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간

by 미선씨

아마, 둘째가 갓난아이였을 때 즈음이었나 보다.

유일하게 혼자 사랑받던 첫째는 둘째가 생기고 나서 엄청난 질투를 보였고,
둘째는 둘째대로 백일도 안돼서 독한 중이염에 걸려서 징징댔다.

나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시절 나와 같이 일했던 친구가 말했다.
"과장님 그때 제가 무슨 말만 하면 '아이 둘 키우는 나만 하겠냐!'라고 화냈었어요"
많이 잊었지만, 그랬을 거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들고 불쌍한 사람 같았으니까.

어느 날 밤, 드물게 다른 가족들이 다 잠들고 나만 깨어 있던 그 시간,
나는 '혼자' 있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가 어리니 나갈 수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집 안 어딘가에 '혼자' 처박히는 것뿐이었다.

작은방엔 신랑이, 안방에는 애들이, 다른 방엔 짐들이 가득 차 있었다.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부엌밖에 없었다.
부엌에 주저앉아 널브러진 거실을 바라보며 한참을 울었다.

이 집에 있는 유일한 혼자만의 공간이 부엌이라니.
우리 집엔 왜 '내' 것이 없는 거지.
손바닥만 할지라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해


그래서, 결혼할 때 욕심부려 장만한 커다란 화장대를 찾아냈다.
이걸 살 때만 해도, 화장대 겸 책상으로 쓸 거라며 유난히도 큰 놈으로 골랐더랬었는데.
언젠가부터는 짐 더미에 파묻혀 잊혀 있었다.

누구에게도 공식적으로 말한 적은 없지만,
그 이후로 내 마음속에서 그 화장대는 '나만의 공간'이다.
약간의 화장품과, 노트와, 내 책과 노트북이 있는 빈 공간.
자꾸자꾸 아이들이 엄마한테 주는 선물이라며 화장대 위에 무얼 놓고 가곤 하는데,
솔직히는 그다지 달갑지 않지만... 사랑의 증표이니 그 정도는 참아내는 중이다.



엊그저께는, 아이들이 한 번도 꺼내보지 않은 오래된 전집을 과감히 버렸다.
(꼭 버린다고 하니 애들이 버리지 말라고 보겠다고 주장했지만, 버렸다.)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내 책들을 한 곳에 모았다.
누군가에게 받은 책, 내가 돈 들여 산 책, 어릴 적 집에서 가져온 책...
꼬박 반나절이 걸려 책장을 정리하고 나니, 나의 책들이 책장 두 칸에 가지런히 모여있다.

이 두 칸이 뭐라고.
이게 뭐라고. 맘이 이렇게 좋은 건지.
달랑 두 칸이지만, 이 곳도 나만의 공간이다.

그러니 이제 이 집에서 내 지분은 내 화장대와, 내 책장 두 칸.
별 것 아니다. 하지만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크다.
나는 내 화장대를 꾸며나갈 것이고, 내 책장을 늘려나갈 것이다.
오롯이 나만의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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