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라는 이름의 작은 파열음들..
특허 업계 특성상 상반기는 늘 한가로운 편이다.
엔지니어에서 특허업으로 전업한지도...
어느덧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더구나 한 직장에서 수년동안 다니다보니
어느정도 타성에 젖어가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일이 없는 만큼 마음도 느긋해지고,
일이 많아지면
이제부터 다시 일이 많아지는구나하고,
그대로 따라가기 바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하반기가 시작되면,
잠잠했던 파도가 몰아치듯 업무가 쉴새없이 쏟아진다.
보통 7월 즈음부터 일이 많아지기 시작하니...
휴가도 길게 다녀오는 일도 거의 없었다.
휴가를 길게 다녀오면
기일 맞추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특허 명세서만 작성하는 건 차라리 쉽다.
본인 스스로가 스케줄 조절이 가능하다보니,
퇴근 후 저녁시간에도 하면 되고,
주말에 더 일하면 기일을 맞출 수 있었다.
그러나, 특허 분석 업무라도 맡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정해진 회의 일정은 있고,
분석할 특허의 양은 넘쳐나고,..
그러다보면 휴가도 맘대로 다녀올 수가 없는 것이다.
번아웃을 본격적으로 느껴본 그 해 하반기는 유독 심했다.
상반기 실적은 거의 없었고,
하반기에 모든 걸 채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야근은 기본, 주말에도 일을 해야 겨우 마무리가 가능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특허 문서 작성 외에 별도로 맡은 과제도 병행해야 했다.
과제 발표 때문에 지방 출장도 잦았다.
하루는 평택, 또 하루는 창원, 또 하루는 동탄....
일정은 늘 꼬였고, 체력은 바닥을 찍었다.
코로나 이후, 회사 전반적으로 경기도 나빠졌고,
내부 사정으로 업무 분배도 매끄럽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실적을 채운다는 것 자체가 고문이었다.
출퇴근만 해도 편도 2시간.
왕복 4시간을 도로 위와 지하철 안에서 쏟아부었다.
아직 어린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도 필요했고,
육아와 업무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겹쳤다.
몸은 점점 말을 듣지 않았다.
출근길 가슴이 답답했고,
잠을 자도 피로가 사라지지 않았다.
운동은 거의 못 했다.
이유 없이 아픈 날이 많았다.
조금만 피로해도 고열이 났고,
몸살이 찾아왔다.
소화불량에 가슴 통증...
더구나 두통을 비롯한 현기증까지...
병원에 가면 늘 똑같았다.
특별한 이상은 없으니 약을 먹고 지켜보자는 말뿐이었다.
그런 날들이 계속 이어졌다.
그때도 운동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었다.
체력 하나만큼은 자신 있던 시절도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기보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이
나를 책상 앞으로만 이끌었다.
시간을 쪼개서 독서를 했고,
주식 공부를 했고,
부동산 공부를 했고,
블로그를 운영했고,
에세이 공저도 냈다.
캔바 디자인을 배우고,
사주와 타로 공부까지 병행했다.
돌이켜보면, 몸이 남아날 리 없었다.
운동보다는 당장 눈앞의 새로운 배움이나 취미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 일들이 당장 현실적인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지만,
무언가 하지 않으면 불안감이 생겼다.
오히려 다른 무언가에 집중할때면,
뭐라도 하고 있구나하는 안도심이 생겼다.
그리고 재미도 있었으니...
책상을 떠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일터에선 실적 압박이 점점 심해졌다.
그런 중에 업무 실수도 나오고,
점점 더 상사의 눈치를 보게 되고,
스트레스는 극에 달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까지 해서 내가 뭘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스쳤다.
이미 몸도 마음도 바닥을 친 지 오래였다.
그렇게 버티던 어느 날,
스스로를 인정하게 됐다.
'이대로 계속 가다간, 정말 무너질지도 모르겠다.'
그때부터 퇴사의 두 글자가 머릿속에 또렷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현실적인 고민은 여전했다.
가족, 경제적인 문제, 미래의 불안.
하지만, 더는 버티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결심했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내 모든 게 무너질 거야.'
(다음 화, 퇴사 후의 허망함과 새로운 고민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