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전쟁 소강상태
특수부대 아빠, 육아전쟁에 뛰어들다
육아전쟁 소강상태의 전사, 다음 전투를 준비한다.
육아전쟁에서 소강상태란 단어는 그야말로 한정된 시간에만 찾아오는 귀한 손님이다. 평소에는 장난감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끊임없는 고함과 웃음소리가 귓가를 때리지만, 첫째 아름이는 초등학교에 둘째 아린이는 어린이집에 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의 6시간. 이 시간만큼은 마치 전장이 잠시 멈춘 것처럼 고요하다. 하지만 이 평화는 결코 '휴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음 전투를 준비해야 하는 초보 아빠에겐 가장 바쁜 시간이자 집안일이라는 거대한 적과 싸우는 전투 시간이다.
전장 복구 작업, 산산조각 난 평화의 흔적들
아이들이 나간 직후, 집안은 마치 전장의 현장 같은 아수라장이다. 바닥을 덮은 장난감, 식탁 위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크레용과 종이, 그리고 거실 곳곳에 남아있는 아이들의 놀이 흔적들. "여기가 과연 사람이 사는 집인가..." 탄식이 나오지만, 전사는 탄식을 오래 할 틈이 없다.
빨래의 산, 무너진 전선의 시작
전장 복구 작업은 빨래의 산에서 시작된다. 나는 빨래 바구니를 보고 말문이 막힌다. 마치 산처럼 쌓인 옷더미는 나를 조용히 내려다보며 전투를 요구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입는 티셔츠, 흙 묻은 바지, 아이들의 작은 양말까지... 빨래는 끝이 없다.
세탁기를 돌리는 동안 잠깐의 안도감을 느끼지만, 그것은 전투의 시작일 뿐이다. 세탁이 끝나면 옷을 널어야 하고, 이미 마른 옷은 개야 한다. 군대 시절 훈련받던 '각 잡힌 정리'를 떠올리며 옷을 정리하지만, 이 전선은 지치고 힘들다. 뒤를 돌아보면 또다시 새로운 빨랫감이 쌓여 있다.
집안의 사령관 금호동호랭이 와이프는 나에게 '빨래 종류를 구분하여 처리'를 명령했다. 어른 외출복, 아이들 외출복, 수건과 어른 속옷, 아이 속옷을 구분하여 빨래를 하고 건조를 해야 한다. 일주일에 1~2회 빨래를 하던 나에게 하루 평균 4번의 빨래와 2번의 건조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전사는 명령에 복종할 뿐, "빨래는 왜 이렇게 끝이 없는 거지?" 나지막이 중얼거리지만, 대답할 이는 없다. 아빠는 말없이 전선을 사수할 뿐이다.
청소의 전쟁, 끝나지 않는 싸움
청소 역시 집안일의 또 다른 전투다. 아이들이 어제 남기고 간 흔적들은 끈질기게 나를 기다린다. 바닥에는 빵 부스러기와 사탕 껍질, 거실 구석에는 알 수 없는 종이 조각과 장난감 부품들. "한 번에 끝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이미 포기한 지 오래다.
장난감 상자는 이제 나의 탄창 상자와 같다. 자동차는 여기에, 레고는 저기에, 퍼즐은 퍼즐대로... 위치를 맞추고 진공청소기를 들고 바닥을 훑으며 나는 생각한다. 마치 지뢰밭을 수색하는 병사처럼 조심스럽게 구석구석을 청소한다. 내 눈에는 이 정리된 모습이 마치 다음 전투에 대비해 전열을 가다듬은 병사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이들이 돌아오면 이 평화는 바다의 모래알처럼 무너질 것을 잘 안다. 지금의 깨끗한 바닥은 그저 짧은 시간의 환상에 불과하다.
화장실 청소까지 마치고 나면 이마에 땀이 맺힌다. 집안의 모든 공간이 정리되고 나면, 잠시나마 평온한 전선을 마주하게 된다.
재미있는 프로의 비밀, 이 시간의 주인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특별한 게 없다. 어제 남은 밥 한 공기와 계란 두 개, 김치 몇 조각이 아이들을 보내고 먹는 나의 늦은 아침 메뉴다. 계란 프라이를 만들어 밥 위에 얹고, 김치를 꺼내 소박한 한 끼를 준비한다. 초라하지만 혼자서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밥상이기에 이 순간만큼은 최고의 사치다.
