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와 나

by 읽고쓰는스캇

이번에 다룰 영화는 원빈 주연의 <아저씨>이다.


사실 쓰려고 했던 다른 영화가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는 도중, 문득 <아저씨>와 관련된 추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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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여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단수 안내' 공지가 붙었다.

오래된 아파트라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단수가 되었고, 물탱크를 청소할 때가 있었다. 다행히 하루 종일은 단수가 아니고, 대략 4시간 정도였다. 여름 방학을 집에서 뒹굴거리며 보내던 나는 어머니와 함께 물이 안 나오는 집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집 근처 테크노마트에 가서 은행일을 보고, 점심을 먹었음에도 물이 나오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었다. 무엇을 하며 어머니와 시간을 보낼까 고민을 하다가 불현듯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아저씨>가 떠올랐다. 어머니께 "시간도 때울 겸 영화 한 편 보실래요?"라고 여쭸더니, 어머니도 좋다고 답하셨다.


<아저씨>에 큰 기대는 없었다. TV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잠깐 본 적만 있었다. 정말 기초적인 정보인 주연과 대략적인 줄거리 정도만 알고 있었다. 굳이 극장에서 봐야 할까 싶었지만, 시간을 보내기에는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표 2장을 예매했다. 영화관에는 평일 오후임에도 자리는 꽉 찼던 걸로 기억한다.


영화가 시작되고 초반은 무난했다. 하지만 소미가 납치된 이후로는 조금 거친 장면이 많이 나왔다. 액션은 화려했고, 영화의 컷도 빠르게 편집되어서 액션감을 더했다. 거기에 더해 원빈의 외모까지 더해져서 집중하며 보게 되었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잔인한 장면이 늘어나면서, 내가 어머니가 보시기엔 조금은 과한 영화를 권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곁눈질로 보니 다행히도 어머니는 영화에 빠지신 듯 보였다.


그렇게 영화를 보는 도중, <아저씨>에서 명장면인 원빈의 '헤어컷' 장면이 나왔다.

남자인 내가 봐도 '오~ 멋있다'라고 생각들었다. 순간 본능처럼 고개를 돌려 어머니의 표정을 봤다. 그때 내가 본 어머니의 얼굴은, 말 그대로 여고생 같았다. 눈은 동그랗게 커지고, 눈에서는 당장이라도 하트가 나올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어머니는 평소 TV를 보며 생전 한 번도 "누가 잘생겼다, 멋있다"라는 말씀을 거의 하지 않으셨다. 근데 그날은 내가 알던 어머니와 많이 달랐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영화관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엔딩 크레딧 올라가고, 영화 얘기를 잠시 나눴다.

영화가 잔인하다는 장면, 인상 깊었던 장면을 공유하고, 내가 영화관에서 본 그 표정 이야기를 꺼냈다. 내 말을 듣던 어머니는 손사래를 치면서 "내가? 언제 그랬어?"하고 웃어넘기셨다. 본인은 모르셨겠지만, 나는 그 장면, 그 순간 어머니의 반짝이던 눈을 봤다.


그날 이후 OCN에서 <아저씨>를 다시 볼 때마다 그 어머니의 얼굴이, 표정이 떠오른다.

신기하게도 그 일을 기점으로, 어머니는 TV를 보시다가 "저 연예인은 참 잘생겼다"라는 말을 종종 하셨다. 어쩌면 이전에도 그런 말씀을 하셨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한 귀로 듣고 흘렸을 수도 있다. 여하튼 그때 영화관 이후로 어머니가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을 조금은 당연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요즘 어머니는 임영웅을 좋아하신다. 몇 달 전, OTT에서 임영웅 콘서트가 공개되었을 땐, 어머니는 저녁 설거지도 뒤로 미루시고 TV 앞에 쪼그리고 앉아 보셨다. 그 모습이 조금은 낯설기도 했지만, 원빈 덕분에 조금은 익숙하기도 했다.


나이는 예순을 넘기셨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에는 나이가 중요치 않다는 걸 그때 배웠다. 언젠간 나도 엄마 연세가 되면, 어느 한 연예인을 좋아하며 챙겨보지 않을까 싶다.


몇 주 뒤면 추석이다. 이번 추석엔 어머니께 한 번 여쭤봐야겠다. 요즘은 누구를 제일 좋아하는지.

아마 어머니의 대답이 추석 음식을 만들 때, 밥상 위의 대화 소재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날의 단수 덕분에, 원빈 덕분에, 그리고 <아저씨> 덕분에 어머니와의 소소한 데이트가 내 머릿속에 오래 남는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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