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관이 본 영화 (3)

# 일 포스티노 (IL POSTINO)

by 키다리 아빠

이탈리아 나폴리 바다 작은 섬 '칼라 디 소토'.

이 섬으로 칠레 출신의 세계적인 시인 '파블로 네루다'(필립 느와레)가 국내 정치적 사정으로 망명하여 온다는 소식에 섬사람들 모두가 큰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림같이 예쁜 경치를 가진 섬이지만 식수는 한 달에 한 번씩 육지에서 공급받아야 하고, 섬사람 대부분이 문맹에다 고기잡이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이 섬의 순박한 마을 청년 '마리오'(마시모 트로이시)는

우연히 임시 우편배달부를 모집한다는 벽보를 보게 되었고, 그건 다름아닌 세계 각지로부터 시인 네루다에게 오는 대량의 우편물을 배달하는 일이었습니다. 마리오는 네루다가 기거하는 푸른 바다가 보이는 바닷가 높은 벼랑 위의 집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네루다에게 오는 우편물을 매일매일 배달하게 됩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대시인과 우편배달부의 평범한 만남. 어찌 보면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그냥 그렇게 스쳐가는 인연일 수도 있었을 일상적 만남. 하지만 마리오는 처음엔 그냥 대시인에게 친필 서명을 받아 사람들에게 자랑이나 하고 싶은 마음에 네루다의 시집을 샀다가 점점 그의 시에 빠져들게 되는데요. 그러던 어느 날 시인 네루다로부터 그의 일생을 송두리째 바꿀 무언가를 마주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은유'(Metaphore 隱喩)였습니다.

은유란 무엇인가요?
은유란 뭐랄까 뭔가를 말하기 위해 다른 것에 비유를 하는 거야
예를 들어 '하늘이 운다'면 그게 무슨 뜻이지?
비가 오는 거죠
맞았어 그게 은유야
그렇군요 간단하네요 그런데 왜 명칭이 그리 어렵죠
인간은 사물의 단순함이나 복잡함과는 전혀 상관없는 존재지
어제 이런 시를 읽었어요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들었어요
왜 '이발사들의 냄새가 날 눈물짓고 울부짖게 한다'는 건가요?
마리오, 내가 쓴 시 구절은 다른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네
시란 설명하면 진부해지고 말아
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정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뿐이야.

그날 이후 시인이 되고 싶다며 어떻게 하면 시인이 될 수 있는지 간절히 묻는 마리오에게 네루다는 내심 마리오가 시인으로서 자질이 있는지 시험이라도 하듯이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 라틴어 특유의 빠른 템포로 파도가 휘몰아치듯 시를 낭독합니다.

"여기 섬에는 바다
매 순간 얼마나 많은 바다가 솟아나는지
그렇다고 했다가 아니라고 했다가
다시 아니라고 한다
푸르름과 포말과 질주 속에서
다시 아니라고, 아니라고 하며
가만히 있지 못한다
'내 이름은 바다야'라고 계속 말하며
바위에 들러붙지만 소용이 없네
그러면 일곱 초록 호랑이 일곱 마리 초록 개
일곱 개 초록바다의 일곱 개 초록 혀로
그 위를 훑고 입 맞추고 적시고
가슴을 두드리며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네"
어떤가?
이상해요
이상하다니 엄격한 비평가로군
시가 이상하단 게 아니고요 그러니까 말씀하실 때 이상한 느낌이 났어요
느낌이 어땠는데?
모르겠어요 단어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바다처럼 말이지
맞아요, 바다처럼요
그건 운율이라네
어쩐지 뱃멀미가 나더라고요
뱃멀미?
마치...배가 단어들 사이에서 퉁퉁 튕겨지는 느낌이었어요
배가 단어들로 튕겨진다고? 방금 자네가 한 말이 뭔지 아나?
아뇨 뭔데요?
그게 은유야!

마리오의 놀라는 표정과 네루다의 흐뭇해하는 미소가 한눈에 그려집니다. 두 사람은 은유를 통해 막힌 경계가 일시에 허물어지는 진정한 만남을 경험합니다.

'일 포스티노'의 은유는 모든 대상에 대한 낯설게 보기이자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뜨거운 용광로와 같은 불구덩이입니다. 은유는 모든 닫힘으로부터 해방입니다. 은유는 말과 말 사이에 있습니다. 은유는 말과 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말에 들러붙지 않고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 갑니다. 은유를 통해 바라본 세상은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입니다. 은유는 말의 이편과 저편의 사이에 있으면서 동시에 말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은유는 말이 아닌 말입니다. 말은 은유를 통해서 비로소 풀어헤쳐지고 그대로의 감정으로 되살아 납니다. 각자의 고집스러운 말의 견고한 틀을 깨부수는 힘은 은유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은유는 자유의 다른 이름입니다. 진정한 시인이야말로 혁명가인 이유입니다. 논리를 모르면 삶의 약간을 잃을 수도 있지만 은유를 모르면 삶의 전부를 잃는 것과 같습니다. 서로 말이 통한 다는 것은 감정이 통한다는 것이고 감정이 통한다는 것은 은유로 통한다는 것이겠지요.


