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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머리"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뇌과학이 밝혀낸 감정과 학습의 비밀

by 이준유

우리는 흔히 이성을 '차가운 것', 감정을 '뜨거운 것'으로 분류하곤 합니다. 공부를 하거나 중요한 업무를 처리할 때 감정은 종종 방해꾼 취급을 받기 일쑤죠. "감정적으로 굴지 마",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이성적으로 판단해"라는 말은 우리가 학교와 직장에서 가장 흔히 듣는 조언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뇌, 그리고 평생을 학습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뇌를 들여다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감정을 배제한 학습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최근의 연구들은 교육과 감정이 신경생물학적으로 얼마나 긴밀하게 얽혀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오늘은 미취학 아동부터 성인 학습자까지, 생애 주기별로 감정은 학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뇌과학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학습,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정'의 왈츠

우리의 뇌 속에는 공포와 불안 같은 감정을 처리하는 편도체(Amygdala)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뇌의 'CEO'라 불리우며, 주의를 집중하고 계획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이 있죠. 흔히 이 둘은 별개의 영역처럼 여겨지지만, 완전히 독립적으로 일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통적으로 감정 처리 영역이라 여겨졌던 편도체(Amygdala)는 주의 집중과 같은 인지 과제에도 깊숙이 관여합니다(Anderson, 2005). 즉, 감정이 움직이지 않으면 주의력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학습은 단순히 정보를 머리에 쑤셔 넣는 행위가 아니라, 감정과 인지가 뇌의 피질과 피질하 구조 사이에서 끊임없이 신호를 주고받는 역동적인 상호작용이라는 뜻입니다(Pessoa, 2008).


유년기: 교실 문을 열기 위한 열쇠, '감정 조절'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부모님들은 흔히 한글이나 숫자를 먼저 가르치려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꼽는 '학교 갈 준비'의 1순위는 글자가 아닙니다. 바로 '감정 조절(Emotion Regulation)'입니다(Rimm-Kaufman et al., 2000).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영아기의 기질은 성인이 되었을 때의 뇌 구조, 특히 안와 전두엽의 두께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합니다(Schwartz et al., 2010).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과 전측 대상 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이 발달하면서 아이들은 상황을 다시 해석하고 감정을 추스르는 법을 배웁니다(Posner & Rothbart, 2000). 이 능력이 잘 갖춰진 아이가 선생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결국 학업에서도 높은 성취를 보입니다. 즉, 공부를 잘하고 싶다면, 먼저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아동기: 마음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

이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초등학생 시기에, 어떤 아이들은 유독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특히 '냉담-비정서적(Callous-Unemotional, CU)' 특성을 가진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타인의 공포나 슬픔을 잘 감지하지 못하며 죄책감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이 아이들은 두려운 표정을 볼 때 편도체(Amygdala)의 반응이 현저히 낮게 나타납니다(Jones et al., 2009; Marsh et al., 2008). 더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입니다(Dadds et al., 2008). 눈은 감정의 창입니다. 타인의 눈을 보지 않으니 감정을 읽지 못하고, 공감 능력이 발달하지 못하는 것이죠. 이 시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훈육이 아니라, 감정을 처리하는 뇌의 회로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섬세한 중재입니다.

▲ 두려운 표정을 보았을 때 편도체 반응이 낮게 나타나는 CU 특성의 아이들(표에서 좌측). 즉, 이들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쉽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청소년기: 엑셀은 밟았는데 브레이크가 없다면

중고등학교 시절, 아이들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습니다. 이때 뇌에서는 거대한 공사가 일어납니다. 보상에 민감한 변연계(Limbic System)는 빠르게 성숙해 엑셀을 밟아대는데, 이를 통제해야 할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발달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합니다(Ernst & Mueller, 2008). 청소년들이 위험한 행동에 쉽게 빠지는 이유입니다.


이 시기 학습에 가장 중요한 변수는 '동기(Motivation)'입니다. 캐롤 드웩(Carol Dweck)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지능이 고정되어 있다고 믿는 학생들보다 지능이 변할 수 있다고 믿는 학생들이 성적 하락을 더 잘 방어하고 성취를 이뤄냈습니다(Blackwell et al., 2007). 뇌는 믿는 대로 반응한다는 뜻이죠. 따라서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지능이 고정된 게 아니라 변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능이 고정되었다고 믿는 아이: 실패를 두려워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데만 급급합니다. 부정적 피드백에 뇌가 과민하게 반응하여 오히려 학습을 포기합니다.

지능은 변한다고 믿는 아이: 실패를 배움의 과정으로 여깁니다. 틀렸다는 지적을 받으면 뇌가 해결책을 찾기 위해 더 활발히 움직입니다.


