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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유 Oct 05. 2023

늦은 첫 연애에 관하여

 나의 개인적인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나는 꽤 오랫동안 ‘본격적인 연애’라 부를 만한 것을 해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쓰는 게 더 적절하려나?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되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물론 연애를 아주 못한 것은 아니었다. 배송-도착-반품에 해당할 만큼 아주 짧게 만난 인연도 있었고, 사귀지는 않았지만 제법 길게 ‘썸’을 탄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훨씬, 아주 오랫동안, 짝사랑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연인끼리 긴 시간 동안 서로 사랑하는 ‘연애다운 연애’는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모태 솔로’였단 뜻이다. 여러 변명을 하자면 할 수도 있겠으나, 여기서까지 그러진 않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이 글의 주제는 ‘모태 솔로 기간’의 유익과 아름다움에 대한 것이니까. 



 

 본디 연애란 무엇인가.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는 일이다. 한 사람만 사랑해서도 안 되고, 하나가 아닌 여러 사람을 사랑해도 아니 된다. 원리는 간단하지만, 모든 갈등과 문제가 그러하듯 연애에도 수많은 복잡한 일들이 생겨난다. 


 서로 사랑하는 무게가 다르거나,

 여러 사람과 연애 관계를 가지거나,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고 행동으로는 실천하지 않거나,

 그와 반대로 헌신하고 봉사하되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거나,

 개인의 감정 기복에 따라 사랑과 헤어짐을 너무 쉽게 결단하거나,

 상대방을 복종시키려고 애쓰거나,

 혹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거나,

 사랑을 이유로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거기에 지친 나머지 예의를 차리지 않고 이별하거나,

 혹은 바로 그래서 상대방을 괴롭히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거나,

 사랑을 물질로만 또는 정신적인 것으로만 생각하거나,

 사랑에 너무 과한 의미 부여를 하거나…….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 연애 또한 관계의 일종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서 아주 많은 경우의 수가 탄생한다. 집착 당하는 관계가 싫어서 다른 사람을 만났는데 오히려 본인이 집착할 수도 있고, 지금 연인과 정신적인 교감이 없다고 생각하여 다음 연애에서는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을 만나 크나큰 괴로움을 경험할 수도 있다.


 그런 연애를 몇 번 한 사람은 ‘상처를 포함한’ 경험이 쌓인다. 경험은 어쨌든 경험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만날 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기억은 상처를 포함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다음 연애에 영향을 미친다. 첫 연인이 집요할 정도로 내 사생활에 간섭했다면, 다음 연인에게는 사생활을 존중해 달라고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과할 정도로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길 바라는 나의 태도는 새로운 연인과의 신뢰 관계에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균열을 만든다. 그 끝이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연애를 많이 한다고 연애를 잘하는 건 아니다. 사람 관계란 과학이나 기술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사람 상대를 많이 한 영업직이나 교사가 연애를 제일 잘하겠지. 연애의 끝은 이별 아니면 결혼일 텐데, 이별이라는 실패의 경험이 쌓일수록 오히려 속에는 상처만 생기고 이루지 못한 욕망만 쌓인다.


 “넌 왜 이렇게 비밀이 많아? 항상 거짓말을 하니 널 믿을 수 없어.”

 “이건 내 ‘연애 방식―집착하던 전남친1과 날 믿지 못하던 전남친2와 똑같이 거짓말하던 전남친3에게 상처 입은 기억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사생활을 공개하지 못하는 방식’일 뿐이야!”


 첫 연애는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보통 첫 연애가 기준점이 되기 때문에 첫 연애에서 상처 입은 사람은, 치열한 자기성찰이 없는 한 그다음에도 같은 방식으로 사랑하다 상처받거나,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 다른 방식으로 보상받으려고 하다 실패를 겪는다.


 뒤늦게 연애 시장에 진입하고 나니, 첫 연애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상대방이 첫 연애 상대보다 못하다고 생각해도 문제, 첫 연애에서 배운 잘못된 사랑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도 문제, 첫 연애를 잊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만약 잘못 끼운 단추처럼 잘하지 못한 첫 연애의 실패를 극복하고 싶다면 더욱 나은 방법으로 사랑을 해야 하는데, 이미 저편의 기억으로 사라진 첫 연애를 현실로 소환하여 ‘그것보다 잘하기’란 몹시 어렵다.


 그렇다면 첫 연애를 잘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저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하면 된다. 연애는 스펙이 아니다. 꼭 일찍 할 필요도, 남들이 볼 때 이상적인 시기에 할 필요도, 또 모든 이가 선망하는 사람만 만날 필요도 없다. 자신의 중심을 단단히 세우고, 마음껏 사랑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마음을 단련하면 된다. 물론 사랑은 이론이 아니라 실전이기에 예습한다고 반드시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실전에 앞서 우리는 모두 훈련하고, 기술을 익히고, 연습한다. 하물며 사랑이야 다르겠는가? 뒤늦게 연애를 할 때의 이점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든 독서를 하든 짝사랑으로 고생하든 어쨌든 사랑을 오래 사유하고 고민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연애도 ‘사랑’이다. 단지 외로워서 연애하는 것과 사랑이 무르익어서 연애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연애를 몇 번 했는지가 자랑거리가 되고 ‘모솔은 싫어요’를 당당히 외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요즈음, 무르익지 않은 연애를 거부하며 묵묵히 자신의 심지를 굳히는 사람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글이 되었기를.


@BingImageCreator #late_first_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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