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처음 만날 때 종종 듣는 질문이 있다. ‘직업이 뭐예요?’ 라거나 ‘지금 하는 일이 뭐예요?’라는 식의 탐구에 가까운 말들. 그럴 때면 ‘회사 다니면서 운동하고 가끔 글도 쓰면서 강연에 참석할 때도 있고, 직접 마이크를 잡을 때도 있습니다.’로 대답한다. 많은 일을 한다. 그중 하나가 운동이고. 그런데도 내가 ‘하는 일’에 궁금증을 가진 이유는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 탓일 거다. 음식에 대한 태도 역시 그럴 것이고.
온라인에서 운동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지역 소모임에 가입했다가 돌아오는 주말, 근처 산에 올라보는 건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은 적 있다. 등산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곳은 아니었지만 모임에 가입한 회원들의 나이가 비슷하다 보니 의견이 한 번에 모였다. 흥미가 생겨 나도 바로 답을 남겼다. ‘그럴까요?. 저도 그럼 이번 주말 참석할게요!’.
실제 모임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기존 회원들은 이미 몇 차례 얼굴을 본 적 있다고 했다. 일정 중 점심은 하산 후에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정상에 올라 각자 준비한 도시락을 나누어 먹는 건 어떻겠냐는 쪽도 있었다. 나는 간식을 준비해 나누어 먹고, 이후 점심도 같이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모두가 ‘OK’ 했다.
약속 전날 저녁, 장을 봤다. 오이 몇 개와 양상추, 양파, 저열량 치즈, 고구마, 닭가슴살, 방울토마토, 통밀 식빵 한 봉지, 딸기잼까지. 마침 식단에 관심을 가질 때라 싱크대 선반에 작은 도시락통을 꺼내 설거지해 놨다.
조리대 볼에 물을 받아 채소 세정제를 풀어 넣었다. 이미 유튜브와 인터넷을 통해 채소 손질하는 법을 배웠던 터라 직접 눈으로 배운 대로 했다. 5분간 담가 잔류 농약을 제거하고 흐르는 물에 다시 헹궜다. 방울토마토와 오이도 물에 헹구고 칼로 몸통에 열 십자 칼집을 내어 잘랐다. 고구마는 에어프라이어에 30분, 닭가슴살은 물이 뜨겁게 끓기 시작한 냄비에 넣고 곧바로 통후추 몇 알, 월계 수입 몇 장을 넣어 잡내를 잡았다. 다이어트도 똑똑하게, 즐겁게 해야 한다고 배웠다. 무조건 고구마 닭가슴살만 먹는다고 해서 살이 빠지는 것도 아니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지 못하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도 좋지 않다고 했다. 이럴 때를 위해 유튜브 속 다이어트 식단 만들기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미 사람들이 올려둔 요리 경험담을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식빵에 잼을 바르고 치즈 한 장을 올린 후 잘게 찢은 닭가슴살을 올려 Zero Kcal 드레싱 소스를 곁들였다. 마지막으로 식빵 한 장을 그 위에 덮어 비닐 랩에 돌돌 말아서는 칼로 절반을 잘랐다. 수제 샌드위치와 오이, 토마토 몇 알을 도시락통에 담았다. <준비과정 묘사>
누가 보면 데이트라도 가는 줄 알 거다. 아니, 좋아하는 이성을 위해 준비한 도시락처럼 보였다. 번거로워 보이지만 맛있는 음식을 내 손으로 직접 준비하는 과정. 뿌듯하면서도 평범한 일상 속 즐거움이었다.
<묘사 이후 느끼는 감정>
산에 오르기로 한 아침. 나를 포함 남성 둘, 여성 네 명이 모였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산에 올랐다. 등산 코스는 길지 않았다. 왕복해 봐야 네 시간 남짓. 다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표정이 밝았다. 산에 오르는 동안 채팅방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관심 가는 기사라던가, 연예인들의 일상. 그 외에도 몇 달 전에 어디 헬스장의 일일 이용권을 구매해 운동을 해봤는데 운동기구가 유명 브랜드여서 그런지 자극이 좋았다든가 하는 ‘찐 운동파’ 이야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다가 맨 앞에 가고 있는 사람의 ‘정상입니다’라는 안내에 고개를 뒤를 돌아봤다. 두 시간 동안 지친 줄 모르고 앞만 보며 오른 길. 울퉁불퉁했다. 크고 작은 돌과 나무뿌리가 뒤섞여 있었다. 처음엔 언제 올라가나 싶었는데, 같이 올라와서 그런지 힘든 줄 모르고 금방 온 것 같았다.
정상에 마련된 전망대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준비해 온 도시락을 꺼냈다. 편의점표 김밥도 있었고 초콜릿과 텀블러에 담아 온 냉커피도 있었다. 과일을 손질해서 한입 크기로 잘라온 회원도 있었다. 내가 꺼낸 도시락에 다들 소란이다.
“이걸 싸 오셨다고요? 그것도 같이 먹으려고?”
