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주로 한두 가지 종류의 감정 상태를 표현한다. 애타는 마음과 그리움이 그것이다. 어느 때고 그 사람이 보고 싶은 마음, 그 사람 앞에서는 어쩔 줄 모르는 마음, 그 사람에게 무엇인가 해 주고 싶은 마음,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마음.
하지만 이런 마음은 대개 오래가지 못한다. 부모님이 열렬한 사랑을 나누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는 자녀가 드물듯, 애타는 마음과 그리움은 유효기간이 그다지 길지 않은 감정이다. ‘보고 싶은 내 연인’에서 ‘원수 같은 자식’으로 변하기까지는 10년도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 오랜 시간 헤어지지 않는 연인들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성리학에서는 인간의 본성에는 네 가지 마음씨, 곧 ‘사단’四端이 있다고 보았다. 이는 ‘인의예지仁義禮知’로 표현할 수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惻隱之心,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불의를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 겸손하고 양보하는 마음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是非之心으로 설명한다. 성리학은 그중에서도 '인仁'이야말로 네 가지 마음씨의 바탕이 된다고 서술하는데, 仁은 다른 세 가지 본성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조금 고리타분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성리학은 엄연히 조선 500년의 근간이 된 철학이다. 그런 성리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仁의 실천, 곧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행하는 것이다. 조선의 왕과 신하들이 성리학을 평생 공부했던 까닭은 이 마음을 지니기 위함이었다. “군주는 어버이의 마음으로 백성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은 곧 조선의 정책으로 반영되어 나타났고, 비록 여러 실패 사례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500년이라는 세월을 견딜 수 있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 측은지심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한 국가를 지탱할 정도로 인간 마음의 원형이라면, 누군가를 사랑할 때의 증거 역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그 사람을 생각할 때 측은지심이 있는가.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라는 어느 노래 제목처럼, 그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가. 비록 애타고 그리운 마음은 많이 사라졌어도,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이 불쌍하게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그 사람을 여전히 혹은 정말로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