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과 나

by 읽고쓰는스캇

최근 디즈니플러스에서 애니메이션 <퇴마록>을 보았다.

원작 소설은 워낙에 유명해고, 우리 집 책장에도 꽂혀있었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며 중학생 여름을 함께한 책이기도 하다. 그런 소설을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만나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재생 버튼을 누르는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고, 다 보고 나니 잊고 있던 추억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퇴마록>을 처음 만난 건 초등학생 시절이었다.

어머니가 <퇴마록:국내 편>을 구매했고, 재밌게 읽으셨지만 어느 날부터는 책을 읽지 않으셨다. 처음에는 책에 흥미가 떨어져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다 기회가 돼서 어머니께 여쭤보니 퇴마록을 읽을 당시, 할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아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래서 <퇴마록>은 책장 속에 조용히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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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잠든 책을 깨운 건 바로 나였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여름밤마다 <퇴마록>을 읽었다. 밤 11시쯤, 침대 옆 조명을 켜고, 긴장 속에 주인공들의 퇴마 여행을 동행했다. 그러나 나 역시 세계 편은 끝내 읽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 외할아버지 몸이 조금 편찮으셔서 마음이 불편했고, 책은 더 이상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단순한 우연이겠지만, 다시 책을 읽진 못했다.


1998년, 영화 <퇴마록>이 개봉했다.

안성기, 신현준, 추상미가 주연을 맡았고, 영화 내용은 소설의 초반부와 유사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극장에서는 보진 못했고, 비디오로 나왔을 때 빌려 보았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몇 장면은 아직도 뚜렷하다. 현암이 들고 다닌 칼이 현암의 가슴을 찌르는 시퀀스, 경찰이 배에 부착된 부적을 떼내는 장면, 박신부가 퇴마 신부가 된 장면 그리고 마지막 퇴마 의식 장면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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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에 의하면, 영화에 꽤 많은 CG와 이펙트가 들어간 걸로 알고 있다. 98년도 당시 기술을 생각하면, 이 영화에 많은 기술이 들어간 걸로 알고 있다. 당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퇴마록>을 홍보했던 기억이 난다. 어린 나는 흥미롭게 이 영화를 봤지만, 훗날 알게 된 사실은 원작자 이우혁 작가가 영화에 크게 만족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올해,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만난 <퇴마록>.

오프닝에 등장한 로커스 회사명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CG 업계에 몸 담았을 때, 이 회사가 애니메이션 <레드슈즈>를 제작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레드슈즈>가 꽤나 괜찮은 평가를 받았기에, <퇴마록> 애니메이션이 조금 기대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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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에서 캐릭터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다.

넷플릭스의 <아케인>, 소니의 <스파이더맨:뉴 유니버스>를 떠올리게 하는 스타일이었고, 3D 모델링 기반에 2D적인 느낌이 나는 질감이 좋았다. 다만 박신부의 캐릭터는 내 기억과 많이 달랐다. 내가 기억하는 박신부의 모습은 안성기 배우의 이미지와 같다. 그런데 애니메이션 속 박신부의 외형은 너무 거대했다. 주기도문을 외우는 손이 커서, 그 손으로 악마를 한 대 치면 손쉽게 퇴마 될 것만 같았다.


애니메이션의 초반부, 특히 박신부와 악마의 캐릭터 디자인, 배경, 캐릭터들의 움직임 그리고 이펙트까지 모두 만족스러웠다. 한국에서 이런 수준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그러나 아쉬움도 남았다. 입 모양과 대사가 미묘하게 어긋났고, 러닝타임 85분은 너무 짧았다. 원래는 더 긴 시나리오였을 거 같은데, 여러 이유로 축약된 듯했다. 또한 원작 소설에서의 4인방으로 활동은 시작하지 못했고, 세 인물의 소개와 세계관 설명에 그쳤다는 점도 아쉬웠다.


쿠키 영상에 승희가 다시 등장해 후속 편을 암시했다. 만약 후속 편으로 나온다면 어쩌면 진짜 <퇴마록>의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퇴마록>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CG 일을 할 때 애니메이션 작업에도 도전했더라면 어땠을까? 영화보다 어려운 과정일지, 만약 프로세스가 있다면 무엇이 다른 지, 영화의 창작과는 다를 거 같은 데 어떨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 잠시 남았다.


쿠키 영상 속 승희의 내용도 조금 나오기에 후속작을 암시했지만, 흥행 성적을 보면 후속작이 나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개인적으로는 나왔으면 좋겠다. 후속작이 나온다면, 조금 더 <퇴마록>스러울 거 같고, 이번 편의 아쉬움을 보완하면 더 좋은 작품이 될 것만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만들어낸 로커스 애니메이션과 작품에 참여한 모든 아티스트들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 애니메이션 <퇴마록> 덕분에 예전 추억들이 다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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