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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 Mar 03. 2024

자기 배 안 아프고 낳으니까




아기가 태어났다. 나는 병원에 도착해서 곧바로 진통에 시달렸다. 빈방에 큰 시계 하나뿐인 입원실에 의지할 것이라고는 남편밖에 없었다. 깨지는 듯한 진통이 온 시간에는 피하고 싶을 정도로 아팠다. 나는 땀으로 범벅이 되고 남편의 눈은 충혈이 된 후에도 오랜 시간 후에야 아기는 태어났다.

혜민이는 첫째 날 저녁에 울고 보채며 잠을 못 이루었다. 나는 신경도 못쓰고 엄마가 계속 안고 달래주셨다. 첫날인데 무엇이 부족해서 우는지 잘 모르겠다. 나 혼자였으면 큰일 날 뻔했다. 하옇튼 아기의 출생은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오늘은 혜민이의 돌이다. 첫 돌맞이 축하합니다. 상을 차리고 혜민이 사진을 찍어 주었다. 오전에는 엄마가 못 오시고 또 막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으므로 맘이 몹시 침울하였다. 맘이 답답하고 당장 집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처지. 막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히려 혜민이에게 미안하다고. 착한 삼자야. 언니가 너무 멀리 떨어져 가보지도 못하는구나. 꼭 완쾌되어야 한다. 하나님 우리 삼자를 늘 보호해 주시고 건강하도록 해주세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깁니다. 아멘.


    아기가 태어났다. 엄마의 첫째 딸인 내가 세상에 나왔다. 엄마는 아직 엄마가 된 것이 어색한가 보다. 출산 초기 엄마의 육아 일기를 읽으면 아이를 꼭 껴안고 활짝 웃는 모습 같은 일반적인 이미지가 상상되기보다는 낯선 분위기 속에서 긴장이 역력한 서투른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첫돌맞이 축하합니다"  

    나의 첫돌을 축하하는 기록을 남기면서도 엄마는 외할머니와 동생 걱정으로 울적한 마음이 남아있다. 사남매인 엄마 가족은 한 집에서 28년을 같이 살았고 결혼 후에 엄마는 아빠 가족이 있는 지방으로 이사를 왔다. 연고 없는 지역에서 남편 따라 시부모님과 살며 신혼 시작을 했고 첫 임신과 출산을 겪었다. 내가 돌이 됐을 즈음에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막내 이모 - 엄마의 동생이 입원을 했고 어릴 때부터 돈독하게 지냈던 이모를 못 보러 가는 상황인 엄마는 속상함을 토로한다. 엄마도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엄마가 원가족과 떨어져서 외로웠을거라는 상황을 알게 되자 육아일기의 딱딱한 말투가 비로소 이해되었다. 육아일기에는 결혼으로 ‘집’에서 떨어진 처지가 된 둘째 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엄마의 글에서 나는 그 낯섦과 새로운 시작을 느낄 수 있었다.



딸만 둘이라고 아들 하나 있어야 늙어 기댈 곳이 있다고 시어머니 말씀하시는데 내 나이가 너무 많아서 정말 큰일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 맘 같아선 충분한데. 어떻게 해야 하나. 남편이란 사람은 껄껄 웃기만 한다. 자기 배 안 아프고 낳으니까,

“그것 보란 듯이.”


    둘째 낳은 지 6개월 만에 엄마는 시어머니로부터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엄마가 ‘아들 낳으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나와 내 동생들은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아닐 거라 생각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이런 일은 남아 선호 사상이 강한 특정 집안의 이야기인 줄만 알고 어디선가관련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명절 때마다 보는 할머니나 친척 어른들이 특별히 딸 아들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건 순진한 착각이었음을알게 됐다. 내가 태어난 시대인 8~90년대는 심각한 여아 낙태 현상이 일어나던 시대였고 엄마가 ‘시집간’ 곳은 그 당시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집안이었다.


    엄마는 원치 않는 출산을 한 적 없었다. 단 임신을 한 시기는 엄마의 온전한 계획대로가 아니었을 게 분명하다. 첫째인 나를 낳고서부터 엄마는 이 아기를 어떻게 기를지 고민에 잠겼다. 동네 환경이 좋지 않아 걱정했고 문밖에서 아기가 놀라는 큰소리가 나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 봐 신경 쓰였다.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싶었고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들을 육아 일기장에 빼곡히 적었다. 하지만 더 좋은 환경에서 아이를 기르고 싶었던 엄마의 계획은 매번 틀어지기 마련이었다.



딸을 낳았기 때문에 많이 서운해하는 관습을 모두 버리지 못하고 있는 가족들이 좀 어색해 보인다.
그러나 난 다르다
누구보다도 딸을 낳아서 기쁘다
더욱이 아이는 4kg의 큰 키에 아주 멋있게 생겼다.
어떻게 키우냐만 남아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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