잠시 TV를 켜고 오후 9시 반에서 10시 사이에 혼자 밥을 먹으며 채널을 돌리다 문득 깨닫는다. 이 시간 때는 재미있는 시사 프로그램이 다 포진되어 있다. 나는 '김진의 돌직구 쇼'를 자주 시청했다. 사회에서 멀어질 수 있는 육아전쟁에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핵심을 재미있게 소개해주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보며 궁금해졌다. 왜 모든 좋은 프로그램은 다 이 시간에 하는 걸까?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이 시간대의 시청자들은 바로 나처럼 잠시 숨 돌리는 부모들, 고요한 시간을 맞이한 이들이라는 것을.
육아라는 전쟁터에서 하루 종일 바쁘게 뛰어다니다가도, 아이들이 없는 이 시간만큼은 나만의 시간을 찾아야 한다. 음식을 먹으며 잠깐이나마 웃을 수 있고, 혼자라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 부모들이 이 세상엔 나만큼이나 많을 것이다. 이 깨달음에 괜히 동지애를 느끼며, 나는 TV를 보며 웃음을 터뜨린다. 어쩌면 이 시간은 나 혼자만의 휴식이 아니라, 모든 전사들에게 주어진 작은 평화 협정 같은 시간인지도 모른다.
보급품 보충, 식량과 물자의 준비
애들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이들은 공격 명령을 내린다. "아빠, 배고파! 간식 줘! 밥 줘!"라는 외침은 전쟁에서 울려 퍼지는 포탄 소리와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소강상태 동안 나는 식량을 준비한다.
밥통 안 밥과 냉장고를 열어 다행히 남아있는 반찬과 우유를 확인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혹시라도 간식이 없으면 초보 아빠는 굶주림에 시달리는 병사들과 직면해야 한다. 이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나는 방어선을 철저히 구축한다. 잘라놓은 과일, 정성스레 만들어놓은 감자볶음 같은 반찬, 작은 사탕 하나까지도 전략적인 무기로 준비해 둔다.
또 다른 변수는 아이들의 취향 변화다. 어제까지 잘 먹던 음식이 오늘은 "안 먹어! 싫어!"로 바뀌는 돌발 상황. 이 돌발 상황을 대비해 다양한 보급품을 비축해야 한다. 군대에서 배운 물류의 중요성이 여기서 빛을 발한다.
전략 회의, 다음 전투 시나리오 구상
"오늘 오후에는 뭐 할까?"
이 짧은 질문이지만, 답변을 내놓기까지의 과정은 복잡하다. 오전에 얻은 고요한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의 에너지는 폭발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실내 놀이? 실외 놀이터? 킥보드나 줄넘기? 미술놀이?
지휘관으로서의 나는 모든 시나리오를 구상한다. 놀이터에 가려면 물과 간식, 손수건, 응급용 밴드를 챙겨야 한다. 실내 놀이를 하려면 책이나 새로운 장난감을 준비해야 한다. 미술놀이를 선택한다면 나의 옷과 테이블이 물감 공격을 받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떤 선택을 해도 이 전쟁터에서의 피해는 불가피하다. 다만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전략의 핵심이다.
마지막 정비, 나를 위한 소소한 재충전
무장한 채로 전투에 나서는 전사도 잠깐의 휴식은 필요하다. 아이들이 없는 이 육아전쟁의 소강상태 시간에 집 근처 카페에서 마지막 정비를 위한 남. 타. 커. 남이 타주는 거피 한 잔을 마신다. 따뜻한 커피 향이 퍼지면 전쟁터의 긴장이 잠시 녹아내린다. 하지만 이 휴식은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시간은 흐르고, 전장은 곧 다시 소란스러워질 것이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나는 스스로에게 되뇐다.
"나는 특수부대 출신이다. 아무리 육아전쟁이 힘들어도 버틸 수 있다. 훈련과 실전의 차이는 경험뿐이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나는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는다. 다음 전투가 기다리고 있다. 오늘의 오후도, 아이들과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
평화는 잠시뿐, 그러나 이 시간이 소중하다
육아전쟁의 소강상태는 어쩌면 그리운 '나'를 되찾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바쁘게 아이들을 위해 준비하면서도, 이 순간에 느끼는 정적은 나에게 작은 성취감을 준다. 누군가는 이 시간을 '휴식'이라 부를지 모르지만, 나에게 이 시간은 다음 전투를 준비하는 전략적 고요다.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가까워지면 다시 집안에 긴장이 흐른다. 오늘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나는 준비되었다.
"전투 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