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대지진에 남은 기둥들
포르투갈 여행 정보를 이리저리 보다가 여기는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아직 못 갔던 곳이 있었다.
카르모 수녀원. 리스본 대지진 당시에 가장 핫했던 이 도시는 말 그대로 붕괴했다. 이 수녀원도 거대한 비극을 피하지 못해 지붕이 와르르 무너졌고 벽과 일부 기둥만 남기고 무너졌다.
도시를 재건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건물이라고 부를 수 없는 흔적은 다 허물고 다시 세우고 그 자리를 다른 용도로 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재난을 기억하는 의미에서 이 수녀원을 허물어진 채로 남겨뒀다. 지금은 무너지지 않은 일부 공간이랑 함께 고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들어가서 직접 보니 수녀원의 벽, 기둥, 그리고 푸른 하늘이 어우러진 장면이 마치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건물 밖에서 줄 서있을 때만 해도 그냥 일반 성당 들어가는 것처럼 평범했기에 내부에 들어갔을 때 이상한 영화 속으로 들어온 것만 같았다. 마침 하늘이 파랗게 덮인 덕분에 하늘과 맞닿아 있는 이 예배당이 더더욱 하나님과 만나는 공간으로 느껴졌다.
그다지 넓지 않은 이곳에서 한 시간을 있었다. 천천히 걸으며 음미하다가 기둥에 기대앉아 하늘과 사람들을 바라봤다.
고양이. 인간의 역사는 고양이와 친해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실패의 연속이라고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만큼 인간은 고양이의 귀여움에 약해진다는 말이었다. 여기에도 주인 없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하얀색 바탕에 검은 얼룩이 살짝 있는 고양이였다.
사람들은 역사의 흔적과 하늘을 바라보다가 고양이를 발견하면 고양이에게 인사하기 바빴다. 고양이는 터줏대감처럼 뒹굴고 있었고 사람들은 고양이를 쓰다듬는 데 성공하면 환한 표정으로 기뻐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비행기 타고 돈을 내고 시간을 썼지만 무심하게 바라보는 고양이에게 순간 마음을 빼앗긴다.
심지어 기프트샵에는 그 고양이를 가지고 만든 기념품까지 있었다. 유명 관광지에 마스코트를 만들 게 아니라 그냥 거기에 고양이를 살게 하면 되는 거였다. 캐릭터라고 어쭙잖게 만들어서 여기저기 세워놓고 탈인형이 손 흔드는 것보다 이런 방식이 훨씬 훌륭했다.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나도 이 역사적인 장소에 대해 얘기할 때 고양이에 대해 떠들고 있을 정도다.
건물 한 면에는 큰 현수막으로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 당시 사진이 걸려 있었다. 74년 4월에 독재에 반대하는 큰 혁명이 있었고 이 수녀원 앞에서 청년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었다. 수녀원 옆에 있던 건물이 당시 수도경비대 본부 같은 곳이었는데 혁명이 일어나자 총리가 이곳으로 도망갔다고 한다. 결국 나라를 망쳤던 독재자는 사임했고 그제야 민주적인 정권이 들어서게 됐다.
대지진처럼 독재에도 붕괴된 것처럼 보였지만 다시 재기할 것이라는 희망을 담은 곳이었다.
ps.
<포르투갈 여행에서 생각한 것들> 1편은 여기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