줏대 없는 발목은 이미 물 속이었다
한 계절의 여름
여름과 나는 파도를 부수고
뙤약볕에 얼굴을 그을리고
유채꽃밭에 땀을 흘렸다
그늘 위에서 유부초밥을 털고
처마 아래서 소나기를 피하고
남몰래 아랫입술을 훔쳤다
여름은 바다가 좋다고 말했고
사실 나는 산을 좋아하지만
줏대 없는 발목은 이미 물 속이었다
여름의 얼굴은 손이 델만큼 뜨겁고
목선에 차오른 땀은 밤공기에 흩어졌다
여름은 열을 식히는 법을 알지 못한다했고
홍조의 해가 바다의 이불을 덮어갈 즈음
나의 뜨거웠던 여름은 떠나갔다
오른 팔에 닿던 짧은 바람은
왼팔에 닿아 길어지고
해의 이마가 좁아진 만큼
달의 턱수염이 늘어났다
흑지의 별이 성큼 다가와
말간 얼굴로 안부를 건넨다
나에게 가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