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연인의 일생을 가만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리고 그들이 서로에 대하여 질문하는 숫자를 세어 본다고 하자. 어떤 모양새가 만들어질까?
아마 처음에는 무수히 많은 질문이 오갈 것이다. 이름과 나이부터 시작해서 어디 사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비가 오면 어딜 가고 싶은지, 좋아하는 분위기는 어떤 것인지 등. 비슷하면 비슷하다고 좋아하고, 다르면 다르다고 좋아한다. 서로에게 질문이 많은데 행복함을 느끼는 시기는 아마 이때가 유일할 것이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누구예요?
“평소에 어떤 취미 활동을 하세요?”
“어떨 때 행복하다고 느끼세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질문은 줄어든다. 이미 알고 있는데, 굳이? 심지어 알고 있는 정보를 질문하는 것 자체가 무례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은 줄어들고, 질문의 질도 압축적으로 변한다.
“밥 먹었어?”
“어디서 만날까?”
“이번 주말에 뭐 할까?”
주식과 같이 예측되면 재밌는 분야가 있지만, 예측되면 오히려 재미없는 분야도 있다. 연인 간의 관계는 후자에 속한다. 서로의 비밀이 한 꺼풀, 한 꺼풀 벗겨져 마침내 서로 완벽히 잘 아는 사이, 다시 말해 연인이 되면 역설적으로 서로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잃는다. 설렘과 영감은 사라지고, 정과 의리가 빈자리를 채운다. 그렇게 헤어짐의 시간이 가까워지면, 그때부터 다시 질문의 양과 질이 늘어난다. 무서울 정도로.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어디서 뭘 한 거야?”
“정말 나를 사랑하기는 하는 거야?”
인류의 최고 지성 철학자들마저 대답하기 힘든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그야말로 질문의 질적 변환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상대방에 대한 대답을 요구했던 예전의 질문과는 달리, 이런 종류의 질문에는 대답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 질문은 곧 상대방에 대한 요구가 되고, 이런 질문들이 많아질수록 이별의 시간은 점점 가까워진다.
따라서 아주 조금이라도 긴 사랑을 위해선, 풍성한 질문을 준비해야 한다. 사랑의 징조가 질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사랑하면 묻게 되어 있다. “저도 잘은 몰라요. 하지만 사랑이 뭐 별건가요?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사람 이름이 뭔지 묻고, 그 이름 가진 여자를 사랑하고, 알아가고, 그게 사랑 아닙니까?” 로맨스 영화 《아는 사람》에서 나온 대사다. 그렇다면 사랑은 비밀 속에서만 탄생하고 소멸하는 것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