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선 넘지 맙시다.
회사에서 직장동료, 공적인 관계라는 선을 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직장 내 선 넘는 일은 내가 신입사원 때부터 지금까지 경험하고 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장난기 많은 선배는 내게 “너는 일하지 말고 저기 어디 짱 박혀있어. 그게 더 실적에 도움이 될 거다.ㅋㅋㅋ”라는 식으로 놀렸다. 상대에겐 장난이지만 나에겐 상처가 되는 말이어서 화장실에서 혼자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그런 장난이 반복되자 한 번은 다 같이 회식하고 끝난 뒤 선배에게 전화해 따진 적이 있다.
“선배님 저한테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세요??”
“아 나는 네가 너무 동생 같고 좋아서.. 그랬어.. 네가 이렇게 기분 나빠하는 줄 몰랐어.. 정말 동생 같고 너무 좋아서 장난친 거야.”
“선배님이 제 오빠예요? 우리가 학교에서 만난 오빠 동생이에요? 절 따로 어디 밖에서 아셨어요?? 아니잖아요! 회사에서 만났잖아요. 그럼 회사 후배로 대해야지 왜 동생같이 느껴진다고 혼자 그렇게 선을 넘어서 대하세요?!”
“아미안.. 앞으로 진짜 회사 후배로 대할게..”
그동안 쌓인 설움을 터트리고 말았다. 상처되는 말이었지만 선배가 나쁜 의도로 한 말은 아니라는 걸 알기에 그렇게 말하고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 다음날 다시 연락해 선배에게 기분을 풀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작년에 일한 땐 4살 터울 선배도 나를 동생처럼 대하셔서 호칭도 “이주임” “담당님”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셨고 가끔 “야”, “니”라는 호칭도 쓰셨다. 물론 선배가 워낙 호칭을 편하게 쓰셔서 다른 선배들도 ‘형님’이라고 친근하게 부르는 건 알았기에 후배를 ‘야’ ‘너’라는 호칭으로 불러도 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친근한 마음의 편한 호칭은 막말로 이어지기도 했다.
“야! 어디서 그딴 식으로 배웠냐”
"너 왜 있냐? 너 일 이딴 식으로 할 거면 여기 왜 있냐고!"
본인도 과한 말이라는 걸 알았는지 나중에는 '동생 같아서' 그랬다는 말도 남겼다. '동생 같은 사람'이면 막말도 들어줘야 하나 싶었다. 뭐 그 이후에는 더 연배가 있으신 '선배의 동생'이 되어야 했으니 차라리 막말이 오히려 나았던 거 같다.
40대 후반 팀장님이 나를 정말 예뻐해 주셔서 다른 남자 후배들 말고 나만 불러서 커피 사주시고 맛있는 밥도 사주시기도 하셨다. 그리고 내가 발령 난 후 술만 마시면 자주 카톡으로 “동생 먼저 연락도 없고 나빠” 연락 주셨다. 보통 밤 10-11시쯤 되는 시간에 연락을 주셔서 연락을 몇 번 받아서 했더니 이제는 거의 한두 달에 한 번씩 술을 드시고 이런 카톡이 오는 것이다. 본인은 내가 정말 동생 같아서 그런다고 하지만 내게는 나보다 20살 넘게 많으신 선임 팀장님이신데 밤에 용건 없는 카톡은 정말 불편했다. 부담스러워서 몇 번 카톡을 늦게 보거나 안 보거나 했더니 "씹냐?"로 시작해서 삐진 척을 하셔서 얼마나 곤혹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리고 몇 번 안입씹을 했더니 이제는 인스타로 연락의 방법이 바뀌었다. 인스타로 내가 게시물을 올리거나 그러면 디엠을 보내시는 거다. 물론 팀장님은 내가 “동생”같아서 그러시는 게 맞다. 아끼는 동생이어서 연락도 자주 하고 싶으신 거다. 그런데 내겐 너무 불편한 연락일 뿐이다. 나는 일단 20년 넘게 차이나는 분을 '오빠'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분은 회사에서만 만나는 게 좋은 회사 팀장님일 뿐이기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동생 같아서'라는 말이 싫다. 진짜 동생 같으면 용돈도 주고 일도 좀 도와주던가 그것도 아니고 동생 같아서 막말을 하고 술 마시고 연락하는 걸 어떤 동생이 좋아하겠나. 심지어 우리 친오빠도 나한테 연락 잘 안 한다. 회사는 회사다. 나이가 어린 후배라고 편하게 대해도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또 한 번은 함께 일하던 50대 초반 상사분이 나를 예쁘게 봐주셨다. 그래서 부서이동을 하신 후에도 가끔 먼저 연락도 주시면서 내 근황도 물어보셨고 따로 밥도 사주시겠다고 본인 부서로 놀러 오라고 하시기도 하셨다. 오랜만에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다 같이 모여서 회식하고 마지막에 인사하는데 팀장님이 내게 “회사에선 내가 아빠다. 딸 같아 정말”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만큼 아끼 주시는 마음은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딸은 아닌데 딸 같다며 말씀하시는데 불편하기도 했다. 속으로 ‘팀장님은 딸을 이렇게 부려먹으시나..? 심지어 딸도 없으시면서’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딸이라고 하기에는 함께 일할 당시에 내게 모든 일을 다 넘기셔서 야근과 주말근무를 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 딸 같다는 게 진짜 친딸이 아니라 '개딸'(가짜 딸)인가 싶기도 하니 말이다.
내게는 팀장님이 회사 선배, 회사 윗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팀장님들이 선배님들이 나를 후배를 넘어 동생, 딸같이 봐주시는 건 감사한 일이나 어디까지나 티 안 내고 마음속으로만 아껴주셨으면 좋겠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편하게 친근하게 대하는 게 쉬운 일이지만 아랫사람에게는 그게 여간 불편한 일이다. 동생 같다고 오는 연락을 볼 때마다 퇴근했음에도 회사 사람의 술주정까지 받아줘야 하나 싶어 얼마나 스트레스받는지 모른다.
정말 내가 동생 같고 딸 같아서 친하게 지내고 싶은 후배라면 오히려 적정한 거리를 지켜주셨으면 좋겠다. 예전에 같이 일하던 선배 중에 나보다 5년 먼저 입사한 선배였지만 꼬박꼬박 내게 “담당님"이라는 호칭을 쓰며 존중해주시면서도 꼭 같이 뭘 먹으면 사주시는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가 나중에 너무 좋고 감사해서 발령 날 때 그 선배에게 선물을 한 적도 있다. 정말 동생 같고 딸 같으면 '동생 같아서', '딸 같아서'라는 말 하지 말고 그냥 '직원'으로 존중해주시고 맛있는 거 자주 사주면 된다.
후배들이나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보며 “아빠”같거나 “오빠”같다고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반면에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보고 “딸”같다거나 “동생”같다고 느끼고 표현하는 걸 많이 봤다. 어쩌면 밑에 사람을 편하게 보고 선을 넘어 대하는 게 다른 모습의 갑질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