“그럼요, 하하하. 얼마 전부터 식단에 관심이 생겨 나름 준비해 봤습니다. 집에서는 큰 그릇에 채소에 닭가슴살 넣고 드레싱 소스에 비벼 먹습니다. 오늘은 유튜브에서 본 대로 따라 해보기는 했는데 맛이 어떨지는 모르겠네요. 하나씩 나누어 드시면 될 거예요.”
“남자분이 이런 걸 하는 건 처음 보네요. 처음엔 무뚝뚝해 보이셨는데 직업이 뭐 하신 분이세요?. 회사원은 아닌 것 같고 이 정도로 관리하시면 회원 관리해 주시는 트레이너 선생님 아니세요?”
“그냥 취미로 하는 건데요 뭘. 다른 분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입니다. 운동도, 먹는 것도 즐겁게 하자는 주의라서요. 보기 좋은 음식이 맛도 있을 테니까요. 하하하…….”
마침 다이어트에 관심이 있는 여성 한 분이 이것저것 물어보는 바람에 식은땀 났다. 대단한 일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좋아해 주니 ‘먹고 있는 모습만 봐도 내 배가 부르다는 말’이 이때 쓰는 걸까 싶었다.
“제가요, 사실 코로나 때문에 살이 많이 찐 것 같아요. 예전보다 몸무게도 많이 나가요.”
그중에서 대임 대표 격인 다른 회원이 농담으로 받아 쳐줬다.
“어머, 지은 임!, 코로나는 살찌는 바이러스가 아니래요.”
“아? 정말 그러네요?”
“그렇죠?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저도 그렇지만 운동이 부족해서 일 거예요, 그런 의미로 다음 주에도 등산해 보는 건 어때요?”
“그래요!”
< 글 전체의 현장감을 만들기 위한 대화체 사용>
‘맛있게 먹으면 0㎈’라고 했던가. 살이 찌는 건 열량 때문이 아니다. 0㎈든 1000㎈든 음식을 먹은 후에 얼마나 움직이지 않느냐에 따라 살이 찌는 거지. 우리는 그동안 코로나라는 핑계 좋은 바이러스 탓을 한 거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 내가 살이 급격하게 찐 이유도 존재한다. 며칠 동안 퇴근 후 회식 자리에 꼬박 참석해서는 밤늦도록 술과 기름진 음식을 먹었다든지, 점차 회사 휴게실에 들락거리는 횟수가 늘어났던지…….
하지만 꼭 참석해야 하는 회식 자리를 제외하고는 불필요한 자리도 많았을 거고, 출근 전 조금 일찍 일어나 택시를 타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미리 몇 정거장 앞에서 내려 회사까지 걸어가는 등의 생활 태도를 바꿨더라면 어땠을까?. 우리는 그걸 알고 있지만,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게 문제지만. 체중을 뺀다는 게, 음식을 조절한다는 게, 운동을 꾸준히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다는 성장에서 얻어지는 희열. 그것만큼 가장 큰 동기부여가 또 있을까.
‘어떻게 해야 살을 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자. 그 답은 의외로 간단할지도 모른다. 사무실 책상 서랍에 하루 견과류를 보관해 놓다가 틈틈이 챙겨 먹는 사람과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핑계로 휴게실에 쌓인 달콤한 과자, 음료를 찾는 사람.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자신만의 루틴으로 집 주변을 산책한다던가 가벼운 운동을 하는 사람과 헐레벌떡 일어나 급하게 준비를 마치고 택시를 이용해서는 직장까지 간신히 출근하는 사람. 주말에는 여유가 있는 오전을 맞이하기 위해 직접 아침 혹은 점심을 준비해 놓고 사진까지 예쁘게 찍으며 일상의 즐거움을 찾는 사람과 오후 늦게 일어나 소파에 누워 있다가 대충이라면 한 봉지 끓여서는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 생각보다 답은 간단하다. 어느 쪽을 택할지는 개인의 몫이고. 그 해답을 우리는 알고 있다. <메시지>
집으로 돌아와 도시락통을 정리했다. 설거지할 것도 없다. 물로 몇 번 헹궈 식기 건조대에 올려뒀다. 내일은 일요일이다. 주말마다 반복하는 일이지만 나만의 브런치를 즐길 생각에 설렌다. 이번 주는 토스터까지 구매했다. 여기에 식빵을 바싹하게 구워, 반숙 조리된 달걀을 올리고 채소 샐러드 (상추, 로메인, 적근대, 새싹, 치커리, 슬라이스 된 아몬드 )와 가정용 커피 기계에서 내린 아메리카노까지 마실 생각이다. 과정이 번거로워 보일 수는 있어도 나름 내 손으로 직접 준비하는 시간, 결과물에 주말이 즐겁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내가 요리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별일이다. <마무리>
* 병범한 직장인인 제가 브런치에 연재하는 모든 글은 개인 경험의 창작입니다.
아울러 개인의 학습 목적(대학 과제 제출)으로 쓰기를 멈추지 않고 있는 중입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노력하며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