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알게 되었다. 퍼스널 브랜딩이 필요한 진짜 이유를. 뜻밖의 공격을 받고 정신이 들었다. 우선 내 이야기부터 하는 편이 좋겠다. 4개월 전, 나는 대기업 사원이었다. 이름만 대면 모두들 알만한 회사였기에 나를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명함 자체로 퍼스널 브랜딩이 되었던 것이다. 퇴사를 하고 나니, 타이틀이 절실히 필요해졌다. 회사 밖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창업을 해보겠다고 나왔지만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선뜻 내 것을 사줄까? 나라도 안 살 것 같았다. 만약 글쓰기 강사를 고른다면 N년 차 카피라이터와 흔한 도서 블로거 중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답은 뻔하다. 타이틀이 곧 퍼스널브랜딩이라는 생각에 곧바로 네이버 도서 인플루언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브런치 작가 신청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또 다른 고민이 싹텄다. 똑같은 이력의 전문가가 100명 있다면 과연 내가 선택받을 수 있을까? 동네 치과를 떠올려보자. 길만 건너면 닿을 거리에 3군데나 있지만 항상 가는 곳은 정해져 있다. 다른 곳은 애초에 배제된다. 다니던 병원이 휴무이면 욱신한 치통을 참고서라도 하루를 기다린다. 왜일까? 그저 익숙하고 편해 관성처럼 가게 되는 것만은 아니다. 여긴 절대로 바가지 씌우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서다. 눈곱만 한 충치로 호들갑 떨지도 않는다.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내 아픔에 충분히 공감해 주고, 충분한 조언으로 불안과 걱정을 잠재워준다. 여기에 힌트가 있다. 내가 단골손님이 된 이유는 신뢰와 공감 때문이다. 특출 난 의료기기를 보유한 병원은 아니지만 어느새 의사 선생님의 찐팬이 돼버린 것이다.
이상하게 마음이 동하는 사람이 있다. 작은 독립서점 대표님이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종이책보다 전자책을 선호하는 나인데 그곳만 가면 지갑이 스르르 열린다. 그분의 운영 철학에 반해버린 탓이다. 수익성이 좋지 않은 사업임을 알고도 지역 독서 문화 형성을 위한 사명감으로 뛰어드셨다니. 나도 거기에 보탬이 되고 싶어 자꾸만 책을 한 아름 사서 오게 된다. 이미 전자책으로 구매해 읽은 책도 산다. 클릭 한 번이면 다음날 집 앞에 갖다 주는 세상이지만 일부러 그곳에 간다.
이제 원하는 건 어디서든 살 수 있는 시대다. 누구에게 사느냐가 중요해졌다. 나는 누군가에게 믿음직한 사람일까? 블로그에 올린 서평을 보고 실제로 책을 구매한 사람들이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전 직장에서 퇴사 소식을 알렸을 때도 개인적으로 친분이 없던 직원들이 메신저를 보내 깜짝 놀라곤 했다. 응원뿐만 아니라 고민까지 토로했으니 꽤 신뢰 가는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옛 동료에게 일화를 전해 듣기도 했다. 내 업무를 인수인계받은 사수가 이런 얘길 했다는 것이다.
"정말 묵묵히 일했던 친구네. 직접 해보니까 그동안 혼자 얼마나 고생했을지 느껴진다."
심지어 거래처 직원에게 안부 연락을 받기도 했었다. 학교와 직장에서 함께하며 나를 잘 아는 사람들에겐 내 말이 먹히는 것 같다. 내게 조언을 구하고 따랐기 때문이다. 맛집을 알려주면 믿고 가보고, 책을 추천해주면 믿고 사보고, 종목을 알려주면 투자해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 온라인 세상에서도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만 하면 가능성이 있다는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게 한 계기가 있었다. 불과 이틀 전, 1,000명 가까이 되는 자기 계발 오픈 채팅방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용수칙 중 하나가 매일 하나씩 인증을 하는 것인데 나는 브런치에 올린 글이 7천 뷰를 찍은 사실과 노하우를 올렸다. 그러다 한 사람에게 난데없는 공격을 당했다. 누가 봐도 저격하는 메시지였다.
"내 경험상 비법은 그럴듯하게 어그로 잘 끄는 거라 생각함."
어딘가 꼬인 듯한 말이 비수가 되어 날아왔다. 명치부터 정수리까지 무언가가 뜨겁게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곧바로 대응하지 않고,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혀 이런 말을 왜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상대적 박탈감이나 질투심 때문에 딴지를 걸었던 걸까? 그렇다면 그 사람 내면의 문제이니 더 이상 내가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아니면 아직 나를 잘 모르기 때문일까? 매일 12시간 가까이 노트북 앞에 앉아 머릴 쥐어뜯고, 읽고, 쓰고, 고치는 걸 그가 알리 없었다. 표면에 드러난 모습만 보면 그저 후킹 문구로 사람들을 자극하는 빈 껍데기, 자기 자랑꾼으로 보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순간 무릎을 탁 쳤다. 퍼스널 브랜딩이 필요한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오해를 부르지 않고, 구태여 해명하지 않아도 되게끔 일관되게 나를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한 달만 매일같이 한 권의 책을 읽고 한 편의 서평을 써서 인증해도 대부분 의심이 잠재워질 터이다.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꾸며낸 내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라는 사실을 믿게 될 것이다. 꾸준한 말과 행동이 언젠가 나를 대변해 줄 것이다. "저 그런 사람 아닌데요"라고. '꾸준함'이라는 강점 자체가 아이덴티티가 되는 것은 덤이다. 끈기와 성실은 터부시되지만 막상 해보면 쉽지 않아 재능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효과는 이튿날부터 즉각 나타나기 시작했다. 채팅방에서 잔뼈 굵은 분들이 나를 언급하고, 칭찬하면서부터 그는 자취를 감추었다. 퍼스널 브랜딩의 정점을 찍었다 말할 수 있는 순간은 아마도 나에 대해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이 생겨나는 시점 아닐까?
"저 사람, 그런 사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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