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바람

by 미선씨


나는 외모, 꾸미기, 쇼핑에 상당히 관심이 없는 편이다.
오죽하면 화장을 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고, 화장은 제쳐두고 로션이나 선크림조차 잘 바르지 않는다.
회사생활 10년이 넘도록 명품백은 한 개도 없이 살았고, 옷도 산 적이 별로 없고, 구두나 힐은 잘 신지도 않는다.
굳이 돈을 아끼려고 그런 게 아니라, 그저 관심이 심하게 없는, 그런 사람이다.


이런 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소망이 하나 있었다.
'누가 나한테 어울리는 걸 콕 집어서 말해줬으면 좋겠다. 나도 예쁘게 스타일링이라는 걸 하고 싶어'
내가 저렇게 안 꾸미고 다닌 건, 정확히 말하자면 '몰라서', '새로운 걸 시도하는 것조차도 무서워서' 였을 수도 있다.


옆자리의 센스 넘치는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스타일링해주는 서비스가 있지 않을까요? "
친구의 이 말을 듣는 순간,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찾아봐야겠다.' 생각이 번뜩 떠올랐고,
마치 내 몸속에 있던 스타트 버튼을 누른 것처럼 그 순간부터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퍼스널 스타일링을 찾아보니 진짜로 그런 활동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마침 1:1 클래스보다 저렴한 원데이 클래스가 있다고 했다. 당장 신청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 날을 기다리며, 매일매일 출근길에 내 전신사진을 한 장씩 찍어 모았다.


드디어 그 날이 되었다. 최대한 내가 좋아하고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평소엔 입지도 않던 단벌 정장을 걸쳐 입고,
평소엔 쓰지도 않지만, 어쨌든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화장품을 박박 긁어모아서 들고 갔다.


강사는 좋아하는 색깔, 평소에 어떻게 하고 다니는지 등등을 물어보더니,
자기가 나를 좀 보고 얘기할 거라며 나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리곤 단호하게, 다다다다 말하기 시작했다.

" 미선 씨는 일단.. 눈썹 모양이 아치형이네요. 안 다듬으신 거죠?
지저분한 것만 좀 다듬으시고 대신 중간중간 끊어져 있으니
다른 화장은 안 하시더라도 눈썹은 꼭 그리세요.
눈코 입이 화려하게 생기신 편이고 전체적으로는 딥 웜톤이에요.
그런데 머리카락이 너무 까맣네요.
염색 안 한 본래 머리인가요?
그러면 꼭 염색은 했으면 좋겠어요. 색깔은 이런 색깔로요.


얼굴을 길쭉한 고구마형이고, 눈코입 모양을 복합형이네요.
입꼬리가 내려가 있어서
무표정하게 있으면 다른 사람이 화난 것처럼 여길 수 있겠어요.
신발 코는 코 모양을 따라가거든요.
미선 씨는 앞코가 둥그런 신발 신으시면 되고요........."



우와, 난 이렇게 누가 내 외모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는 걸 생전, 처음, 들었다.
스캔당하고 평가당하는 느낌이 굉장히 생경했다.
느낌이 이상하긴 했지만, 내가 딱 바라던 거긴 했다. 누가 나한테 제발 어울리는 걸 이야기해줬으면.
그래서 나도 열심히 받아 적었고, 돌아오자마자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일단, 염색을 했다. 추천해준 색깔로. 대학교 때 딱 한 번 해봤었는데, 거의 15년 만인가 보다.
오.. 염색을 마치니 확실히 좀 달라 보이는 것 같다.
미용실에서 나오는 길에, 아이 친구 엄마를 만났는데, 엄마가 첫눈에 대뜸 말했다.
" 어머, 머리 하신 거예요? 정말 어려 보여요! "


나는 단지 염색을 했을 뿐인데,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놀라웠다.
내가 인사를 하면, "엇, 많이 달라져서 몰라봤어요!"라는 반응도 여러 번
염색 진짜 잘했다고, 분위기 달라졌다는 반응도 여러 번
우와... 이런 걸 왜 진작 안 했을까 싶을 정도였다.
머리만 바꿔도 이렇게 다르구나 싶고.


그리고 난 늦바람이 났다.. 하하
나에게 어울리는 색이라고 알려줬던 명도가 낮고 채도가 높은 딥 웜톤 색 옷만 보면
말 그대로 사제끼고 있고(그래 봐야 인터넷 쇼핑으로 만원 이만 원 짜리지만)
신발도 몇 켤레 샀고(예쁘지만 불편한 구두들로!)
가방도 쓸만한 것으로 하나 장만했다.


결혼 전엔 관심이 없었고, 결혼 후엔 임신 출산 육아를 반복하면서 통 못 꾸몄는데,
뒤늦었지만 예뻐지고 있는 나한테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
안 하고, 못했을 뿐 예뻐지고 싶은 욕구가 속에 있었나 보다.


그 결과, 늦바람 난 엄마가 탄생했다. (큰아이가 그려준 엄마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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