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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머리앤 May 14. 2024

새벽 수영반 맨 뒷자리의 주인공은, 나야 나

괜찮습니다. 저 뒤로 갈게요.

새벽 6시 초보수영반은 참 신기해요.

신규회원들이 오는 1일에는

레인이 아주 복작복작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사람 숫자가 줄어들어요.


중순정도 되면

원래 하던 정예(?) 멤버들만 남습니다.


6개월 정도 지나니

꾸준히 하시는 회원분들이 낯이 익더라고요.


서로 말은 많이 하지 않지만

얼굴을 뵈면 좋고

안 오시면 왜 안 올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수영 초보  7개월에 제가 할 수 있는 건,

킥판 놓고 자유형 하기

아주 느린 배영 하기

조금씩 나아가는 평형하기

였습니다.


자유형은 킥판을 놓고 가면 

웬만한 사람보다 느려요.

그리고 금방 숨이 찹니다.

60대 어르신들도 계신데 

제가 먼저 지쳐요.


배영은 자유형보다 

더 느려요.

자꾸 뒷사람이 와서 부딪쳐요.


그런데요,

평형할 땐 참 좋아요.

왜냐하면 다 같이 느리기 때문에

제가 느린 게 티가 거의 안 나거든요.


그래서 평형을 할 때에는

쫓기는 마음이 들지 않고

마음이 참 편해집니다.


그래서 제가 선택한 방법은

맨 뒤로 가는 거예요.

6시 새벽 초보반 맨 뒷자리는 항상 제 자리였습니다.


처음에는 선생님께서 

왜 뒤에 서 있냐면서

저보고 앞으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잘해서라기보다는 

보통 진도가 같은 회원분들끼리

모여서 줄을 서거든요.)

그럴 때마다 저는

"뒤에가 편해서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맨 뒷자리는

제 고정자리가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뒷자리가 마음이 편하죠?"

라고 하시면서 항상 제 앞으로 오신 분이 계셨어요.

그분은 60이 넘으신 분이셨어요.

예전에 해병대 출신이셨데요.

젊은 시절에

수영을 다 배웠다고 하셨는데

세월이 많이 지나고 나서

다시 수영을 배우고 싶으셨나 봐요.


그분은 평형을 할 때 칭찬을 많이 받았어요.

"옛날에 해보셔서 그런지

자세가 좋으시네요."


전  바로 제 앞에서 출발하는 그분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앞으로 잘 나가고 싶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분은 저를 보시면 늘 항상

말을 걸어주셨는데요.

이를 테면 

"오늘 사람이 별로 없어서 힘들죠?"

라고 여쭤보셨어요.

저는 "네"하면서 웃어 보였습니다.


저는,

조잘조잘 말을 잘하는 편이거든요.

잘 모르는 사람과 있을 때에도

먼저 말을 거는 편입니다.

침묵이 너무 불편하거든요.


말을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더 편한 제가

수영 강습을 받을 때 다짐한 게 있어요.


수영장에는 말을 거의 하지 말고

웃고 있자


였습니다.


수영으로 인해 쓰는 에너지도 많은데

말까지 많이 하면 

기운이 다 빠져서

수영도 제대로 배울 수 없고

수영 이후의 일에도 지장을 줄 것 같아서요.


그래서 어르신과 대화는 주로 짧게 끝났던 것 같아요.


어르신은 수영하러 오시는 이유가

설렁설렁 즐기면서 운동을 하시는 거였나 봐요.

레인 끝까지 가지 않고 돌아갈 때도 있었고

걸을 때도 많았습니다.


저도 어르신을 따라서 쉬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긴 했어요.

그럴 때마다

새벽마다 허겁지겁 집에서 나오는 제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워킹맘인 저에게 허락된 소중하고 유일한

자유시간임을 생각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한

정말 성실하게 수영을 배웠습니다.


수영은 참 신기한 게

영법을 바꿀 때마다 아픈 부위가 달라지더군요.


자유형을 처음 배울 때에는 

다리가 너무 아팠고,

팔을 휘두를 때는 팔이 그렇게 아프더라고요.


배영을 배울 때는 

하도 목에 힘을 줘서 목이 제일 아팠는데


평형을 배우니 허벅지 안쪽이 아프더군요.


영법을 배울 때마다 

사용하는 근육이 달라서 그런 거겠죠.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좋더라고요.

수영은 

제 몸의 여러 가지 근육을 

다 사용하게 해 주니까요.


정말 감사한 건

처음에는 많이 아파도

시간이 지나면 또 괜찮아졌습니다.


허벅지 통증도

시간에 맡겨보기로 했어요.


그런 거 아시죠.

그 당시엔 좋은 일이었는데 지나고 보면 나쁜 일이거나

그 당시엔 괴롭고 힘든 일이었는데 지나고 보면 참 좋은 기회였던 거요.


자유형을 늦게 배워서 

속이 상했던 게 참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느려도 꾸준히 하면 

배울 수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평형도 언젠가는 배울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강사님께서

"평형 참 안 되죠? 평형할 수 있겠어요?"

라고 여쭤보시더군요.


"언젠가는 되겠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웃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평형 실력이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요.

평형을 할 때마다 

상체가 기우뚱하는 게 느껴지고

발차기를 여러 번 헛발질하기 일쑤였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앞으로 쑤욱 나가는 발차기를 할 땐

그게 그렇게 기쁘더라고요.


수영이 준 또 다른 선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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