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단말쓴말]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를 위한 쓴말
첫 직장에서 갑자기 '사보'를 담당하긴 했지만, 사실 아주 뜬금없는 일은 아니었다. 당시 신입사원이었던 내가 (보통 3년 차 이상이 담당하는) 사보 제작 담당을 맡은 까닭은 나의 모든 경력이 그것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대학교 학보사에서 4년 이상 일한, 나름 편집 쪽에서는 짬밥을 먹은 '경력자'였다. 그리고 학보사에서 들었던 인상 깊은 말 중 하나는 이것이다.
열심히 하지 말고 잘해.
누군가는 노력 또한 하나의 재능이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의미에서 '재능파 VS 노력파' 중 무엇에 더 가깝냐고 묻는다면 나는 '노력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글쓰기만 해도 그렇다. 자기혐오가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로서, 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영 부족하다.
스물한 살인가, 시를 써서 현직 시인에게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그분의 대답이 이랬다. "넌 글 쓸 거면 시는 쓰지 말아라." 그럼 소설은 어떻느냐, 역시 현직 소설가에게 "다른 사람들의 소설을 좀 더 참고해야겠다."라는 말을 들었다. 제일 슬픈 기억은, 작정하고 열심히 써서 교내 공모전에 제출한 비평문에 대해서 '앵무새처럼 다른 사람이 쓴 글을 기계적으로 모방한 것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었다.
이 정도로 글쓰기에 재능이 없었으니 내가 처음으로 집필했던 '글'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하랴. 학보사 새내기 시절 나의 글은 수많은 색깔 볼펜으로 뒤덮였고, 심지어 문단 하나가 통째로 날아간 적도 있었다(솔직히 고백하자면, 문단 '하나'가 아닌 적도 있었다).
열심히 자료를 조사하고 나름대로 판단해서 나의 손으로 직접 짜낸 글인데, 이렇듯 박한 평가를 받는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노력해서 쓴 글인데..." 그때 나의 글 2쪽 3문단에 크게 X표를 그렸던 선배 P는 말했다.
열심히 하지 말고 잘하라고.
열심히 하는 건 의미 없다고.
아니, 굳이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니까 잘 하기만 하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너무한 말이긴 했다.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직 대학교 1학년 1학기도 마치지 않은 애송이에게 '노력은 됐고, 잘하라고.' 같은 가혹한 말이라니.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다. 그 말은 '일'에 대한 나의 자세를 다시 생각해보게 했고, 들은 지 10여 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자신을 돌아보며 되새기는 말이 되었다.
일에서는 항상 성과가 중요하다. '성과만큼 과정이 중요하다'는 있을 수 있어도 '성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적어도 일에서만큼은 불가능한 명제이다. 인간관계나 목적상 일이 아닌 것들, 예를 들어 자발적인 봉사활동이나 취미에 대해서는 성과보다 과정이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일은 그래선 안 된다.
당연히 불법적인 것까지 허용해야 한다는 논지는 아니다. 적어도 모든 과정이 합법적이고 합리적이라면 과정보단 성과가 중요하는 뜻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일을 계속 망친다면, 개인은 해고될 것이고 조직은 해체될 테니까. 적어도 일에서만큼은,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잘했느냐가 중요한 까닭이다.
그 말을 들은 이후로 나는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어필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알아주면 좋긴 하지만, 몰라준다고 섭섭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일을 '얼마나 잘했는지'를 어필하려고 노력한다. 어떤 점이 기존에 비해 더 낫고, 어떤 이유에서 이렇게 일을 했고,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등등. 노력 여하에 상관없이 일로만 평가받는다는 건 슬프지만, 돈에 대한 대가로 일을 하는 노동자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 어쨌든 조직과 개인은 계약관계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말고, 잘.
오늘도 출근하며 새기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