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단말쓴말] 업무 때문에 자책하는 이를 위한 단말
첫 직장에서 내가 맡은 업무는 사보를 만드는 것이었다. 분명 내 상식으로는, 월간지를 만든다고 하면 최소한 3~4명의 인원은 있을 줄 알았는데 주어진 인력이라곤 달랑 1명이 다였다. 그리고 그 1명은 다름아닌 나. 아직도 내가 만든 첫번째 사보를 기억한다. 메인 컬러는 분홍색이었는데, 처음으로 사보가 발행되어 건물 곳곳에 비치되던 날, 동료와 동기들에게 말했다. 이 분홍색은 나의 피를 갈아넣었다는 뜻이라고.
매달 60쪽에 달하는 잡지를 만들어내다 보니 언제나 필진이 고민이었다. 어찌어찌 쓰면 30쪽 정도는 내가 채울 수 있겠는데, 30쪽이 문제였다. 기고도 받고 광고도 싣고 주변 사람들에게 요청하여 또 25쪽 정도는 채웠는데, 나머지 5쪽은 도무지 끝까지 채울 수 없었다. 상부에서는 '사회적으로 입지가 있는 인물의 글을 받으라'고 지시가 내려온 상황이라, 대충 아무나 연락하여 글을 실을 순 없는 상황이었다.
하루에도 몇십 통씩 전화를 돌렸는지 모르겠다. 세어 보니 50통 넘게 돌린 날도 있었다. 정책부서에 연락하여 받기도 하고, 인터넷에 검색해 보기도 하고, 심지어 찾는 인물이 책을 낸 전적이 있다면 해당 출판사에 연락하여 전화번호를 달라고 읍소하기도 했다. 열 명 중 일곱 명은 거절을 했고, 두 명은 답조차 하지 않았으며, 가뭄에 콩 나듯 겨우 1명 정도만이 기고에 승낙해 주었다. 마감이 다가오는데 기고자가 구해지지 않으면 심장이 쪼그라들었고, 괜히 거절한 사람을 원망하기도 하였다. 2,000자 정도 쓰는 게 뭐 어렵다고! (맞다,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도무지 기고자가 구해지지 않는 달이 있었다.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과장님께 기획서를 들고 가 말했다. "과장님, 저 도저히 못 구하겠습니다. 어떻게 연락처를 구해도 다들 거절하거나 받질 않아요. 친분이라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제가 아는 사람이 워낙 없네요…." 그때, 과장님은 나의 마지막 말에 무심한 듯 시크하게 대답했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기획서만 지긋이 쳐다보며,
네 나이 때 그런 사람을 알고 있는 게 이상한 거지.
그랬다. 기고자를 찾겠다고 좌충우돌하던 시절 나의 나이는 스물넷에서 다섯으로 넘어가는 기점이었다(만으로는, 정확히 스물 넷). 주변에 아무리 친구와 친한 선후배가 많다 해도 결국 나와 똑같은 신입사원이거나 대학생에 불과할 뿐. 갓 졸업한 대학생에게, 실질적으로 잡지에 기고할 만한 '인맥'은 없다. 없는 게 당연한 것이다. 분명 과장님의 어조를 살펴봤을 때 본인에게는 별 것 아닌 말이었겠지만, 내게는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때로는 감당하기 벅찬 일이 주어질 때가 있다. 자의든 타의든 말이다. 그럴 때 과한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은, 어떻게든 한계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발버둥친다. 환경이나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서. 하지만 분명히 능력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경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주 쉽게 느껴지는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 과장님에게는 그 일이 별로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나이가 나이니 만큼 고위 관료나 기업에서 직급 있는 사람 한둘쯤은 알고 있었을 터. 스물 넷이라는 내 나이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얻기 힘든 인맥을, 과장님은 그저 세월이 흘렀기에 갖고 있던 것뿐이었다.
내가 역량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며 자책할 때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다른 이유일 수도 있는데. 그럴 때면 나는 저 말을 떠올려 본다. 나의 부족함이 언제나 나의 역량 부족 때문은 아닐 수도 있다고. 가끔은 시간이 해결해주거나 상황이 저절로 나아지기도 하는데, 괜스레 자신을 자책하며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끙끙대진 않았나, 시간의 문제를 역량의 문제로 잘못 생각하진 않았나. 혹시라도 자신을 너무 자책하고 있다면, 한번 따져 봐야 한다.
과장님의 말을 듣고 1년도 되지 않아 정말로 나의 인맥은 예전보다 훨씬 풍부해졌다. 심지어 기고 연락 때문에 앓는 소리 할 일도 줄어들었다. 잡지를 리뉴얼하면서, '사회적으로 입지가 있는 인물'이 기고해야 하는 코너가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물 일곱이 되던 해, 나는 직장을 나왔다. 여전히 모르는 것도 많고 부족한 것도 많지만, 아주 조금 더 많은 사람을 알게 된 채로 말이다. 나오자마자 나는 적당히 즐기며 여유롭게 일하는 프리랜서로 반 년 간 지냈다. 직접적이진 않았지만, 어쨌든 간접적으로나마 그 시절을 통과하며 쌓아온 인맥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