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두 번째 인생은 헬스를 배우고 나서부터 시작됐다.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많은 운동을 했었지만 헬스는 처음. 그 외에는 오랜 시간 동안 전문적으로 배워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룬 종목도 있었다. 다만 한 가지에 집중하는 걸 못해 오랜 시간 배운 것도 태권도 하나였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배우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어색한 동작을 하는 나를 보며 놀리는 또래의 비웃음이 창피해 어떻게든 안 가려고 했었다. 그렇게 보낸 1년. 어느새 내 도복에 두른 허리띠는 품띄가 되어있었다.
이후로도 대학에 들어가 아버지의 말씀에 태권도 4단을 취득했다.
태권도는 단수를 높이는 재미라도 있다. 발차기 몇 번이면 스트레스도 풀린다. 그런데 헬스는 아니다. 온전히 혼자 무게를 감당해야만 했다.
그러다 전문적으로 헬스를 배우고 나서부터는 마음이 바뀌었다. 더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모습이 없어졌다. 이유를 생각해 봤다. 이전의 운동은 대부분 남과 경쟁하는 종목이 대부분이었다. 축구는 열한 명이 공 하나로 서로의 골문에 골을 넣으려고 수많은 몸싸움을 이겨내야 하고, 태권도는 정해진 시간 안에서 어떻게든 상대방에게 공격을 가해야 했다. 그 외에도 족구, 풋살, 수영도 말할 것 없다. 내가 아닌, 상대방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했다.
헬스는 그와는 다르다. 특별히 대회를 나간다거나 바디 프로필 촬영 등의 특정한 일정이 있다 해도 내가 완전 프로 선수급으로 활동하는 것도 아니니,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다. 말 그대로 운동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중간에 즐기는 이벤트랄까. 남들과의 경쟁이 아니라 오로지 내 삶의 모든 과정을 즐긴다는 의미다.
매일 저녁 센터에 나간다. 업무상 야근이나 회식이 있는 날엔 아침 일찍 혹은 밤늦게라도 간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피곤할 땐, 스트레칭 존에 누워 ‘폼롤러’에 몸을 누인다. 그럼 온몸에 힘이 풀린다. 종일 긴장되어 있었던 목과 허리, 어깨 근육이 한 껏 부드러워지는 기분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한 가지 운동을 꾸준히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런데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가는 이유, 운동하지 않으면 어느새 목과 허리 통증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직장 동료들은 내가 운동을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 즈음으로 안다. 그만큼 센터에 자주 가고, 도시락을 준비해서 다니는 모습을 봤을 테니까. 하는 얘기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 일이다. 겉으로 건강해 보이는 내가 허리디스크와 목디스크, 족저근막염, 굽은 어깨로 인한 어깨 충돌 증후군을 앓아 유명하다는 신경외과, 정형외과, 물리치료, 재활의학과를 찾은 건 ‘찐친’ 외에는 모른다. 지금은 통증이 어느 정도 완화되어 있어 일상생활에 큰 지장은 없지만 몇 년 전 만해도 팔을 들어 올리면 어깨에서 뚝둑 소리가 난다거나 뒷 목 통증 때문에 책상 앞에 앉기도 힘든 날이 많았다.
이제는 10km 달리기를 느린 속도로 달려 완주해도 발바닥이 버텨준다. 장시간 모니터 앞에서 글을 쓰더라도 허리와 목에 통증이 적다. 모두 센터에서 굳은 근육은 풀고, 약한 근육은 따로 보강 운동을 통해 얻은 효과다.
20대 중반에 허리디스크와 협착증을 진단받은 적 있다. 특별히 몸에 무리되는 일을 한 적도 없었다. 전날 직장에서 일 잘하고 퇴근해서 텔레비전을 보며 푹 쉬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부터 허리를 펴기 힘들 만큼의 고통이 갑자기 밀려왔다. 숨이 막혔다. 벽을 짚고 몸을 옆으로 세워 간신히 일어나 사무실에 전화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는데 허리가 너무 아파 병원을 좀 들렸다가 출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갑자기 허리 통증으로 출근을 못하겠다고 하니 팀장도 의아해하면서도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말을 했다.
“환자분, 엑스레이 소견으로는 잘 안 보이지만 CT 촬영 결과로 보니 퇴행성 디스크가 진행 중인 것 같습니다.”
