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현기 Apr 22. 2024

삶에도 버디가 필요하다.

대한민국 평범한 30대 중반의 직장인. 퇴근 후 동료들과 맥주 한잔에 피로를 날리는 걸 즐기는 사람. 그랬던 내가 변했다. 건강상의 이유도 컸었지만, 무엇보다 ‘낮아진 자존감’ 때문이었을 거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푹 늘어지는 느낌의 피부며, 밤잠을 설치는 적도 많았다. 늦게까지 마신 술과 기름진 음식 때문이었다. 만성 소화 불량으로 시달리던 시기. 아침엔 늘 겉옷 대신 피로를 입고 현관문을 나서는 기분이었다.

     

 독서를 시작했다. 매번 늦게까지 마시는 술자리를 어떻게든 피하기 위한 나만의 궁여지책이었다. 어디선가 ‘습관을 바꾸지 못한다면 환경을 바꾸라’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곧바로 실행으로 옮기기 위해 퇴근 후에는 술자리 대신 도서관을 향했다. 이후엔 체육관을 향해 수십 장의 원판과 밤늦은 시간까지 전투를 벌였다. 말 그대로 발악이었다. 중독을 이겨내기 위한 나만의 발버둥이었고.


 알코올 중독을 겪은 적이 있다. ‘운동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알코올 중독을 겪었다고?’. 사실 그 이유로 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크다. 헬스라는 운동. 영어로 하자면 ‘건강’이다. 즉 건강하기 위해 내 삶을 관리하고 훈련하는 과정인 셈이다. 몸을 크게 만들고 SNS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풀러언서’ 같은 몸짱이 되는 건 그 이후의 일이고. 내가 운동을 시작한 계기, 더는 술에 의존하고 싶지 않았다. 재미로, 또는 위로라는 핑계로 나의 하루를 술잔에 빠뜨려 보내고 싶지 않았다.


당시 나의 재미와 관심을 돌리려는 방법을 센터로부터 추천받은 적 있다. 여행을 떠나 보거나, 영화 감상을 해보거나, 어떤 재미있는 운동을 해본다든가 하는 등등의 건전한 취미. 전부 다 해봤다. 그러다가 끝에 다다른 기분이 들자 한 가지 질문이 생겼다.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철학적인 질문. 처음 있는 일이었다. 철학을 배운 적도 없고, 이런 분야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변하게 된 건 한 사람. ‘지금, 글을 쓰지 않으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할 것이다’라고 강하게 말씀해 주신 스승님. 이은대 작가 덕분이다.


 한 번은 서울에 들렀다가 유명하다는 대형 서점에 들른 적 있다. 교보문고다. 수만, 아니 눈으로 세기도 힘들 정도의 양이 가득 꽂혀있는 곳.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있다. 처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눈 감으면 생생하게 떠오른다. 마치 어제 다녀온 듯한 기분.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대한민국 최고 크기의 서점이라는 말에 들른 것 같다. 그날의 우연이 오늘의 운명이 될지는 그때까지는 몰랐다. 신간 도서 중에서 ‘최고다 내 인생’이라는 책을 골랐다. 바닥까지 내려간 자존감을 한 번에 끌어올리는 듯한 제목. 저자의 이름이 한 번에 읽혔다. ‘이. 은. 대’.


인터넷을 뒤져 저자가 운영하고 있다는 책 쓰기 수업을 찾아냈다. 처음에는 곧바로 신청하기에는 수업료가 만만치 않았다. 자그마치 200만 원. 한 달 급여와 맞먹는 수준. ‘무슨 대학교 한 학기 등록금도 아니고, 이거 사기 아니야?’.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대신 그날의 ‘최고다, 내 인생!’은 며칠 동안 완독을 마치고 밑줄까지 그어가며 또 읽었다. ‘이거. 한 번 해볼 만한데?’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 몇 번의 사업을 열었으나 실패를 밥 먹듯이 했다는 한 남자의 이야기. 파산 빛을 해결하지 못해 구속되어 감옥까지 다녀온 그의 일기가 그때만큼은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내다가 연락이 끊겼던 친구처럼 느껴졌다. ‘고생 많았다.’ 한 마디를 건네주고 싶었다. 그 뒤로 수업료를 마련하기 위해 몇 달 동안 돈을 모으기로 했다. 우선 술자리를 조금씩, 아니 아예 없앴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월급 때면 ‘숫자 0’이던 통장 잔액 바뀌기 시작했다.


 20년도의 일이다. 무작정 Fitness 대회에 나가겠다며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외쳤던 시기. 말 그대로 평범한 직장인이 독서와 글쓰기, 책 쓰기, 운동에 반 미쳐 보내던 때였다.

