 없겠다는 우스갯소리는 우리 모자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었다.


  닮은 것은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눈이 부시면 재채기를 하는 ‘광반사 재채기’, 일명 ’아츄(ACHOO) 증후군‘을 가지고 있다. 햇빛뿐만 아니라 어두운 곳에서 휴대폰 화면을 봐도 재채기가 난다. 불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이 증상이 유용하게 쓰이기도 한다. 코가 간지러운데 재채기가 날듯 말 듯 안 나올 때, 일부러 눈이 부신 환경을 만들어 재채기를 하고 나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햇살 좋던 날 산책을 하는데, 리안이가 햇빛을 마주 보고는 재채기를 연속으로 하는 바람에 우리가 같은 증후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 외에도 리안이가 나를 빼닮은 점은 너무나도 많다. 고집이 세고, ‘5분만’ 하면서 할 일을 뒤로 미루고, 욕심이 많고, 승부욕이 강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고, 그림 그리기와 음악을 좋아하고… 등등. 성격과 취향까지 고스란히 닮아 있으니 사랑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물론 다른 점도 존재한다. 아무리 피가 섞였다 해도 세상에 완벽하게 같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와 꼭 빼닮은 자식이라 해서 나와 동일시하고 싶은 마음 또한 없다. 그저 내가 할 일은 정서가 배부르게 사랑을 주고, 예의와 상식을 아는 사람으로 성장시켜 사회로 독립시키는 것뿐이다.

  종종 여러 문제들로 아이를 데리고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한다.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전문가의 의견에 나 또한 동의한다. 늘 아이는 내가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언젠가는 내 품을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되뇐다.


  나와는 별개로,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갈 리안이에게 묵묵하고 든든한 응원을 해주고 싶다. 때로는 시련이 다가와도 훌훌 금방 털어내고 언제 그랬냐는 듯 씩씩하게 일어날 수 있기를. 하지만 주어진 이름의 의미처럼, 인생길이 되도록 편안하기를 바라는 것이 엄마로서 내가 부릴 수 있는 가장 큰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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