또한, 청소년기의 음주나 스트레스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알코올 사용 장애가 있는 청소년은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Hippocampus)의 부피가 줄어들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De Bellis et al., 2000; Nagel et al., 2005).


성인기: 평생 학습을 방해하는 적, 스트레스

배움은 학교를 졸업한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성인의 뇌 역시 새로운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구조가 변합니다(Bennett & Baird, 2006). 하지만 성인 학습자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스트레스'입니다.


스트레스와 학습은 '역 U자형(Inverted U-shape)' 관계를 그립니다. 적당한 긴장감은 집중력을 높여주지만, 과도한 스트레스는 글루코코르티코이드(Glucocorticoids)를 분비시켜 기억 저장을 방해합니다(Lupien et al., 2009). 특히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면, 감정적으로 자극적인 사건은 생생하게 기억나는 반면, 정작 외워야 할 중립적인 정보는 기억 형성이 저해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Payne et al., 2007). 시험이나 발표를 앞두고 불안할 때, 실수한 기억은 선명한데 공부한 내용은 하얗게 지워지는 경험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감정을 돌보는 것이 곧 학습입니다

오늘 살펴본 뇌과학의 발견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감정 발달은 학습의 '부산물'이 아니라 학습의 '전제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더 많은 지식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기질을 이해하고, 불안을 조절하며, 실패를 성장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단단한 마음 근육을 기르는 일. 그것이야말로 뇌가 가진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그러니 오늘, 아이의 문제집 채점을 잠시 멈추고 아이의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팍팍한 현실 속에서 무언가를 배우려 애쓰는 당신 자신의 마음도 한 번쯤 토닥여 주시길 바랍니다. 뇌는 편안하고 행복할 때, 비로소 배울 준비를 마칠 수 있으니까요.



References

Anderson, A. K. (2005). Affective influences on the attentional dynamics supporting awareness.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General, 134, 258–281.

Bennett, C. M., & Baird, A. A. (2006). Anatomical changes in the emerging adult brain: A voxel-based morphometry study. Human Brain Mapping, 27, 766–777.

Blackwell, L. S., Trzesniewski, K. H., & Dweck, C. S. (2007). Implicit theories of intelligence predict achievement across an adolescent transition: a longitudinal study and an intervention. Child Development, 78, 246–263.

Dadds, M. R., El Masry, Y., Wimalaweera, S., & Guastella, A. J. (2008). Reduced eye gaze explains “fear blindness” in childhood psychopathic traits. 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Child and Adolescent Psychiatry, 47, 455–463.

De Bellis, M. D., Clark, D. B., Beers, S. R., Soloff, P. H., Boring, A. M., Hall, J., Kersh, A., & Keshavan, M. S. (2000). Hippocampal volume in adolescent-onset alcohol use disorders. 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 157, 737–744.

Ernst, M., & Mueller, S. C. (2008). The adolescent brain: Insights from functional neuroimaging research. Developmental Neurobiology, 68, 729–743.

Jones, A. P., Laurens, K. R., Herba, C., Barker, G., & Viding, E. (2009). Amygdala hyporeactivity to fearful faces in boys with conduct problems and callous–unemotional traits. 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 166, 95–102.

Lupien, S. J., McEwen, B. S., Gunnar, M. R., & Heim, C. (2009). Effects of stress throughout the lifespan on the brain, behaviour and cognition. Nature Reviews Neuroscience, 10, 434–445.

Marsh, A., Finger, E., Mitchell, D., Reid, M., Sims, C., Kosson, D., & Blair, R. J. R. (2008). Reduced amygdala response to fearful expressions in children and adolescents with callous–unemotional traits and disruptive behavior disorders. 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 165, 712–720.

Nagel, B. J., Schweinsburg, A. D., Phan, V., & Tapert, S. F. (2005). Reduced hippocampal volume among adolescents with alcohol use disorders without psychiatric comorbidity. Psychiatry Research, 139, 181–190.

Payne, J. D., Jackson, E. D., Hoscheidt, S., Ryan, L., Jacobs, W. J., & Nadel, L. (2007). Stress administered prior to encoding impairs neutral but enhances emotional long-term episodic memories. Learning and Memory, 14, 861–868.

Pessoa, L. (2008). On the relationship between emotion and cognition. Nature Reviews Neuroscience, 9, 148–158.

Posner, M. I., & Rothbart, M. K. (2000). Developing mechanisms of self-regulation. Development and Psychopathology, 12, 427–441.

Rimm-Kaufman, S. E., Pianta, R. C., & Cox, M. J. (2000). Teachers’ judgments of problems in the transition to kindergarten. Early Childhood Research Quarterly, 15, 147–166.

Schwartz, C. E., et al. (2010). Structural differences in adult orbital and ventromedial prefrontal cortex are predicted by 4-month infant temperament. Archives in General Psychiatry, 67, 7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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