 점심시간과 퇴근 시간에는 직장 근처 도서관으로 향했다. 퇴근이 늦은 날이면 운동을 먼저 하고 24시간 개방되는 독서 카페를 찾았다. 집에 도착하면 새벽 두 시를 훌쩍 넘겨 있었다. 식단과 운동일지, 아직 쓰지 못한 초고를 완성하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기까지. 그리고 다시 아침 여섯 시 기상. 그 시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하루하루가 짧았다.


그렇지만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다시는 오지 않을 오늘을 살아내듯 살았다. 다이어트 땐 글 쓰는 일을 며칠 미루자, 어떻게 아셨는지 스승님에게 전화가 왔다. ‘왜 이번 주에 써야 할 글이 제출되지 않느냐고.’ 당시 서울을 비롯해 전국을 다니면서 글, 책, 독서 강연에 개인 저서를 출간 준비하는 분이었다. 제자만 해도 수백 명이었을 텐데도 내가 쓰는 글에서 ‘자신의 향기’가 난다는 말을 하며 얼른 초고를 완성해 보라고 독려했다.


 공교롭게도 그날이 대회를 마친 날이었다. 같이 대회에 참가한 운동 버디들과 헤어진 뒤였다. 차 안에서 손에 묻은 태닝 기름을 닦아내고 있는데 화면에 ‘스승님’이라는 세 글자에 얼마나 심장이 뛰었는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알고 있으니, 이제는 마무리를 짓자’라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한참을 운전석 핸들을 잡고 울었다. 일 년 동안 아무리 힘들었어도 고개 숙인 적 없이 오늘의 무게에 깔리면 내일은 어떻게든 이겨내리라 다짐하며 이겨냈다. 누구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도, 자랑하고 싶은 이야기도 아니었는데, 그날따라 그때의 질문 하나가 다시 목구멍으로 올라왔다.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그날 이후로 책을 더 읽었다. 닥치는 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가져다가 읽었다.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럴 만도 했다. 지금껏 책 읽는 본 적 없는데 점심시간에도 공터 그늘에 의자를 가져다가 놓고 앉아서는 책을 읽고 있으니 지나는 사람들에게는 ‘미친놈’으로 보일 수밖에. 이걸 어떻게 알았냐면, 친한 선배 S가 사무실에 찾아와 들려준 말이 있다. ‘갑자기 변하면 사람이 미쳤거나 혹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데, 뭐야, 왜 그래?’라는 말을 S에게 자주 했단다. 그런 말을 그는 나에게 말을 전해 준 거고.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렇게 ‘이상한’ 일 인가 싶었다.


  거의 매일 운동을 한다. 센터에 나가지 못하는 날은 거의 없다. 이유를 만들어 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술 없는 저녁 약속을 만들었다. 술 대신 제로 사이다를 마셨다. 그러고 보면 식사값보다 몇 년 전부터 무섭게 오른 술값이 계산서에 더 컸다. 결제는 내가 했다. 술에 의존하며 방황했던 내 모습을 지켜보던 친구, 선후배 동료들에게 감사의 의미였다. 이 과정 역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부분 고주망태가 되어 카드를 건네주고, 다음날 1/N 하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대회를 마치고 첫 번째 출간을 목표로 하는 책의 초고를 완성했다. 알코올 중독을 운동과 독서로 이겨낸 한 사람의 이야기. 그러나 어디에도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출간을 못 했다. 너무 창피했다. 숨겨둔 나의 치부를 직접 꺼내어 자랑하듯 써놓는 모양새에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실 꾸준하게 써온 나의 ‘운동 일기’ 역시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4년이 넘게 걸렸다. ‘경험이 곧 글이다. 글이 곧 역사고, 역사는 자신의 삶이다.’라며 격려를 남겨주신 스승님 덕분에 나온 나의 속 이야기이다. 첫 만남 이후 수년이 흐르는 동안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별로 없지만, SNS, 전화, 문자, 때로는 카페에 남겨둔 나의 흔적을 뒤따라 와서 건네는 위로가 있어 다행이었다. 만약 내가 독서를, 운동을, 책 쓰기를 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만 가득 품은 체 방황하고 있었을지도.     


  ‘내 수명의 끝이 언제인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까지 가슴 뛰는 무언가를 쉬지 않고 이어 가고 싶다. 그것이 지금 품은 내 꿈이고 하고 싶은 일이다.’ 블로그와 브런치 스토리, 일기장에 남긴 문장이다. 그만큼 글 쓰는 일, 그리고 운동을 하며 보내는 시간은 늘 삶을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는 첫걸음마를 떼는 기분이다.


넘어질 때도 있다. 벽을 짚고 잠시 쉬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를 응원하는, 기꺼이 어깨를 내어주는, 나와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목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언제든 다시 걸음을 옮길 수 있을 것만 같다. 언젠간 나도 누군가의 든든한 버디가 될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는 버팀목이 되어 잠시 곁을 내어 줄 수 있도록, 그런 이유. 운동을 계속하기에 충분하다.

이전 10화 음식에도 궁합이 있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