“디스크요? 허리디스크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화면을 보시면 4번과 5번 척추 사이의 하얀 부분이 다른 곳에 비해 유독 간격이 좁은 게 보이시나요?. 퇴행성이라는 말이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테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서도 자주 앓는 질병입니다. 좋지 않은 자세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래요.”
“아. 제가 이제 스물여섯인데, 디스크라는 말이 조금 낯설긴 합니다. 그것도 퇴행성이라는 말은…….‘
몇 차례 형식적인 대답을 더 받고 나서 병원을 나서는데 의사 선생님의 말씀 가운데 한 가지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퇴행성이라는 게 나이보다는 얼마나 자주 사용되었는가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디스크는 주변의 근육운동을 꾸준히 하면 증상이 완화될 수 있으니 평생 관리한다는 생각으로 운동해 보세요. 필요하다면 재활의학과 진료도 받아 보시고요.’ 그 이후부터 운동을 하려고 여기저기 다녀봤지만 헬스 만한 종목이 없었다.
지금도 스스로 가끔 묻는다. ‘운동 힘들지 않냐. 이걸 왜 하고 있냐.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냐’이라고. 아프니까, 하지 않으면 아프다. 그럼 누워 있어야 하고 병원에서 처방해 주는 진통제나 받아다가 매 끼니 챙겨 먹어야 하는 게 더 힘드니까 운동을 쉴 수 없는 것. 그 이유다. 의사에게 의지하는 것도, 잠시 아픔을 완화해 주는 진통제에 의존하는 것도 결국은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직접 내 몸에 대해 이해하고 관리하는 것. 내 몸의 주치의가 되는 것이다.
바쁜 일에 지치고 힘이 없더라도 조금만 더 움직이면 된다. 어떤 운동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당장 몸을 일으켜 아파트 계단을 올라도 된다. 주변을 산책하는 것도 좋다. 하나씩 내가 할 수 있는 안의 범위에서 움직이는 공간과 환경을 만드는 과정. 내 건강한 삶을 만드는 시간이다.
무언가 새로운 일에 시도하려고 하거나, 살아가면서 갑자기 닥친 문제에 당면했을 땐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불안과 막연함 일 것이다. 그런 마음이 생겼을 땐 너무 큰 성공, 혹은 당장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보다는 속도는 느리지만 꾸준하게 갈 방법을 먼저 찾기를 추천한다.
마라톤 경기의 골인 지점은 보이지도 않는데 ‘언제 달려가나’라는 생각, ‘허리며 어디가 아픈데 어떡해야 하지?’라는 걱정. 이런 문제 되신 비법과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때로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일이 하나둘 모여 성장 발판이 되고, 시간이 흐른 뒤 나의 허리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척추기립근’과 같은 역할도 할 수 있다. 튼튼한 근육을 만들기 위해서 앉아 있거나 눕기보다 더 걷고, 뻗고 약한 근육을 강화하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
다이어트할 때도 나만의 방법이 있다. 무조건 운동을 열심히 하거나 몇 날 며칠을 닭가슴살과 고구마, 오이 같은 채소를 먹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덜어내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내 몸에서 체중을 덜어내는 것이 아니라, 나와 관계 맺고 있었던 모든 존재로부터 불필요한 점을 덜어내는 것이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체중은 빠진다. 방법으로는 집 안에 있는 물품 중 불필요한 짐을 꺼내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움직이는 과정에서 활동 대사량이 높아질 수 있다)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퇴근 후 나의 의지보다는 남과 어울려 찾은 술자리. 특별한 이유도 없다. 그저 ‘인간관계를 돈독히 유지하기 위한 자리’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반복되면 가장 불필요한 짐이다. 지출될 때마다 날아오는 카드 영수증, 사용 명세서는 잔액을 덜어내는 대신 자리를 차지할 것이고, 몸 이곳저곳에 군살을 남겨놓을 것이다. 그러니 최소한 일정 기간만큼은 나에게 집중하기 위한 시간을 만드는 것만이 나만의 다이어트 비법인 셈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너무 걱정과 두려움만을 먼저 생각할 필요 없다. 삶은 장시간 달려야 한다. 때로는 걸을 수밖에 없을 때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멈추지 않아야 한다. 어떻게든 다시 목표까지 갈 방법을 찾는 것이다. 욕심낼 필요도 없다. 내가 지금, 오늘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천천히 이루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내일과 이번 달에는 어느 목표를 이룰까 하는 계획을 세우고, 모든 과정에서 나를 믿고 격려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법은 어디에든 있다.
지금 해내고 있고, 앞으로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 모두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내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