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닫기 위해선 작은 틈이면 충분하다.
“몇 년 동안 많은 책을 읽었다. 얼굴도 모르는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읽으면서 마음 어딘가 구석에 대충 구겨 던져 넣은 기억이 담긴 종이 하나를 꺼 나오기도 했다. 책이란 그런 것이었다. 작가와 나와의 소리 없는 대화,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눈치 볼 일도 없는 시간.
어딜 가나 늘 책을 들고 다녔다. 직장에서 퇴근 후에는 카페에 들러 그들과 대화했고, 때로는 '나도 그랬는데, ' 하며 볼펜을 들어 책의 빈 공간에 생각을 남겨두었다. 시간이 흐른 뒤, 나의 글 쓰기는 머릿속으로부터 책의 여백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애초에 글 쓰기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에 매번 '어떻게' 쓰는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없어 늘 몇 줄에 그쳤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이 질문 하나 덕분에 나를 성장시킬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만큼 생각의 샘에 깊숙이 들어간 나는,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인생 질문을 하나 주워올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수면 밖으로 나와 가뿐 숨을 내쉬고 있을 때, <쓰지 않으면 사라질 것들>이라는 책을 읽었다. 서양 소설가의 일상을 담은 수필을 모아 펴낸 유작이었는데, 모든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당시 기록으로 남겨둔 책의 일부가 글 쓰기와 삶의 '어떻게'를 해소하는데 도움이 됐다.
진정한 삶이란 돈과는 멀어진 삶, 야망을 옆으로 제쳐놓은 삶,
어떻게 해서든 아름답게 살아가는 삶이다.
그런 삶이 언제까지나 지속되지는 않지만,
그 삶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이 그렇게 산 탓에 가난해지는 경우는 보통 없다.
- 쓰지 않으면 사라질 것들, 제임스 설터-
소설인지, 수필인지, 아니면 독서감상문 인지 모를 그날의 기록을 읽으며, 한 편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가정의 보기를 하나씩 세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SNS에 올려둔 몇 편의 기록 아래로 낯선 이의 댓글이 눈에 띄었다.
"저는 70넘은 할머니입니다. 전라도 시골마을에 살고 있으면서 몇 달 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무엇을 써야 할지 가늠 못하다가 이웃마을 사는 언니와의 대화를 적기도 하고, 집 앞 코스모스를 구경 한 날을 옮겨 적기도 했지요. 그렇게 하루, 이틀 이 지나면서 쌓인 시골 마을 할머니의 일기는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역사를 남기는 기분이었답니다. 무리하지 마세요. 님도, 저도 우리 모두는 오늘을 살아갈 뿐이니, 오늘 을 잘 기록하세요. 그것만이 글 쓰는 방법이 더군요"
무슨 용기였는지, 노트북 구석 깊숙이 넣어둔 기록을 몇 편 꺼내와 그분께 보냈다. 어디 자랑할만한 실력도 아닌 글. 맞춤법조차도 제대로 맞지 않는 대부분이 미운오리처럼 살아온 내 삶 이야기를 보여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위로를 받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내 글을 읽은 한 사람 앞에 속 이야기를 더 꺼내보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어떻게 써야 잘 쓰는지 보다, 감히 당신 앞에 나의 기록을 꺼내어 나 잘 살고 있느냐고 묻고 싶은 용기였을지도.
"너무 깊게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물 깊숙이 노를 넣으면 힘 만들거든요. 적당한 깊이에서 노를 저으세요. 삶도, 글 쓰는 방법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물며 전업 작가도 아니니, 지금은 쓰기와 기억을 함께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너무 한 가지에만 몰두하면 다른 소중한 것들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한 가지에만 빠지지 말라는 말에 마음이 일렁였다. 다만 쓰기 시작한 이후로 내 삶을 틈나는 대로 돌아보게 되었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는데, 걸어온 지 겨우 인생의 절반도 안된 내가 그런 말을 한다는 건.
과거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직장에서 새벽까지 일하다 퇴근하면 잠이 오질 않아 술에 의지 한 날 도 많았다. 일종의 번 아웃이었다. 하루종일 일에 빠지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했고 무언가 계속하고 있어야만 내 삶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글을 읽으며, 쓰는 동안 신기하게 마음만큼은 편안했다. 바쁜 일터에서도 시간을 쪼개어 읽고, 잠들기 전 침대에서 쓰던 몇 줄은 돌이켜 보면 스스로를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더 이상 술과, 수면제에 의존하지 않는 위로. 나는 그날의 기록을 이렇게 기억한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서.'
-20년도의 일기 중-
그때의 나와, 올 해를 시작하는 날의 나와, 그리고 오늘의 나까지. 나는 계속 묻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건 뭘까?' 이 질문의 대답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수수께끼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을지 몰라도 '나 이거 정말 좋아합니다.'라고 딱 잘라 말하지는 못하겠다. 대신 글을 쓰며 얻은 건 있다. 솔직함. 내가 바라보는 나에 대한 솔직함이다. 직장 동료 간에, 가족, 친구, 선 후배 등 등의 관계 혹은 업무 중 실수로 힘들어했었던 나를 한 발자국 떨어져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결국 나는 어떻게든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해 쉬지 않고 쓰려고 했던 것이다.
앞으로 어떤 창문을 열어 마음을 들여다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를 사랑하고 그만큼 내 기억을 아끼는 사람이다. 내가 어떤 상황에도 글을 쓰겠다는 다짐은 변함없다. 기록해야만 하는 대부분의 기억 속 수많은 일이 후회와 절망뿐이라는 게 흠이지만,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대신 내일의 나에게 약속을 해야겠다. '너무 깊이 젓지 말라'는 말처럼, 때로는 흘러가는 대로 즐겨도 좋으니 있는 그대로 숨 쉬어 보고 무리하지 말자고. 조금 열어둔 창문 틈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느껴졌다. 일어나 활짝 열었다. 새벽 공기가 온몸으로 퍼지는 기분이다. 상쾌하다. 내일은 오늘의 상쾌함을 기록해봐야겠다.
23.12.5일 20:02분 한 해의 작은 틈으로 남겨둔 기록이 오늘로 이어졌다. 신기한 일이다. 원문의 제목은 '기억을 기록하는 이유'였건만 왜 기록이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