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사회는 세월호 사건, 국정농단 사건으로 발단이 된 국민들의 촛불 혁명으로 이룩한 민주주의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적폐라고 생각하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개혁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검경 수사권 조정, 공수처 설치 등이 포함된 사법개혁 논의라고 볼 수 있는데요. 우리는 과거 70년간 이어져온 오래된 논의에 대해 이제 그 결실의 순간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사법개혁에 관한 논의가 갖는 본질은 익히 알다시피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의 분산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 군사독재와 이어지는 각종 적폐로 견제받지 않은 권력이 얼마나 국민 개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는지 온 몸으로 체득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국가권력이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정상국가라는 것쯤이야 학창 시절부터 익히 배워 알고 있지만 그동안 우리들은 이런 것들이 나하고는 별로 상관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국민이 선거를 통하여 정당한 권력을 맡겨주었으니까 아마도 잘하겠지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난 현실 속에서 결과는 너무도 참담했습니다.
그런데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도 있듯이 앞서 언급한 견제받지 않은 권력이 국민에게 끼치는 비극이 있다면 반대로 너무 힘이 없는 국가권력이 있다면 어떠할까요?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하는 힘이 없는 국가기관은 항상 힘 있는 국가기관에 뒷전으로 밀리게 되고 이것은 고스란히 국민에 대한 행정서비스의 부실로 이어지게 될 것이 자명할 것입니다. 국가기관 모두가 상호 협력하여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이상적인 목표 아래 현실적으로는 국가기관 간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principle of checks and balances)가 실현되도록 구체적인 장치와 조정을 필요로 하는 무언의 약속된 당위가 있는 것입니다.
견제와 균형은 결국 견제를 통한 ‘균형’에 방점이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견제와 균형은 권력의 분립을 통한 국가기능의 적정하고 원활한 작용에 의한 국민의 삶의 향상에 궁극적 목적이 있습니다. 과거 견제받지 않고 균형 잡히지 않은 권력이 국민의 삶에 끼친 해악이 얼마나 가혹한 것이었는지는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공수처 설치, 검찰개혁, 검경 수사권 조정, 경찰개혁 등을 포함한 사법개혁의 본질도 어느 한 기관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에 대해 견제와 균형을 위한 노력의 일환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정행정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관점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이를 위해 외적으로는 법무부 안에 교정행정을 총괄하는'교정본부'라는 조직이 행정구조상 차지하는 위상과 내적으로는 교정본부 아래 일선기관의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중앙 교정행정 조직 개혁 - 교정행정수요에 대한 전반적인 대응 및 전문적이고 종합적인 교정정책 수립과 평가, 연구 등의 역할 강화 필요
그래서 지금부터는 법무부에 속해있는 교정행정의 구조(structure)와 밸런스(balance)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범죄인에 대한 형의 집행을 관장하는 교정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지만 현대적 의미의 교정행정의 도입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조선시대 5형(태형, 장형, 도형, 유형, 사형) 중심에서 1894년 갑오개혁을 계기로 자유형(징역) 중심으로 전환되었는데요. 이는 죄인의 목을 베고, 유배를 보내고, 사약을 내리고, 곤장을 치고, 주리를 트는 참혹한 형벌 시대의 작별을 고하고 감옥에서 강제노동을 시키는 나름 신사적인 징역형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다가 감옥에 가두고 강제노동을 시키는 구금 중심의 형벌에서 교육교화 중심으로의 변화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1962년 법무부 '형정국'이 '교정국'으로 전환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2007년 '교정본부'로 확대 개편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세계사적으로 보면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아우슈비츠 유대인 학살 등 반인류, 반인권적 전쟁범죄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성으로 교정 현장에도 점차 인권보장이 강조되기 시작한 시점과 그 시간적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현대사회의 사회 규모의 확대와 구조적 복잡성으로 범죄환경이 크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강력범죄, 약물중독 범죄, 성폭력 범죄. 동기 없는 범죄(묻지마 범죄)인 정신질환 범죄가 크게 증가하고 있어 국민의 불안감이 증폭하여 사회안전망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는 커지는 반면 이에 대한 경찰・ 검찰・ 법원・ 교정・ 보호관찰로 이어지는 사법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높아만 가는 실정인데요. 2016년 대검찰청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범죄자 2,020,196명 중 897,996명(44.5%)이 전과자로 사실상 범죄자 중 절반이 전과자인 셈으로 국민 입장에서 보면 과연 국가가 반복되는 재범 범죄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정책이 있기는 한 건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범죄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증가는 국가 경제에 큰 부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2008년 기준으로 범죄의 사회적 비용은 연 158조 7,293억 원(GDP의 16.2%)으로 해마다 그 비용은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11)
