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있고 너에게도 있는 것
서로에게 있을 수도 있으나 느끼기 어려운 것
실체가 없어서 속고 속일 수 있는 것
어쩌면 모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는 것
나도, 그대도, 세상도
마치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이 그렇게
빨래처럼 무심히 말라가고 있다
(c) 슬로우 스타터
‘진정성’은 실체가 없어서 느끼기도 어렵고 속고 속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어쩌면 되려 모르는 게 속 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료들과 소통이 필요하다. ‘소통하고 있습니까?’, ‘소통하고 있습니다’, ‘소통합시다’라는 의미는 서로가 서로에게 친절, 배려, 포용의 마음가짐으로 대화를 통해 표현하는 차이를 줄여 나가는 그 과정 자체를 이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러한 과정을 견디면서 동료를 대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부모 자식 또는 부부 사이에서도 쉽지 않은데 하물며 동료 사이는 오죽할까. 그래서 ‘진정성’은 ‘존재 자체로 인정하기’가 아닐까 싶다. 동료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그/그녀를 동료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는 동시에 상대와 상대 행동에 관해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진정성을 ‘어쩌면 모르는 게 더 나을지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아마도 동료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집착하지 않기’가 어렵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 어렵다. 차라리 저 빨래처럼 무심히 말라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