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선씨 Aug 12. 2020

워킹맘이 보람을 느끼는 순간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어서, 퇴근 후 아이들 밥 차려주고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엄마 오늘 이거 꼭 해야 하거든. 조금만 조용히 해주고 엄마 이거 끝낼 때까지만 방에서 있어줄래?"

아이들은 뭔데 그러느냐, 엄마 바쁘구나 재잘재잘하더니 옆에서 퇴장해주었다.


예전이라면, 이만한 사이즈의 일을 처리해야 할 때, 어떻게든 혼자만의 시간을 냈었을 거다. 도서관을 잡거나 회사에서 조용히 야근을 하거나 집에 있더라도 다른 집안일 안 하고 틀어박혀 일만 했을 거다. 오롯이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는 그때가 참 편했다. 이젠 뭐하나 하려면, 온 가족의 일정을 조율해야 하니...


아무튼 좀 집중해서 해야 하는 일이었고, 나에겐 아이들이 잠깐 비켜준 30분에서 한 시간 남짓의 시간밖에 없고, 이 안에 어떻게든 끝내야만 한다. 현실을 탓하며 우울해할 시간이 없다. 그 시간도 아까우니까.


자리 잡고 앉아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빛의 속도로 PPT를 만들었다. 포맷은 기존에 생각해둔 걸 가져오고, 대략의 스토리를 짠 다음 완성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채워 넣기 시작했다. 대략 빈칸 없이 채운 후엔 거슬리는 게 없는지 빠르게 리뷰를 한다. 마음에 안 드는 걸 손보고 나니 내 눈엔 그럭저럭 된 것 같다. 시간은 어느새 1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어쨌든 한 판 채워 넣고 나니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마침 나온 둘째에게 엄마가 한 거라며 보여줬다. 학교에서 컴퓨터 수업을 해봤다고, 본인도 PPT를 만들어봤다며 관심 있게 들여다보더니, 나름 둘째가 조언을 해준다. 제목에서 부분이 잘 안 보이니 색깔을 바꾸는 게 어떻냐고 의견을 준다. 오오? 듣고 보니 나름 그럴듯하다. 둘째의 의견을 반영하여 수정하기로 했다. 

 

마침 퇴근한 신랑한테도, 해야 할 일을 다 했다는 기쁜 소식을 알렸다. (술 먹고 들어온) 신랑이 허허실실 웃으며 잠깐 보더니 이 장표가 눈에 안 들어온다고 차라리 장표를 여러 장으로 늘리라고 한마디를 한다. 음? 아까 나도 좀 마음에 걸렸던 건데 방안이 없어서 그냥 둔 부분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그 정도라면 고쳐야겠다 싶어서 장표를 분리하기로 했다. 그래. 이제 진짜로 된 것 같다. 



허리 펴고 앉아있으니 첫째가 술렁술렁 옆으로 다가온다.

" 엄마 다 했다? 한 번 볼래? " 보여주니

" 엄마는 이런 거 참 빠르게 잘하는 거 같아." 하며, 첫째가 말을 이어간다.


엄마 멋있는 거 같아.


잠깐,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이게 멋있을 일인가? 되물으니, 아이가 말한다.

" 선생님이나 다른 할머니나 엄마들이, 엄마 애 셋 키우면서 회사 다니는 거 대단하다고 그래. 내가 봐도 엄마 멋있어."


" 멋있다고 해주니 고마워."

살짝 당황했어서 덤덤하니 화답하고 말았지만,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멋있다'니. '멋있다'라니. 아이에게 이런 피드백을 받다니.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설명은 어렵지만 마음이 벅차다.

 예상치 못한 포인트에서 이런 말을 들어서 그런 걸까, 

그토록 갈망하던 칭찬을 제일 소중한 사람이 해준 거라 그런가, 

다른 말이 아닌 '멋있다'는 말이어서 그럴까.

그간의 노고가 헛되지 않았구나 싶기도 하고,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아도 아이에게 영향이 가는구나 싶기도 하고, 

그간 어떻게든 이어온 커리어가 의미 있었다 싶기도 하고. 


 무엇이라도 열심히 하고 있으면, 아이가 알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이에게 못해준 걸 미안해할 시간에 그저 현실에 충실히 임하는 게 답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쓴 글이 있다.

아이에게 '엄마처럼 살아라'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이었음 한다고.

조금은, 그 꿈을 이룬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가 좋아하는 건 뭐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