요즘 복지예산에 드는 비용이 천문학적이고 예산 증액을 위해서는 국민부담이 필수적인 마당에 이렇듯 국가 전반에 걸쳐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범죄 대책이 범죄를 직접 다루는 사법기관들만에 한정되어서는 안 되고 국가 전체적으로 전방위적인 대책 수립과 범죄 관련 정책에 대한 국민적 의견 수렴이 필요할 때라는 것을 범죄의 사회적 비용이 대변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실은 이런 변화에 상응하는 시스템과 정책을 간절히 요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재범방지의 최후보루임을 자처하는 교정행정을 담당하는 법무부 교정본부가 국민의 눈에는 어떤 모습으로 비치고 있는 것일까요? 국가 전체 시스템과 상호 맞물려 있는 구조적인 부분을 설명하지 않고 교정기관 자체 시스템 문제로만 현상을 설명한다면 재범방지를 위한 소중한 논의들이 자칫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공산이 큽니다. 그 태풍에 지금 작은 배에 불과한 교정본부는 난파를 당할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교정공무원, 학계 등에서 지난 수십 년간 수용자에 대해서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 결국 형기를 마치면 고스란히 사회로 복귀하므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재범방지 대책, 범죄 원인 치유 중심의 교정 패러다임의 변화, 피해자 구제 등 회복적 정의 실현 등 근본적인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역설해왔습니다.
물론 교정행정을 직접 책임지고 있는 교도관만큼 수용자를 잘 이해하는 전문가는 이 세상에 없다고 자부 아닌 자부를 하면서도 현실 앞에 놓인 거대담론을 실현하기에는 교정공무원에 대한 독자적인 인사권도, 예산권도, 조직권도 없는 법무부 내 보조기관에 불과한 교정본부로서는 역부족인 것이 사실입니다. 장기적인 플랜을 가지고 교정정책을 펼치려고 해도 잦은 법무부 장관 교체로 정책의 일관성이 없고, 정책과 예산은 항상 힘 있는 실국에 집중되어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니, 일선에서 부르짖는 개혁의 목소리는 소리 없는 메아리로 돌아오고 게다가 교도관에 대한 오래된 사회적 편견 속에서 교도관의 사기는 좀처럼 오르지 않는 현실의 문제도 있습니다. 8.15. 해방 이후 교정공무원이 4배(15,800여 명, 법무부 전체 공무원의 50% 차지) 증가, 소속기관도 3배 이상(57개 기관: 지방교정청 4, 교도소 38, 구치소 11, 지소 3, 민영교도소 1) 증가했고, 교정본부 2016년도 기준 예산은 약 1조 2700억 원(법무부 전체 예산의 45% 정도 차지)하고 있지만 인건비 등을 제외한 주요 사업비는 총 2,400억 원에 불과하고 이중에서도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적 경비를 제하고 순수 재범방지 프로그램에 소요되는 비용은 매년 80억 원 안팎에 불과하니 이걸 가지고 5만 6천여 명이 넘는 수용자 재범방지 교육에서 실효성을 찾기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교정본부가 법무부 전체 공무원의 50%, 전체 예산의 45% 정도를 차지하는 거대한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현행 법무부 안에 독자성이 부족한 보조기관에 불과한 그야말로 중앙시스템이 허약한 체제로는 도저히 한층 복잡, 다양해져 가는 교정행정수요에 대한 전반적인 대응이 어렵고, 방대한 교정행정조직에 대한 효율적인 지휘 감독이 곤란하며, 전문적이고 종합적인 교정정책 수립과 평가, 연구 등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어 소극적, 방어적, 폐쇄적 체제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단순한 형집행기관의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취약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방법론으로서 교정공무원, 학계, 정계 등에서는 오래전부터 조직, 인사, 예산의 독립이 보장되는 외청(外廳)으로의 독립을 끊임없이 주장해왔던 것입니다. 1982년 대통령의 교정청 독립 추진 지시, 1994년 행정쇄신위원회에서 교정청 신설 논의, 2003년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에서 교정보호청 신설 논의, 2004년 법무부 장관 지시로 교정보호청 설치 추진을 시도한 사실이 있었고, 2005년 문학진 의원 등 29인, 2013년 이명수 의원 등 10인, 2017년 정성호 의원, 이명수 의원 등 10인의 교정청 독립을 위한 국회의원 발의가 있는 등 외청 독립을 위한 노력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정부 전체 17개 청 단위 조직과 비교 및 외국의 교정행정제도와 비교를 해보면 이런 독립 외청 주장이 결코 무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혹여 일반인이 보기에는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 있는 부처 이기주의 수준이 아니냐는 의심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규모의 경제’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통계수치 상에서 나타나는 직원 정원, 소속기관 수 및 예산 배정액을 현재 다른 독립된 청과 비교해보면 교정본부가 독립된 청으로 확대 개편하는 데 있어 크게 부족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몸집이 커지면 그에 걸맞은 옷을 입어야 하는 이치와 같은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교정행정이 법무부 내 보조기관의 지위에서 벗어나 외청으로 독립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외적 독립과 아울러 반드시 필요한 것이 조직 내부의 혁신일 것입니다.
