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히스토리 X>와 나

by 읽고쓰는스캇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같은 영화가 다르게 보일 때가 있다.

아마도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고, 생각이 깊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영화가 하나 있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영화, 바로 <아메리칸 히스토리 X>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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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아마 네댓 번쯤은 본 것 같다.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여러 시기에 나를 찾아왔다.


처음 본 건 중학생 시절이었다.

형이 논술 숙제로 본다고 비디오를 빌려왔고, 나도 옆에서 함께 봤다.

그때 내 기억에 남은 건 단 하나, 초반부의 흑백으로 연출된 살인 장면이었다. 차가운 톤으로 연출된 그 장면이 남았다.

그리고 에드워드 펄롱이 써온 페이퍼를 쓰레기통에 넣는 흑인 교사의 얼굴이 오래 남았다.


두 번째는 고등학교 종교 수업 시간이었다.

그때 선생님이 수업에서 보여주신 영화가 바로 <아메리칸 히스토리 X>였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감상문을 써야 했다. 나는 '백인 우월주의의 위험성'을 중심으로 적었다.

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연관지어서 적었고, 한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깨달았다고 썼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냥 교과서적인 감상이었다. 그리고 내 눈엔 '백인 우월주의'만 보였다.


세 번째로 본 건 대학생 때였다.

어느 날 갑자기, 이유 없이 이 영화가 떠올라 DVD를 빌려왔다.

이때부터는 배우 에드워드 노튼의 연기가 눈에 들어왔다.


기억에 남는 시퀀스는 감옥에서 세탁 일을 하던 흑인 동료가 떠오른다. 흑인 동료와의 관계 변화가 인상 깊었다. 같은 백인에게 폭행을 당하고, 자신을 공격할 거라 의심했던 흑인들이 오히려 자기를 가만히 내버려두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가 감옥을 퇴소할 때, 같이 일한 흑인 동료가 자기를 지켜줬다는 사실을 깨닫고, 변하게 된다.

이때 흑백과 컬러를 오가는 연출이 과거와 현재의 감정선을 보여주는 듯 보였다.

백인 우월주의였던 시절은 흑백으로, 거기서 벗어난 시절을 컬러로 말이다.

이런 연출이 그의 내면 변화를 더 또렷하게 보여줬다.


마지막으로 본 건 30대가 된 이후였다.

마치 정기적으로 <아메리칸 히스토리 X>를 찾아보는 거 같다.


30대가 되니 새로운 장면이 보였다.

데릭(에드워드 노튼)이 처음 백인 우월주의에 빠져드는 이유가 사실은 아버지의 말 한마디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아버지의 편견이 아들에게 전하고, 형의 사상을 다시 동생에게 이어진다. 증오와 차별은 그렇게 세습된 것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회의실에서 모여서 얘기하는 장면이다. 이때 왜 데릭 빈야드(에드워드 노튼)가 엇나가기 시작했는지, 백인 우월주의가 시작되는지 보여주는 시퀀스이다.

이때 문득 내 삶을 돌아봤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나 역시 부모님에게 어떤 생각을 물려받았을까? 그 질문이 오래 머물렀다.


영화의 결말은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다.

동생 대니가 죽는 장면은 몇 번을 봐도 슬프다.

하지만 배드 엔딩으로 끝났기에 영화의 메시지는 더 오래 남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해피 엔딩으로 끝났다면, 여운과 진심은 훨씬 옅어졌을 것이다.


<아메리칸 히스토리 X>는 1999년에 개봉했지만, 25년이 지난 지금도 현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

SNS가 발전하고, 세상은 연결되었지만, 그만큼 분열도 심해졌다. 누군가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우리'와 '그들'을 나누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마음이 더 커졌다.


그래서 그런가? 영화 속 대니 빈야드의 내레이션이 유난히 마음에 남는다.

증오심은 없어져야 한다. 화만 내고 살기엔 인생은 너무도 짧다.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린 적이 아닌 친구다. 적이 되어선 안 된다. 뒤틀린 열정으로 인해서 사랑의 끈이 끊겨선 안된다. 기억이란 신비한 감정은 다시금 부활해 인간의 선함을 지켜줄 것이다.

이 내레이션이 좋다. 기억이 인간의 선함을 지켜준다. 그 말이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하다는 생각 든다.

증오 대신 기억을, 분노 대신 이해를, 지금 나에게,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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