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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by 책빛나

어린 시절 우리집 부엌은 연탄이 있는 비좁은 공간으로 기억한다. 어렵게 살던 시절이었지만 엄마가 저녁에 구워주시는 고등어나 갈치, 그리고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기억난다.


친구들과 뛰어놀다 들어왔을때, 부엌에서 이런 맛있는 냄새가 난다는 건 정말 행복한 것이었다. 물론 그때는 그게 행복인지 뭔지도 몰랐을 것이고 그저 당연한 일상이었겠지만, 엄마는 고된 직장에서 퇴근해 오시자마자 옷도 못갈아입고 요리를 하셨을 것이다.


다들 그렇겠지만 나도 아이를 낳아 키우기 전엔 사실 부엌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부엌 살림에 조금씩 집착 아닌 집착을 하게 된 것은 아이를 낳고 시부모님과 한 집에서 살고 난 이후였다. 직장생활 때문에 시부모님이 아기를 돌보아주실 수 있게 한집살이를 했는데, 그러다보니 부엌은 늘 시어머니가 주인이셨다. 나는 그저 하숙생이나 철없는 딸처럼 매 끼니만 맛있게 얻어먹고, 설거지나 거드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 때 부엌 살림에 대한 묘한 소유욕이 조금씩 생겨났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생활 습관대로 주방도구나 그릇들을 배치하고 사용하셨는데, 내 입장에서는 그것이 못내 맘에 안들거나 불편하기 일쑤였다.


결국 속으로 얼른 분가해서 내 주방을 내 스타일로 꾸미고 부엌살림을 해보리라 하는 다짐을 하였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뭐 대단하게 부엌살림을 잘하거나 주방을 잘 꾸미는 것은 아니다. 그냥 부엌에는 살아있다는 생동감이 있다. 부엌에서 들리는 칼질하는 소리, 야채 볶는 소리, 찌개 끓는 소리, 그리고 달그락 달그락 그릇 씻는 소리. 너무나 익숙한 생활의 풍경이다.


매일매일 한 식구를, 한두 명의 사람을 먹이고 자라게 하고 또 늙어가게 하는 곳. 하지만 누군가의 헌신과 사랑이 가득한 곳, 거룩한 공간이 부엌이다.


또 우리는 절망의 순간에도 밥을 먹는다. 우리가 슬픔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첫번째 행동이, 밥 한숟가락을 떠서 꼭꼭 씹어 천천히 먹는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요리도 그리 잘하지 못하는 나지만, 아이를 위해 또 반가운 친구를 위해 요리해서 함께 맛있게 먹는 순간만큼 충만한 순간도 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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