이제는 미래 교정행정의 혁신을 위하여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과감하게 폐지할 것은 폐지하고 새롭게 필요한 것은 만드는 유연하고 창의적인 사고가 필요한 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추진 중인 기존의 수용자 심리치료 분야를 확대・강화하여 일선기관에도 ‘심리 치료과’를 신설하는 것은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그 의미가 작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일선 교정기관 조직 개혁 – 수용자 교육교화 심화 및 출소 전후 지원 강화 필요
먼저 조직 내부의 혁신과 관련하여 일선기관의 조직 재정비가 필요합니다.
일선 교정기관에서 ‘보안과’는 주로 수용자 구금 확보 및 수용질서 유지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입니다. 대략 보안과 인원은 한 기관 전체 직원의 60~70% 정도를 차지하는 가장 큰 부서인데요. 그러므로 이 부서를 관리 감독하는 부서장(보안과장)은 업무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고 과중하여 업무수행의 적정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가 되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일선 교정기관의 보안과의 업무 특성상 일사불란한 지휘체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보안과장에게 권한의 집중을 기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어느 정도 감안하더라도 그 업무 권한의 집중이 지나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향후에는 기존의 보안과를 2개의 과(보안1과, 보안2과)로 기능적으로 분할하여 ‘보안1과’는 보안 일반사무 업무(행정일반), 고충처리업무(관규위반, 형사, 행정, 민원, 진정 등 조사)와 수용자 심리치료 업무(수용자 심층상담 및 각종 면담 등)를 담당하고, '보안2과'는 이를 제외한 구내 보안업무(수용동, 작업장 등)와 수용자 외부이동 업무(외부병원 진료 및 입원, 이송 등)를 담당하여 과중한 업무수행의 적정을 기하는 방향으로 개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보안1과’는 ‘수용자 심층 상담’에 인력 충원과 아울러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다음에 '사회복귀과'는 교정행정의 궁극적 목표인 재소자 교육교화를 담당하는 부서인데요. 주로 귀휴, 가족 만남의 집, 가족 접견, 각종 교화행사, 종교행사, 인성교육, 도서 및 서신 업무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부서가 교정행정 전체를 통틀어 가장 핵심적이고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 하는 부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가장 힘없는 부서, 만년 인원 부족에 예산 부족으로 기피 1순위 부서로 인식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사람의 변화는 결국 내면의 변화에서 시작됩니다. 과숙체락, 줄탁동시(瓜熟蒂落, 啐啄同時)라는 것도 내면과 외면의 동시적 상황 속에서 내부에서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힘이 있어야 변화가 가능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내면의 변화 없는 외부적 힘에 의한 변화는 겉으로는 변할지 모르지만 내면은 변하지 않은 채로 남아있어 언제 어떤 계기를 만나면 다시 악마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교정행정의 이념이 죄지은 자를 교정 교화하여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명목상 이념에만 머물러 있어 지금까지 교육교화 담당 부서가 찬밥신세로 전락한 것이야 말로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고, 이는 교정교화를 강조하는 우리 교정행정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 향후에는 사회복귀과를 2개 과(교육과, 사회적응과)로 기능을 확대 개편하여 ‘교육과’는 교육프로그램 개발 및 지원, 인성교육 등 각종 교육 실시 및 평가 업무, 교도소 도서관 운영 업무를 담당하고, ‘사회적응과’는 가족 및 사회 유대관계 유지 및 회복 업무(귀휴, 가족 만남, 종교 등 교화행사, 중간처우, 서신)를 담당하여 교육업무를 명실공히 인력, 예산, 조직을 확대하고 전문성을 강화하여 그 실질을 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교도소 도서관 업무(Daum 브런치 #교도관 이야기: “교도소에 도서관을 짓다”)는 기존의 초보수준에서 확대 · 심화되어야 하고 향후 교정행정의 상징(symbol)이며 중심(center)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교정교화 업무도 문제가 많지만 우리 교정행정이 형기가 종료하여 사회로 나가는 재소자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재소자가 출소하면 교도관이 할 일은 끝났다는 인식이 있고 그 기저에는 무사안일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경제적 기반 악화나 가족이 해체된 출소자는 재범으로 다시 교도소로 돌아올 확률이 통계로만 보아도 50%이니, 실질적인 출소자 지원 대책이 절실한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존의 '직업훈련과' 업무에서 ‘출소 지원과’를 신설하여 취업・창업을 이곳으로 이관하고 석방 