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과 불만은 성공과 거리가 멀다
2017년도의 일이다. 지역 신문에 내 글이 실렸다. 어떻게 그런 글을 썼느냐며 나를 향해 엄지를 세워주는 사람도 있었고, 앞으로도 좋은 글을 기대한다며 응원을 보내온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 사람이 남긴 가시가 아직도 귀에 박혀 빠지지 않고 있다.
“네가 무슨 글을 쓴다고 그래?. 그리고 이건 왜 쓰는데? 돈 벌려고 하냐?”
사실 이 정도면 거의 사람을 대 놓고 무시한 말투였다. 설마 내가 그깟 원고료가 탐이나 글을 썼을까. 고민이 깊어졌다. ‘이대로 글을 계속 써야 하나?’, ‘내가 그럴만한 실력은 있을까?’,‘온종일 바쁘게 사는데 글 쓰기를 괜히 시작한 건 아닐까?’. 이런 생각까지 들자, 앞으로는 어디에도 기고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다음 달에도 또 몇 달 후에도 계속 같은 신문사에 글이 실려 올라왔고 결국 그 사람이 의심하는 돈을 벌기 위한 직장인에 가까워졌다. 신문사도 있었지만 몇 개의 공모전에 당선이 돼 상금을 받은 이력 때문이었다. 처음 신문사에 글을 기고했을 땐 괜한 짓이라 생각한 적 없지만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 왜 쓰는지에 대한 이유를 스스로 묻고 있다.
그때는 소설, 영화, 음악을 감상한 뒤에 글에 옮기는 재미가 있었다. 지금은 경험을 글에 옮긴다. 보고, 듣고, 느꼈던 모든 감각과 감정을 종이 여백에 빼곡하게 채워가는 건 마치 악보 위 음계를 채워 넣는 작곡가와 같다고 할까.
한편으로는 내가 남기는 글에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지만, 오늘의 내가 17년도 겨울 첫 글이 기고되었을 때 감격하던 나에서 성장했듯, 5년, 10년 후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해 쓸 수밖에 없다. 24년도 도전한 문학 관련 공모전은 보기 좋게 낙방했다. 그러니 결과만 두고 본다면 나는 아직도 과거에 비해 지지부진한 성과를 내고 있다. 그래도 굳이 비교하자면 글 쓰는 속도, 양이 늘었으니 운이 좋아 당선됐을 때보단 분명 보이지 않는 1센티미터 정도는 성장했으리라.
아침에 일어나 초고를 쓴다. 하루 동안 어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내가 생각하고 의도하는 대로 삶을 살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다. 일명 아침일기다. 어려운 건 없다. 글의 가 제목을 붙여 놓고 약간의 스토리 텔링과 주제를 잡아 놓는다. 그리고는 직장에서 틈틈이, 혹은 출퇴근 중에 메모를 남겨 놓고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 전 퇴고를 진행하는 것. 중간에 유치함 가득한 내용이 있어 지워버리고 싶고, 기껏 적어둔 글이 시간이 지나 돌아봤을 땐 통째로 날려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잘 정리해 둔다.
23년도에는 처음으로 전자책을 써 출판했다. 온라인 상일뿐이지만 어찌 됐든 내 이름 세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있는 PDF 파일 형태의 책이었다. 이때에도 칭찬과 격려가 많았지만 예상치 못한 댓글을 받았을 땐 당황스러웠다. ‘이런 내용은 다른 곳에서도 얻을 수 있는데 굳이 돈을 내면서 까지 읽어야 하나?’.
독서습관만드는 3가지 비법 - readychun 페이퍼 : 유페이퍼
울적해져서 그다음 날부터는 판매 사이트에 접속하지 않았다. 한 달 여쯤 지났을까, 판매대금이라며 소정의 금액이 계좌에 찍혔다. 그동안의 노력에 비한다면 값을 매길 수 없겠지만 다만 내가 걱정하는 건 돈의 액수에 그동안의 내 노력이 후회로 남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 7년 차, 아직도 제대로 된 책을 출간한 적 없다. 인터넷 출판사에서는 작가님이라는 호칭을 붙여 스팸 메일을 보내오지만 열어보지 않는다. 대부분의 내용이 신간 도서를 소개하거나 화제의 작가를 소개하는 내용 이어서다.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전체 클릭 후 삭제를 누르는 게 일상이 됐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글과 함께 지낸다.
쓰기 위해 다른 글을 찾아 읽고, 쓰고, 퇴고와 저장 누르는 일을 반복 중이다.
언젠간 나의 이런 망설임과 다짐이 번갈아가는 하루가 모여 두껍고 그럴싸한 수필집으로 나오길 기도하며.
한 달에 한번 잠실 교보문고에 들른다. 목적지까지 지하철을 3번이나 갈아타야 하지만 일 년 넘게 반복 중이다. 도난 방지 게이트를 지나 몇 걸음만 내디디면 나의 모든 감각은 극도로 예민해진다. 이곳에서 들리는 소리, 숨을 쉴 때마다 억지로 밀고 들어오는 특이한 향, 천장과 통로에 가득한 신간 도서 안내 문에 순간적으로 정신이 멍해질 정도다.
그만큼 이곳은 문밖과는 또 다른 세상이다. 세상 글을 쓰는 작가는 모두 모여 대한민국 서울 한 복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어 놓는다. 흥분과 기대감이 뒤섞인 감정을 눌러 신간목록에 서있다 보면 정말 글 잘 쓰는 사람 많다는 생각뿐이다.
비교하면 안 되지만 내 글보다 눈앞 이야기에 자꾸 마음을 빼앗기는 이유다. 내가 아직도 초보 작가를 벗지 못하는 원인일지도.
그런 걸 보면 몇 권씩 책을 출간한 작가가 신간 목록에 들어올 때가 많다. 그들은 어떻게 그런 실력을 갖추게 되었을까?. 당장은 어리숙하고 부족해 보일지라도 계속 쓰고 남기는 일을 반복할 뿐이었다. 더욱 성숙해진 글을 쓰기 위해선 상처가 많아야 했다. 바람에 휘청거려도 다시 일어나 쓰겠다는 다짐을 반복해야만 했다. 누군가 오해를 했다면 어쩌면 자신의 삶 앞에 반성문을 수 백장 써내는 사람이 작가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도 계속 매일 쓰는 이유가 반성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성문은 과거를 지금 쓰는 일이다. 내일을 이야기할 필요 없다. 쓰기가 편하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상상해서 쓰지도 않는다. 그러니 사실이 기반이 될 수밖에. 분명한 목적, 반성과 다짐을 하는 오늘의 일기를 쓰니 내일은 또 어떤 글을 쓸 수 있을지 탐구욕구가 샘솟는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글 쓰기를 매일 꼬박꼬박 쓰는 이유다. 그러니 지금 쓸 수밖에. 오늘도 쓸 수 있음이 감사할 따름이다.
지난 일요일 마라톤 대회 이후 급격히 악화된 건강 때문에 쓰다 말다를 반복 중입니다. 오늘은 조금 나아져 그동안 남겨둔 기록을 정리해 올렸습니다.
어렸을 때 천식을 앓을 적 있고 지난 코로나로 인해 폐렴을 앓았던 터라 환절기만 되면 목이 붓습니다. 건강하자고 운동도 열심인데 지병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이젠 이 시기쯤 되면 어련 이 찾아오겠지 하면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살아있으니 이 또한 느낄 수 있는 고통이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