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상자를 열었다. 먼지 쌓인 물건들 사이로 8년 전 제주도 ‘카페 서연의 집’을 갔을 때 구매한 연필 세트를 발견했다. ‘그게 벌써……’ 그런 마음으로 입구를 열자 예쁜 문구가 적힌 연필이 나왔다. 아마 영화 《건축학개론》의 대사였을 것이다.
“우리 십 년 후에 뭐 하고 있을까?”
“잘되면 그게 첫사랑이니? 마지막 사랑이지.”
이 영화를 본 것도 꼭 십 년 전이었다. 그때 나는 갓 새내기였고, 동성 친구들과 다 같이 정말 아무런 기대도, 생각도 없이 봤었다. “이건 30대인 사람들이 공감하는 영화래.” 다소 재미없다고 느낀 우리에게, 한 친구가 그렇게 말했다. 30대라, 그때는 너무나 멀게 느껴졌었는데. 스무 살의 나는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서른 살쯤 나는 첫사랑을 갖고 있을까? (영화에서처럼) 그 사람을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동시에 아름답게 추억하고 있을까? 첫사랑이 마지막 사랑은 되지 않았을까.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났고, 어느덧 삼십 대가 되었다.* 과거의 내가 품었던 질문에 답할 차례이고, 또 답할 수 있을 듯하다.
십 년 후의 나는,
기대했던 대로 첫사랑이라 할 만한 사람을 만났다
그러나 지금은 연락조차 하지 않는 사이다
심지어 소설처럼 우연히 손금 봐주는 사람을 만나 “첫사랑과 다시 만날 가능성이 있느냐”고 질문했더니 그 사람은 “이미 지나간 인연이라 누굴 만나든 상관없다”라는 말까지 했다
그러므로 그 시절의 기억은 그저 한때의 추억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나이가 들고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만나니까, 또 많지는 않지만 몇몇의 연애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세상에 영원한 사랑은 없다는 사실, 그러므로 첫사랑도 별 거 아니라는 사실. 영화 《건축학개론》의 주제도 이것이 아닌가. 당신의 첫사랑이 아름답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그저 그때의 풋풋한 추억이 아름다운 것이지, 첫사랑 자체가 아름다운 게 아니라고. 너무 날 것의 사랑은 쉽게 상처받았고, 그래서 상처를 주었고, 좌충우돌하며 짝사랑인지 연애 감정인지 집착인지 미련인지 걸레짝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를 했었다.
지난한 그 과정 끝에 비로소 ‘연애’라 부를 만한 무언가를 어떻게 하는지 알게 되면, 첫사랑의 실수와 실패와 아픔은 더 유별나게 느껴진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어떠한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는 무엇인지.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포기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이러한 자기성찰이 끝난 사람이야말로 비로소 연애도 잘할 텐데, 첫사랑에서는 그것을 거의 전혀 모른 채 그저 ‘사랑’에 뛰어든다. 모르는 상황에서 부딪치고 찢기고 깎인 경험. 그 경험이 첫사랑을 더 유별나게 만든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란 말도 옳다. ‘설마 내가?’라는 생각부터 드는 게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자. 첫사랑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배웠지만, 그런 교훈 없이 좌충우돌하는 연인을 만나본 적은 없는지. 그리하여 그 사람 때문에 (첫사랑과는 다른 결로) 가슴 아파하고, 힘들어한 적은 없는지. 그렇다면 당신은 그 사람의 첫사랑이 될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그런 사랑을 배우기 전까지는 누구나 ‘첫사랑’을 시작하기 전일 테니까.
사진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기억 속에서의 첫사랑은 늙지 않는다. 그리고 당연히, 나도. 그렇기에 그 기억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가장 어리고 젊고 아름다웠던 날을 떠올리게 되므로. 그러나 명심해야 한다. 잘되지 않은 첫사랑은 결코 마지막 사랑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국, 첫사랑이 아닌 ‘끝사랑’을 찾아 거기에 정착해야 한다. 《건축학개론》의 승민이 결국 서연을 다시 만나지 않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듯이.
* 이 글을 쓴 시점은 2023년으로, 정확히는 영화가 개봉한지 11년 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