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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군 Sep 29. 2016

사소한 아이의 소소한 행복

최강희

이미 스스로가 독특함이 돼버린 최강희의 화보집.

좋아하는 국내 여배우들이 잇따라 속속 책을 출간하는건 분명 기쁜 일이지만
알맹이가 없이 그저 낙서에 지나지 않는 글들과 화보집 못지않는 사진들만 나열되면 좀 열받기도 한다.
이 책은 아마 배두나의 런던 어쩌구 이후로 두번째로 읽게된 여배우의 책이었지만
최강희의 독특함 때문인지 책 자체도 별 내용없이 그저 독특함뿐이어서 좀 실망했다.
디자인이라던지 다른 사진작가가 찍어준 환상적인 아이슬란드의 배경 속 최강희의 모습들은 딱 그녀스럽다.
그냥 책 겉표지에 '누구누구의 화보집' 이라고 써 붙여놓으면 나처럼 낚이는 사람이 좀 더 줄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배신감을 날려버리게 해준 책 말미의 글이 있었으니,

*이 책의 출판 저작권료 전액은 저자의 뜻에 따라 미혼모 돕기 및 환경보호단체를 돕는 데 사용됩니다.

'전액' 이란다. 이 한 문장때문에 최강희가 더 좋아져 버렸다.




















"어른들은 왜 넘어질 때 표정이 애처럼 되게?"

"그때는 거짓말을 못해서 그래."

ㅡ<나는, 인어공주> 중에서


(중략)


자장가
코끼리


내 친구 발코가 그려줬어요.

"잠이 안와서 그냥 있어" 했더니

일단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라고 하더군요.
그럼 코끼리가 나타난다고...

그리고 잠은 자는 게 아니라 오는 거래요.
그러니까 기다렸다가 만약 잠이 온다면 그때 놓치지 말고 입장하면 되는 거라고.
잠으로...

끄덕끄덕.
맞는 말 같죠?

그래서 누워서 코끼리 찾는데 코끼린 안 오고 난데없이 눈물이 나데요.
코끼리도 찾는 게 아니라 자기가 오는 건가 봐요.
그런데 저한텐 안 왔어요.

내 친구 참 똑똑한 거 같아요.
그림도 잘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사랑도 하는 게 아니라 오는 건데.
우리 그땐 절대 놓치지 말고 입장합시다.


(중략)


공공의 적


사랑이 어디 있냐고? 있지, 물론.

그 떨림, 그 설렘, 그 간절함을 사랑이 아니면 달리 뭐라 표현하겠어?
내가 겪어봐서 알아. 분명 있긴 있어. 사랑.
근데 그 사랑이란 놈 말이야. 도대체가 책임감이 없어.
내게 와서도 사람 하나 엮어주고는 날랐거든.
그 떨림, 그 설렘, 그 간절함도 다시 다 가져가 버렸어.
못된 놈. 완전 바보된 거지. 우리 둘.
그러니까 나와 나의 사랑하는 사람. 한마디로 우린 둘 다 피해자야.
정말 그놈이 우릴 이렇게 엮어놓지만 않았어도
우리... 이렇게 시시해지진 않았을 텐데.
그래서 그 놈을 찾아야 돼, 도와주지 않을래?
듣는 소문에 의하면 이 사람 저 사람 속을 돌아다니며
거기서도 자기 멋대로 엮어놓고는 사라진다고 하던데... 나도 그냥 들은 소리야.
아니 세상에 말이 돼? 미워하는 사람끼리도 얼굴 마주치고 잘만 사는데
서로 진심으로 아끼고 좋아했던 사람끼리는 
제대로 얼굴 한 번 못 마주치고 살아야 하냔 말이야.
우린 정말 좋아하는 사이였거든...
너희도 언젠가 당할지도 몰라.
정말 순식간이거든. 그땐 우리 맘 알게 될 거야. 그러니까 조심해.
우리처럼 되기 전에 아예 그놈이 온다 싶으면 "우리 그런 서 안 사요" 내지는
문을 열어주지 말던지, 없는 척하던지, 그도 아니면 그냥 "예수 믿어요" 해버려.
마음 문을 꼭꼭 잠그란 말이지. 안 그러면 우리처럼 돼.
...도와주지 않을래? 공공의 적이야. 다시 찾는 것 말고는 이젠 달리 방법이 없어...


(중략)


그럴
수도...


그럴 수도 있잖아요.

누구는 잘 울고.
누구는 잘 웃고.
누구는 착하고.
누구는 초록색을 좋아하고.

하지만 잘 우는 그 아이가 울기만 하는 건 아니고.
핑크를 싫어하는 그 사람이 어느 날 핑크색 손톱을 칠할 수도 있어요.

외로움이나 우울함도 마찬가지예요.
외로움에, 또 우울함에 헐떡여도

늘 우울했던 건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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