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답답하다. 빨리 탈피하고 싶다.
이런 생활이 될 것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지금도 코끝이 시큰하다. 눈물이 난다.
더 이상 같이 살고 싶지 않다.
혜민이와 앞으로 태어날 애기에게 미안하다.
거의 날마다 눈물을 흘렸으니 말이다.
낳은 자식이니까 당분간은 매어 있어야 하는데
경제적 능력이 없고, 또 있더라도 애기를 키워야 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가 없다.
괴롭고 답답한 나날이다.
육아일기를 통해 본 아빠는 내 마음에 쏙 드는 모습은 아니었다. 매일 같이 돈 걱정과 아빠의 귀가 걱정을 하곤 했던 엄마의 입장에서 결혼 생활은 첩첩난관이었다. 어린 시절 내가 의지했던 아빠, 딸들에게 많은 사랑을 주었던 그 사람은 분명 좋은 아빠일 수는 있지만 좋은 남편이라고 하기엔 어려웠다. 아내와 갓 태어난 딸을 두고도 밤늦도록 친구들과 놀러 다니고, 엄마가 아플 때 병원에 태워다 줬다는 남편 노릇으로서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을 자랑처럼 말하고 다니고, 친구들 앞에서 엄마 흉을 보는 등 30년 전 철없이 젊은 아빠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엄마의 괴로움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셋집 옮기려다 109,000 떼었다.
더 고생하려고 작심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남의 집 일 해주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또 언니가 끝까지 말려서 이렇게 주저앉았다.
그래서 계약금과 선반 대금 109,000을 물어주었다.
날마다 김치 두부만 먹고살면서
남에게 돈을 뜯기다니
지금 혜민이는 정글북 비디오를 보면서 한국말로 옮긴다. 대강 비슷하게 꾸며댄다.
저런 애들을 놔두고 무엇을 하겠다고 이렇게 맘을 못 잡고 있는가.
생활비를 겨우 가져다줄까 말까 하던 아빠는 사업도 실패하고 빚까지 지게 됐다. 짐을 싸서 시댁 살림을 시작하면서도 엄마는 계속 다짐했었다. 육아일기의 매 페이지에서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나면 일을 할 것이다.' '자유롭기 위해 내가 돈을 벌 것이다.' '경제적 능력을 갖춰야 한다.'와 같이 의지를 다짐하며 학업과 직장을 포기하지 않으려던 엄마의 계획은 아이들 키우느라 자꾸만 미뤄진다. 한창 커가는 두 아이를 두고 결국 더 고생하더라도 남의 집의 가사 도우미를 하려던 엄마는 이모가 말려서 못 하고 '주저앉았다.’.
기다려도 귀가하지 않는 아빠와 아이들 얼굴 보며 참은 무수한 밤.
아빠는 나이 먹고 철이 든 이후부터 스스로 엄마에게 잘못했던 것을 갚으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아내에게 소홀했던 우리 세대의 아버지들이 중년기가 지나면서 가족들의 소중함을 느끼며 뒤늦게 가정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유독 많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빠는 옛날과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좋을 만큼 변했다. 그 변화가 문득 엄마를 서럽게 하지는 않았을까? 아내로서 남편에게 목이 터져라 토로할 땐 꿈쩍 하지 않더니, 수십 년간 강산이 변하는 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철이 들었다' 라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