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Catcher : 빛의 순간들
처음 카메라를 잡았던 순간이 떠오른다. 우리 집에는 아빠가 아끼던 올림푸스 자동카메라가 있었다. 초등학생 때였으니 정확한 기억은 아닐 것이다. 다만, 속초로 떠난 가족여행에서 설악산 흔들바위를 배경 삼아 캠코더를 닮은 그 카메라로 가족사진을 찍은 것이 나의 첫 순간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후 고등학교의 클럽활동에서 나는 사진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첫 출사로 떠났던 경복궁에서 아빠의 보물인 그 올림푸스 카메라를 들고 풍경을 담았다. 경회루의 버들나무, 태원전에 비치던 빛 그림자들이 피사체가 되었다. 그 사진들을 모아 열었던 교내 사진전에서 상을 받게 되었는데, 외부강사였던 동아일보 기자 아저씨는 나에게 사진을 전공해 볼 생각이 없냐며 선뜻 도와주시겠다고 했다. 나는 당돌하게도 "저는 갈 길이 따로 있어요"라고, 지금은 후회해도 늦은 말을 내뱉었다.
찍는 행위에 진정한 매력을 느낀 것은 스무 살 무렵이었다. 앨범에 곱게 넣어둔 사진을 펼쳐 보면, 그 순간의 기억이 다시 되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의 하늘, 그날의 공기, 그날의 온도 또한 자세히 기억날 만큼, 사진은 예술적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기록의 장치로서도 훌륭하게 느껴졌다.
이미 전공을 한 차례 바꾼 뒤였기에 사진을 진지하게 공부해보고자 하던 나의 꿈은 접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사진에 한 번 끌린 마음은 쉽게 되돌릴 수가 없어서, 가슴 한편에는 언젠가 사진가로서 살고 싶은 마음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전공이 아니면 어떠한가. 좋아하는 마음만 꺾이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그 길로 서점에서 사진의 바이블이라는 바바라 런던의 '사진학개론'을 포함한 사진 서적 네 권을 구매했다. 밤이 다 지나가는지도 모른 채, 사진의 역사, 카메라의 종류, 조리개와 셔터스피드의 상관관계 등 지루하다면 지루한 이론에 푹 빠져 읽어 내려갔다.
당시 가히 열풍이라고 불러도 좋을 'Lomo LC-A'라는 카메라에 빠지며 나는 동호회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활동한 지 3개월 만에 운영자가 되었고, 나는 더욱 열성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지금은 생산되는 필름이 한정적이고 한 롤당 가격도 2만 원이 훌쩍 넘어가지만, 그때에는 정말 다양한 필름들이 있었다. 게다가 저렴한 것은 한 롤에 2천 원 선이면 구매할 수 있었으니 필름으로 사진을 찍는 일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필름은 종로 시계골목 안쪽에 있던 삼성사에 가서 종류별로 골라 사고, 다 찍은 필름은 광화문 교보문고 근처의 사진관에서 현상을 했다. 사진은 인화하거나 필름스캔을 했었는데, 기다리는 동안은 교보문고에서 사진 도서들을 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인화된 사진들을 넘겨보면서, 나는 또다시 그 시간 속으로 돌아간 것 같아 행복한 마음이 되었다.
지금은 더 이상 필름을 사용하지 않지만, 그 뒤로도 사진을 오래도록 취미로 하다 보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사체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빛과 그림자. 나는 유독 그 둘을 강조하는 사진을 많이 찍는다. 기본적으로 사진은 빛의 예술로 불리지만, 빛 자체를 담아내는 일이 나에게는 하나의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 반대로 어둠이 강할수록 빛은 더욱 반짝인다. 해석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나는 후자에 내 삶의 의미를 더하기로 했다.
다양한 어려움을 겪으며 인생의 그림자 속에 놓여있던 순간에도, 나는 그 빛을 따라 지금까지 한 걸음씩 걸어왔다. 그 한 걸음에 온 힘을 실어, 꾹꾹 깊은 발자국을 찍으며. 그렇게 나는 빛 수집가가 되어 내 인생이 더욱 눈부시게 반짝이도록 다양한 빛의 순간들을 기록해 나갈 생각이다. 그리고 나를 통해 여러분 또한 자신 안에 있는 빛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