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희
이미 스스로가 독특함이 돼버린 최강희의 화보집.
좋아하는 국내 여배우들이 잇따라 속속 책을 출간하는건 분명 기쁜 일이지만
알맹이가 없이 그저 낙서에 지나지 않는 글들과 화보집 못지않는 사진들만 나열되면 좀 열받기도 한다.
이 책은 아마 배두나의 런던 어쩌구 이후로 두번째로 읽게된 여배우의 책이었지만
최강희의 독특함 때문인지 책 자체도 별 내용없이 그저 독특함뿐이어서 좀 실망했다.
디자인이라던지 다른 사진작가가 찍어준 환상적인 아이슬란드의 배경 속 최강희의 모습들은 딱 그녀스럽다.
그냥 책 겉표지에 '누구누구의 화보집' 이라고 써 붙여놓으면 나처럼 낚이는 사람이 좀 더 줄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배신감을 날려버리게 해준 책 말미의 글이 있었으니,
*이 책의 출판 저작권료 전액은 저자의 뜻에 따라 미혼모 돕기 및 환경보호단체를 돕는 데 사용됩니다.
'전액' 이란다. 이 한 문장때문에 최강희가 더 좋아져 버렸다.
"어른들은 왜 넘어질 때 표정이 애처럼 되게?"
"그때는 거짓말을 못해서 그래."
ㅡ<나는, 인어공주> 중에서
(중략)
자장가
코끼리
내 친구 발코가 그려줬어요.
"잠이 안와서 그냥 있어" 했더니
일단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라고 하더군요.
그럼 코끼리가 나타난다고...
그리고 잠은 자는 게 아니라 오는 거래요.
그러니까 기다렸다가 만약 잠이 온다면 그때 놓치지 말고 입장하면 되는 거라고.
잠으로...
끄덕끄덕.
맞는 말 같죠?
그래서 누워서 코끼리 찾는데 코끼린 안 오고 난데없이 눈물이 나데요.
코끼리도 찾는 게 아니라 자기가 오는 건가 봐요.
그런데 저한텐 안 왔어요.
내 친구 참 똑똑한 거 같아요.
그림도 잘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사랑도 하는 게 아니라 오는 건데.
우리 그땐 절대 놓치지 말고 입장합시다.
(중략)
공공의 적
사랑이 어디 있냐고? 있지, 물론.
그 떨림, 그 설렘, 그 간절함을 사랑이 아니면 달리 뭐라 표현하겠어?
내가 겪어봐서 알아. 분명 있긴 있어. 사랑.
근데 그 사랑이란 놈 말이야. 도대체가 책임감이 없어.
내게 와서도 사람 하나 엮어주고는 날랐거든.
그 떨림, 그 설렘, 그 간절함도 다시 다 가져가 버렸어.
못된 놈. 완전 바보된 거지. 우리 둘.
그러니까 나와 나의 사랑하는 사람. 한마디로 우린 둘 다 피해자야.
정말 그놈이 우릴 이렇게 엮어놓지만 않았어도
우리... 이렇게 시시해지진 않았을 텐데.
그래서 그 놈을 찾아야 돼, 도와주지 않을래?
듣는 소문에 의하면 이 사람 저 사람 속을 돌아다니며
거기서도 자기 멋대로 엮어놓고는 사라진다고 하던데... 나도 그냥 들은 소리야.
아니 세상에 말이 돼? 미워하는 사람끼리도 얼굴 마주치고 잘만 사는데
서로 진심으로 아끼고 좋아했던 사람끼리는
제대로 얼굴 한 번 못 마주치고 살아야 하냔 말이야.
우린 정말 좋아하는 사이였거든...
너희도 언젠가 당할지도 몰라.
정말 순식간이거든. 그땐 우리 맘 알게 될 거야. 그러니까 조심해.
우리처럼 되기 전에 아예 그놈이 온다 싶으면 "우리 그런 서 안 사요" 내지는
문을 열어주지 말던지, 없는 척하던지, 그도 아니면 그냥 "예수 믿어요" 해버려.
마음 문을 꼭꼭 잠그란 말이지. 안 그러면 우리처럼 돼.
...도와주지 않을래? 공공의 적이야. 다시 찾는 것 말고는 이젠 달리 방법이 없어...
(중략)
그럴
수도...
그럴 수도 있잖아요.
누구는 잘 울고.
누구는 잘 웃고.
누구는 착하고.
누구는 초록색을 좋아하고.
하지만 잘 우는 그 아이가 울기만 하는 건 아니고.
핑크를 싫어하는 그 사람이 어느 날 핑크색 손톱을 칠할 수도 있어요.
외로움이나 우울함도 마찬가지예요.
외로움에, 또 우울함에 헐떡여도
늘 우울했던 건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