이후에 네루다의 극적인 도움으로 짝사랑에 그칠뻔한 사랑하는 여인 베아트리체와의 결혼과 행복한 나날들. 칠레 정부의 정치적 제제가 해제되어 그리운 고국으로 돌아가는 네루다. 그로부터 5년 후 네루다가 다시 이 섬으로 마리오를 찾아왔을 때는 베아트리체와 그의 어린 아들만 남아있고 안타깝게도 마리오는 네루다가 떠난 후 얼마 안 되어 격렬한 좌우 정치적 대립의 와중에 '파블로 네루다를 위한 노래'라는 시를 시위 군중이 모인 연단에서 발표하려다 무력진압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네루다는 예전에 마리오와 추억이 깃든 바닷가를 거닐며 우두커니 파도소리만 간간히 들리는 바다를 바라보다 우정 어린 한 줌의 눈물을 그 바다에 뿌리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상대방에게 정말 답답하다고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하는 말이 '당신 하고는 말이 안 통해! 당최 말귀를 못 알아들어!'라는 말일 것입니다. 아무리 말을 이리저리 돌려서 말해도 전혀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수긍하지 못할 때 숫제 말로 미치고 환장한다고 하죠. 무슨 학문적인 어려운 말을 쓰는 것도 아니고 낯선 외국어도 아닌 그냥 평범한 일상의 말을 사용하는데도 상대는 도무지 이해 불가하다는 입장입니다.


과연 상대방은 나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까요? 오히려 상대방은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나에게 '네 말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겠고 어떤 뜻인지도 알겠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해를 못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이해를 못한 것이 아니라 애써 이해를 안 하려 한다고 해야 맞을 겁니다. 끝없이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고 상대는 상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이 낯선 외국여행을 하면서 말이 안 통해도 손짓, 발짓, 눈짓, 몸짓, 온갖 바디랭귀지를 동원하면 웬만한 의사소통은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말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말에 대한 사전적, 논리적 의미의 문제가 아니라 말에 숨어있는 나와 상대방의 '감정'의 문제입니다. 감정이 먼저이고 말은 이차적인 부분입니다. 나의 말을 애써 이해하지 않으려는 상대방에게 말은 더 이상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드러나지 않은 상대방의 속 마음이 중요합니다.


영화에서 마리오가 사랑하는 여인 베아트리체에게 건네준 구애의 편지를 그녀의 숙모가 네루다에게 가져와서 격하게 따지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우리 안에 은유의 핵심을 찌릅니다.

한 달 동안 마리오 루오폴로란 놈이 우리 식당을 배회하며 조카딸에게 수작을 부렸어요
무슨 말을 했는데요?
은유라나요(메타포레)
그런데요?
그놈이 은유를 해서 조카딸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어요
재산이라고는 발가락 때 밖에 없는 자식인데 말솜씨 하나는 비단이더군요
그래요?
처음엔 순진하게 나가더라고요
미소가 나비 같다느니 뭐라 하면서 말이죠
그러더니 이제 그 애 젖가슴이 두 개의 불꽃이라고 하는군요
그냥 상상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아니면...
전 그놈이 조카 딸년을 손으로 만졌다고 생각해요
(쪽지를 주며)읽어 보세요 그년 속옷에서 찾았어요
"벌거숭이
섬에 드리운 발처럼
섬세한 당신
당신의 머리카락은 별빛을..."
이게 벌거벗은 몸을 봤다는 증거가 아니고 뭐겠어요?
아니죠. 로사 부인
이 시로 그렇게 추론할 수는 없어요
아뇨 이 시에는 거짓이 없어요
조카 딸년 벗은 몸은 이 시에 나온 그대로거든요
그러니 마리오 루오풀로 녀석에게 전해주세요
오늘부터 평생 우리 애를 만나지 못할 거라고요
만약 다시 찾아오면 총으로 쏴 죽인다고 하세요 아시겠어요?


