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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유 Oct 06. 2023

우리의 첫 만남은 위대하지 않겠지만

 사랑 이야기, 곧 로맨스에 빠질 수 없는 재료는 첫 만남과 위기 그리고 결실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듣는 이가 가장 관심 있는 부분은 첫 만남이다. 첫 만남에서 흥미를 느끼기 힘들다면, 위기나 결실은 어차피 뻔할 것이기 때문이다. 식어버린 열정, 부모님의 반대, 경쟁자의 등장, 일이나 학업의 방해 등 사랑 이야기에서 위기는 대개 비슷하며 결실 또한 결국 ‘잘 되거나, 안 되거나’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만남은 다르다. 첫 만남만큼 사소해 보이나 위대하고, 지루해 보이나 로맨틱한 것도 없으며, 거기에는 또한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어떻게 만났대?” 소개팅으로, 헌팅 포차에서 번호를 따서, 우연히 길을 가다가, 어려울 때 도와줘서,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그냥 분위기에 취해 첫 키스를 하는 바람에, 부모님이 만나 보라 해서, 물건 떨어뜨린 걸 주워줘서, 옆 반 애가 알려줘서, 친구의 친구가 사진 보고 연락해서, 옆집에 살아서……. 그리고 사건만큼이나 셀 수 없이 다양하게 등장하는 그 사람의 매력 포인트들. 따라서 첫 만남은 연애 소설에서만큼이나 현실 연애에서도 중요하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첫 만남의 기억과 두근거림은 점점 희미해진다는 사실이다. 앞서 말했듯이 모든 연인은 비슷한 종류의 위기를 겪고, 두 가지 결론 중 하나에 이르게 된다. 그럴수록 복잡다단했던 첫 만남의 기억은 아스러지고, 몇몇 충동적인 이들은 다른 사람과의 또 다른 첫 만남, 그 두근거림을 찾아 헤맨다. 위대해 보였던 첫 만남은 평범하디 평범한 사건이 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례를 보라. 세기의 로맨스로 불리며 여전히 2차 창작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첫 만남은 진부한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은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만나냐고? 평소 로잘린을 흠모하던 로미오는 그녀가 수녀가 되기로 결심하자 절망에 빠졌으나, 이내 가면무도회에서 줄리엣을 만나 다시 사랑에 빠진다. 그 이후는 우리가 아는 대로. ‘첫사랑’을 잊지 못해 절규하던 차에 ‘찐사랑’을 만난 것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거리다.


 결국 모든 위대한 첫 만남도 그 끝은 사소해진다는 슬픈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이에 맞서는 최선의 방법은 새로운 만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첫 만남을 계속 아름답게 기억하는 일이다. 오해하진 마시라, ‘그때가 좋았지’와 같이 후회스러운 어투로 기억하라는 건 아니니. 단지 우리의 첫 만남이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웠는지, 그래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가꾸어 온 사랑이 얼마나 귀중하고 소중한 것인지 생각하라는 말이다. 


 이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배(미사)와도 비슷하다. 전통적인 예배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행위다. 예수와 인격적으로 만난 신자는, 비록 매 순간 감동을 할 수는 없을지언정 예배를 통해 예수와의 첫 만남을 기억하고 기념한다. 이처럼,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는 모든 순간이 항상 행복하고 좋진 않지만, 또 처음만큼이나 특별하고 아름다워 보이진 않지만, 그 특별함과 소중함을 계속 기억해야 한다.


 예전에는 사랑이 마치 티백에서 차향이 흘러나오듯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한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생각이 다르다. 그렇게 우러나오는 것도 사랑이지만, 동시에 억지로 끌고 나가려는 마음도 사랑의 한 종류라고. 연인이 서로에게 실망하며 화를 내는 것도, 때로는 권태감을 느끼며 어찌할까 고민하는 것도, 상대방에 대한 실망과 서러움까지도, 모두 한 종류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없다면 그 사랑은 그저 연민이거나 동정이거나 짝사랑이거나 존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첫 만남이 퇴색되어 갈 때, 적어도 우리에게는 위대했던 그 첫 만남을 기억하는 것. 사랑하는 이를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는 비결이다.


@BingImageCreator #첫만남_남녀_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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