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어느 토요일, 나는 회사에 출근했다.
CG회사의 장점은 영화를 만든다는 점이었지만, 단점은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이르면 어쩔 수 없는 주말 출근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마치 게임회사가 론칭을 앞두고 매일 야근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회사도 그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날도 어김없이 토요일에 출근했지만, 다행히 이른 시간에 회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빠른 퇴근이 좋았다. 집에 곧장 들어가기 싫었던 나는, 집 근처 강변 CGV로 발길을 옮겼다. 특별히 보고 싶었던 영화는 없었고, 가장 가까운 상영작은 <위플래쉬>였다.
오후 네 시쯤 시작된 상영관은 한산했다. 내 옆 좌석은 비어 있었다. 콜라 한 잔을 들고 큰 기대 없이 자리에 앉았다. 사람도 적고 조용해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다리를 꼬고 콜라 한 모금을 마시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초반만 봤을 때에는 그냥 음악 영화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플래처 교수(J.K. 시몬스)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분위기는 달라졌다. 그의 언행은 스크린을 넘어 좌석에 앉아있던 내 자리까지 다가웠다. 앤드류의 뺨을 때리며 소리치는 장면에서는, 마치 내가 음악실 한가운데 함께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앤드류에게 소리치는 장면을 보며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 들었다.
그러나 <위플래쉬>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플래처 교수가 해임된 뒤 다시 앤드류를 우연히 만나면서 시작된다. 플래처 교수와 앤드류가 우연히 재즈바에서 만나면 나눈 대화에서 플래처 교수의 한 말,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고 해로운 말이 '그만하면 잘했어'야"
그 순간, 그의 행동에 묘한 정당성이 생기는 듯했고, 나 또한 그 말에 흔들렸다.
토요일에 출근했던 나에게 묘하게 닿았다. "토요일에 출근한 오늘의 희생이 곧 내 성장을 위한 과정일 수 있다"는 식으로.
<위플래쉬>를 보고 난 뒤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누군가는 플래처 교수를 이해하지 못했고, 누군가는 그의 말에, 방식에 공감했다.
특히 나와 친했던 한 상급자는 웃으며 말했다.
"성장을 위해서는 시간을 써야 하고, 야근을 해서라도 퀄리티와 실력을 올려야지.'라고.
그땐 나도 어느 정도 동의했다. 내 실력이 부족하면 시간을 더 쏟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직책이 올라가자 생각이 달라졌다.
야근을 해서라도 영화 퀄리티를 올려야 했다면, 그것은 곧 회사에 실력자가 부족했다는 뜻이었다.
만약 실력을 갖고 있는 상사가 있었다면, 일하는 방식이 달라져 야근은 줄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회사의 구조와 상급자에 대한 의문이 생겼고, 결국 난 퇴사에 마음이 기울었다.
결혼을 하고 카페를 차린 지금, 그 시절의 경험은 추억이 되었다.
만약 내가 다른 CG회사를 다녔다면, 나 역시 어쩌면 또 다른 플래처 교수가 됐을지도 모른다.
내 안에는 여전히 작은 플래처 교수가 살고 있다. 디저트를 만들 때, 글을 쓸 때,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면 나의 작은 플래처 교수가 속삭인다. "그만하면 잘했어"가 아니라, "조금 더 연습하면 분명 더 나아질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