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부대 아빠, 육아전쟁에 뛰어들다
육아는 전쟁이다.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크고 작은 전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초보든 베테랑이든 상관없다. 육아를 하는 부모라면 누구나 이 끝없는 전투 속에서 살아간다.
아침이 시작되면 첫 번째 전투가 열린다. "아린아, 밥 먹자!"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러본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대신 거실에서는 장난감 블록을 쌓는 소리가 들려온다. 알록달록한 블록들은 이미 성을 이루고 있고, 그 옆에는 작은 인형들이 줄지어 앉아 있다. 나는 밥그릇을 들고 거실로 가서 아린이를 찾는다.
"밥 먼저 먹고 놀자."
"조금만 더! 이거 다 만들고!"
식탁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국과 밥이 놓여 있다. 하지만 아린이는 밥보다 블록 쌓기가 더 중요한 듯하다. 겨우 식탁에 앉혀도 한 입 먹고, 인형에게도 한 입 먹이는 시늉을 하고, 또 한 입 먹고 나면 갑자기 테이블 위에 있던 스티커가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이거 붙여도 돼?” 손에 쌀 한 톨을 문질문질하면서 스티커를 들여다보는 아린이를 보고 있자니, 나는 내가 지금 밥을 먹이는 건지, 아니면 예술적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건지 헷갈려진다.
시계를 본다. 9시 10분. 창문 너머로 햇살이 부드럽게 비치고 있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경고등이 울린다. 이제 어린이집 보내려면 시간이 빠듯하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두 번째 전투, 옷 입히기가 남아 있다.
"이거 말고 저거 입을래!"
옷장 문을 열면 다양한 색깔과 패턴의 옷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다. 나는 미리 골라둔 옷을 내밀지만, 아린이는 고개를 흔든다. 한 번 더 옷장을 뒤적이고 원하는 옷을 꺼내주려 하는데, 이젠 양말이 마음에 안 든단다.
나는 한숨을 삼킨다. 그래, 옷을 고르는 건 중요하지. 하지만 저거 입었다가 막상 또 다른 걸 찾을 거잖아. 그래도 이걸 알면서도 나는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결국 그녀가 원하는 옷을 찾아서 입히는 데 성공하지만, 그 순간 또 다른 난관이 등장한다.
"아빠, 이거 신고 싶어!"
분홍색 신발을 내밀며 활짝 웃는 아린이. 하지만 그건 운동화가 아니라 슬리퍼다. "이건 어린이집 갈 때 신는 신발이 아니야. 운동화 신어야지."
"싫어! 이거 신고 싶어!"
다시 협상이 시작된다. 나는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시간이 부족하다. 결국 슬리퍼를 포기하게 만들고 운동화를 신겼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 인내심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린이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하루 에너지의 절반을 소진한 상태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오늘도 내 이름은 불리지 않겠지.’
육아를 하다 보면 내 이름이 점점 사라진다. 어린이집에서는 "아린이 아빠 오셨어요~"라고 불린다. 동네에서는 "아린이 아빠!"라는 소리가 익숙하다. 심지어 아내마저도 나를 "아린이 아빠~"라고 부를 때가 많다. 나는 분명 박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와 간식을 주고, 함께 놀아주고, 집안을 정리하면 다시 또 시간이 흐른다. 거실 바닥에는 어질러진 장난감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고, 소파 위에는 언제 꺼냈는지 모를 색연필과 종이들이 흩어져 있다. 주방에는 설거지할 그릇들이 쌓여 있고, 바닥에는 아린이가 흘린 과자 부스러기들이 남아 있다. 나는 깊은 한숨을 쉬며 빗자루를 든다. 그리고 밤이 되면 또 하나의 전투가 시작된다. 목욕과 잠자리.
"아빠, 조금만 더 놀고 씻을래!"
"조금만이 몇 분인데?"
"음... 10분?"
나는 10분을 기다리고, 10분이 지나도 여전히 블록을 쌓고 있는 아린이를 보며 다시 한숨을 쉰다. 그리고 드디어 욕조에 넣었는데, 이번엔 "더 놀고 싶어!"라고 한다. 욕조 속에서 오리 장난감을 물에 띄우며 손으로 휘젓는 모습이 귀엽지만, 이러다간 자는 시간이 늦어질 게 뻔하다. 결국 물기를 닦고 머리를 말리려 하면 또 새로운 문제가 등장한다.
"아빠, 머리 말리는 거 따뜻하게 해 줘!"
드라이어의 바람 온도까지 맞춰야 하는 육아의 세계. 군대에서는 훈련이 끝나면 모든 걸 정확하게 정리할 수 있었는데, 육아에서는 그런 게 없다. 모든 것이 아이의 속도에 맞춰지고, 아이의 요구에 따라 변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는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간다.
육아를 하다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과연 누구일까? 나는 한때 나만의 목표가 있었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의 일정을 따라가고, 그녀의 필요에 맞춰 하루를 보낸다. 내 시간, 내 목표, 내 꿈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그러다가도, 하루가 끝날 무렵 아린이가 내 품에 안기며 속삭인다.
"아빠, 나 아빠 좋아!"
그 순간, 모든 피로가 사라진다. 나는 여전히 아린이의 아빠고, 그녀가 내 품에서 편히 잠들 수 있다면 오늘 하루 전쟁도 나름 성공적인 작전이었겠지. 그리고 다시 다짐한다.
내 이름이 불리지 않더라도,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여전히 나다. 그리고 이 육아전쟁 속에서도 나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내일도 전투는 계속되겠지만, 그래도 난 다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