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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 Nov 02. 2021

대상 어종 원투펀치 - 뼈 때리기

낚시 물멍하다 만난 사람의 뼈 있는 한마디

여러분은 어디로 향해 달려가고 있나요? 

조금은 방황하고 있는 저에게 번쩍 정신이 드는 질문을 무심하게 던지고 간 낚시꾼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도 평화로운 물멍


  어김없이 아주 큰 600ml짜리 텀블러에 아이스커피를 한잔 내려 챙긴 후 크릴새우를 사서 낚시를 나갔다. 편하게 앉아있을 캠핑의자를 하나 챙기고 각종 장비가 들어있는 작은 가방을 가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다. 아직 찌낚시에 적응하지 못한 나는 일종의 연습을 위해 나의 첫 낚시 포인트인 빨간 등대로 향했다. 빨간 등대는 접근성이 좋아 금방 갈 수 있고 바람이 불지 않을 땐 항구를 감싸고 있는 등대의 안쪽인 내항이 정말 잔잔하고 좋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빨간 등대에서 낚시하는 것을 즐겼다. 특히 밤낚시를 좋아한다. 낮에는 이런저런 일정이 있어 정신없이 보내고 해가 떨어질 때쯤 "낚시 갑니다!"를 외치곤 나만의 시간을 보내러 떠난다. 


  새우를 끼우고 힘차게 낚시를 던졌다. 낚싯줄이 너무 헐렁하지 않도록 살짝 당겨준 후 난간에 낚싯대를 걸쳐놓고 캠핑의자에 앉는다. 빨간 야광찌의 빛을 바라보며 커피를 한잔 마신다. 바람 하나 없는 잔잔한 나만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찌가 바닷속으로 들어가길 기다리며 여유롭게 물고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를 내려놓고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순간! 찌가 쑥 하고 내려간다. 나는 얼른 캠핑의자에서 일어나 낚싯대를 힘차게 당긴다. 열심히 줄을 감는데 입질은 느껴지지 않는다. 놓쳤다는 생각을 하며 미끼를 끼우기 위해 낚시를 감았다. 들어 올리는 순간 작은 전갱이가 낚였다. 너무 작아서 입질도 느껴지지가 않는다. 얼른 미끼를 빼고 다시 바다로 놓아준다. 잠시였지만 고기를 구경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지나가던 낚시꾼과의 짧은 대화


  가끔 들어 올려 미끼를 확인해보면 새우가 없다. 고기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나 몰래 미끼만 먹고 도망가는 모양이다. 나는 희망을 가지고 새우를 계속해서 갈아 끼고 던졌다. 그러던 중 지나가던 낚시꾼이 자연스레 다가와 말을 걸었다.

“많이 잡았어요? 뭐가 나와요 요즘?”

나는 며칠 나왔다고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전갱이 조금 한 거 몇 마리 잡았는데 놔줬습니다 ㅎㅎ 저쪽에서는 갈치도 좀 나오나 봐요~”

제법 이 동네에서 낚시를 해본 말투였다. 무심하게 다시 낚시를 거두어 새우를 바꿔 끼고 힘차게 던졌다. 그 순간 예상치 못한 강력한 펀치가 나에게 날아왔다.

“대상 어종이 뭐예요?”

당황했다. '그러게. 나는 뭘 잡으려고 낚시질을 이리도 열심히 하고 있었지?' 사실 목표한 어종은 없었다. 그저 낚시채비를 배운 대로 했고, 새우를 많이들 써서 새우를 미끼로 사용했다. 조금은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하.. 아직 얼마 안 돼서.. 그런 건 잘 모르고 일단 던졌습니다.”

전세 역전. 낚시를 좀 하던 로컬 사람 분위기는 금세 역전이 되었다. 아저씨는 대상 어종 펀치를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에이 ~ 그런 게 어디 있어~ 낚시를 나갈 땐 대상 어종을 정하고 거기에 맞게 낚시를 해야지 ~ 고기 잡을 생각이 없구먼? 허허. 재미있게 낚시해요 ~”

아저씨는 떠났다. 그리곤 다시 캠핑 의자에 앉아 커피를 한잔 마셨다. 어딘가 아팠다. 그러고 보니 나는 뭘 잡으려고 낚시를 던졌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깊은 고뇌에 빠졌다. 잠시 생각하다가 얼른 검색을 했다.

'장승포 낚시'라고 검색창에 입력하고 보니 다양한 정보가 있었지만 지금으로서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며 미끼를 확인하지도 않고 진짜 물멍이 시작되었다. 나는 대상 어종을 정하지도 않고 낚시를. 그것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대상 어종이라..


  단순히 대상 어종에 대한 생각을 했던 건 아니다. 대상 어종을 정하고 그에 맞는 채비를 하면 그만이었다. 이상하게도 지나온 내 과거가 스쳐 지나갔다. 대학교 4년, 대학원 2년, 연구소 3년, 회사 생활 4년. 수없이 많은 날을 컴퓨터 개발로 보냈다. 이 개발 생활은 무엇을 위한 개발이었을까? 연구소에서의 연구 성과? 회사의 이익 극대화? 많은 생각이 들었다. 목표도 없이 그저 신기술을 모두 섭렵하겠다는 조금은 어리석은 생각으로 공부하고 회사에서 훌륭한 인재가 되기 위해 나의 기술력을 뽐내며 자리를 지켜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열심히가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 꿈을 찾아 떠나겠다며 퇴사를 하고 이곳 거제 장승포에 왔지만, 아직까지도 내 인생에 대상 어종은 없었다. 인생에 대상 어종을 찾는 다면 낚시채비를 하듯이 그에 맞는 공부와 일을 하면 될 일이다. 퇴사를 할 시점에 각오도 비슷했다. 일 년 동안 많은 경험을 하며 내 꿈을 찾을 거야. 개발을 절대 하지 않을 거야. 라며 당차게 퇴사를 했다. 하지만 개발 그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내 꿈과 목표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개발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내 인생의 대상 어종이 없다는 것에 있었다. 낚시는 내 인생의 목표를 고민하는 소중한 시간으로 바뀌었다.

  

  대상 어종. 이 간단한 단어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우선 이 낚시를 위해 대상 어종을 정하고 낚시의 방향성을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타깃을 노리고 하는 낚시는 분명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낚시가 들어가는 수심을 깊이 고민해보고 고기를 유도하기 위해 밑밥도 던지고. 다양한 전략을 세우고 낚시를 해봐야겠다. 점점 낚시가 재미있어진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며 낚시는 고기를 잡는 행위 그 이상의 시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 평소에 낚시를 던지고 있는 낚시꾼들을 보면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열심히 고기를 잡는 걸까? 아버지는 왜 맨날 고기를 잡으러 갈까?라는 의문이 점점 해결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겪고 있는 바다와의 교감이나 깊은 물멍을 통해 생각 정리하는 것들을 보면 낚시꾼이 조금은 깊은 내공이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낚시꾼들은 고기를 잡는 그 이상의 무엇인가 있다.



여러분에게 영감을 깨워주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저는 낚시를 하면서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고 정리가 되는 것 같아요. 

여러분만의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을 함께 공유해보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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