오늘 저녁 식사 도중에 5살짜리 딸아이가 밥을 먹지 않고 갑자기 엄마 아빠를 노려보며 '나 화났어! 엄마 아빠는 내 맘도 몰라주고!'라며 서럽게 울기만 합니다. 이럴 때 정말 난감합니다. 나와 아내는 우리가 뭘 잘못했나 하며 서로 얼굴만 멍하니 바라봅니다. 하지만 이윽고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엄마가 퇴근해서 올해 태어난 둘째 갓난아이 방에 가서 먼저 안아 주고 딸아이는 그냥 무덤덤하게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아무리 나와 아내가 '우리 딸을 엄마 아빠가 얼마나 사랑하는데'라고 말을 해도 딸아이의 울음은 쉽게 그치지 않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야겠지요. 어느 순간 딸아이의 밝은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오늘도 안심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말을 하면서 교도소 재소자만큼 말이 안 통하는 대상도 없을 겁니다. 그만큼 말 이전에 감정의 벽이 서로 간에 단단하게 가로막고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애초에 상대에 대한 불신과 적개심으로 가득 찬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부터가 무리일 것입니다. 교도소에서 이루어지는 수용자 상담이나 심리치료가 어려운 것도 그들이 특히 판단력이나 사변적 이해력이 떨어져서가 아닙니다.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검사, 판사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정교한 논리와 화려한 언변을 보이는 재소자를 보면 범죄인이 된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말입니다. 감정을 닫아버린 말은 겉으로 이해하는 척만 할 뿐 건조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말로는 안 통하는 난감한 경우가 일상에서 수없이 일어납니다. 가정에서, 회사에서, 친구사이에서, 연인 사이에서, 세대에서, 모든 것들의 사이에서....

그러고 보면 오해와 이해불가를 불러오는 말은 불완전한 것입니다. 우리는 말이 애초부터 완전하지 못하다는 전제에서 말을 시작해야 합니다. 나의 말을 상대방이 말 그대로 받아들일 거라는 생각은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말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불완전하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때로는 생각으로, 때로는 글로, 때로는 몸짓으로, 때로는 침묵으로. 그래서 침묵도 금이 아닌 경우를 많이 봅니다.


요즘 우리들은 이 같은 말의 벽을, 한계를 실감해서인지 몰라도 자기만의 언어의 세계로 침잠합니다. 어차피 통하지 않을 바에야 외부로의 관심을 끊고 자기만의 세계에서, 자기와 말의 코드가 맞는 사람들과 대상들과 힐링을 하기를 원합니다. 관계성의 완전한 차단이 아니라 한정된 관계성의 새로운 조합을 원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무슨 무슨 모임, 단체, 그룹, 커뮤니티로 넘쳐납니다. 그곳에 가서 잠시 화려한 힐링을 하고 돌아오면 다시 혼자 허탈한 침묵의 시간과 공간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우리들은 언제까지 이런 습관성 힐링을 반복해야 진정한 감정을 만나는 것일까요? 감정이 빠져나간 말은 메마른 덤불들이 스산한 바람에 흔들리는 사막처럼 황량하기만 합니다. 말에 오롯이 감정을 돌아오게 할 수는 없을까요? 나의 말이 상대에게, 상대의 말이 나에게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길은 없을까요? 나와 대상과의 거리는 아직도 멀기만 합니다.




하나의 대상에는 하나의 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대상에는 이 세상 사람만큼의 말이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 대상은 그 말에 고착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활활 살아 움직이고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오감이 그렇게 고착되어 있다고 믿을 뿐입니다. 하나의 대상에도 사람마다 말의 온도가 각각 다릅니다. 말보다 감정이 먼저입니다. 말보다 자신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감정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무엇하나 새롭거나 흥미를 끌 것 같지 않은 단조롭고 게으른 권태가 지속되는 작은 섬의 일상 속에서 마리오는 은유를 만나면서 눈물처럼 움 터 나오는 새싹 같은 새로운 삶에 눈을 뜨게 됩니다. 진리는 멀리 있지 않고 아주 가까이에 있는데도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문제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화려한 여행지를 찾아 떠나지만 그곳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그곳의 풍경이 너무 익숙해서 권태롭기까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를 떠나고 싶지만 그들은 우리가 있는 여기를 찾아오기 위해 어느 날 갑자기 여행을 떠날지도 모를 일입니다. 무엇을 찾아 떠나는 것은 지금 이 곳을 결핍의 공간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삶이 여행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여기를 낯설게 볼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지금 여기를 낯설게 보는 것은 편안한 안주가 아니라 날마다 새롭게 떠나는 자기 안으로의 여행일 것입니다. 그렇게 시인 네루다와 순박한 섬 청년 마리오가 은유라는 낯선 여행지에서 서로 만나 친구가 되고 한 편의 시가 되었듯이 말입니다. 시와 영화의 경계를 허물어 눈부신 시가 된 영화 '일 포스티노'입니다.


시 (La Poesia)

그러니까 그 나이였다.
시가 나를 찾아왔다.
모른다.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아니다.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다.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다.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렸다.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어 있었다.
열(熱)이나 잃어버린 날개
또는 내 나름대로 해보았다.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다.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넌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다.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遊星)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그림자,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그림자,
휘감아도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미소(微小)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虛空)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렸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다.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1973,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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