예정자 교육, 출소자 관리 및 출소자 사회적 기업 연계 지원 업무(Daum 브런치 #교도관 이야기: “출소자 사회적 기업”)를 담당하여 출소자가 사회에 나가서도 실질적으로 경제적 자립을 달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부분까지 교정행정의 손길이 뻗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특히 출소자 사회적 기업 연계 지원 업무는 교정행정에서 향후 수용자 재범방지를 위한 핵심 업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과 같이 일련의 일선기관의 조직 혁신이 필요한 이유는 중앙기관 부서와 마찬가지로 일선기관도 각 부서가 병렬적으로 독립되어 있어 기능적 협력이 원활하게 되지 않아 장애가 발생하는 경우를 방지하여 수용 초기→중기→말기→출소 각 단계가 중도에서 단절되지 않고 상담→교육→사회적응→출소 지원으로 이어져서 실질적인 단계적 처우가 지속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일도양단으로 명확이 구분되는 것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진실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모순, 역설, 아이러니, 은유와 비유적 수사들 속에 숨어 있어 찾아내기 쉽지 않지만, 우리들 삶에 내재된 번민과 고뇌는 무의미의 연속이 아니라 그 한계를 깨고 나오려는, 사유의 지평을 넓히려는 의미있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지난 세월 뺑끼통으로 대변되는 더럽고 암울한 감옥의 정체성을 개선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으로 수용환경에 많은 변화가 있어왔습니다. 악취로 전 사동이 진동하는 뺑끼통에서 현대적인 양변기로 교체, 하루 종일 거실문을 수도 없이 일일이 열쇠로 여닫다 보면 퇴근 무렵에는 손목이 시큰해지는 고통에서 버튼 하나로 거실문 전체를 통제할 수 있는 전자제어 시스템으로 교체, 겨울이면 차가운 냉기가 올라오는 거실 바닥을 난방시스템으로 교체, 세련된 신축 교정시설까지 수용환경 개선에 있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온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물리적 환경개선이라는 양적인 관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근본적으로는 교정행정의 본질이라는 관점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단순하게 범죄자의 형을 집행하는 목적 하나로만 교도소라는 구금시설이 존재한다면 교도소 담을 넘어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교정행정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교도관에게 구금 업무는 이 역시 중요한 일이지만 우리 국민 일반은 이와 동시에 재소자들이 다시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들의 악한 마음을 선한 마음으로 돌리라는 엄중한 책무를 교도관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실 교정행정에 대한 모든 문제의식의 근원은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시작되고,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증이 교차하며, 교도관의 회의와 번민, 희망과 열정이 있으며, 결국 교도관의 존재의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대 교정행정의 방향이 과거 보안 위주 수용관리 방식에서 교육교화, 심리치료, 출소자 지원대책, 회복적 사법 등으로 전환하는 시점에서 과거에는 효율적이었던 보안 위주 수용관리 방식이 도리어 방해 인자로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보안 위주 관리방식이 유효하였을지 모르나 양적, 질적으로 규모가 확장되는 새로운 교정행정 구조로 전환되는 지금 상황에에서는 몸에 맞지 않는 옷과 같이 부자연스럽기만합니다.
교정본부가 법무부 내에서도 직원수 대비 거대한 조직이면서 법무부 예산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면서도 중앙에 정책이나 연구개발이 취약한 허약한 중앙 조직과 인건비가 예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정책이나 연구개발에 투자되는 비용이 미미한 상황에서 폭발적인 현대 교정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심각한 불균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견제와 균형의 관점에서 검찰처럼 권력기관도 아닌 교정본부가 과도하게 법무부에 기속 되어 견제받는 것은 날로 중요성이 높아지는 현대 교정행정의 기능과 역할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고유한 교정행정의 독자적 성격을 발현시키지 못하고 과거처럼 검찰 등의 종속변수로만 기능하려고 한다면 우리 스스로 교정의 독립성을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것입니다.
지금 교정행정의 세계적인 추세는 보안의 기초 위에서 수용자 교육교화 강화와 현대 교정 수요의 증가로 인한 그 고유한 업무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쪽으로 방향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 교정행정도 과거의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 새로운 기능과 역할을 추구하고 받아들여야 할 때입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법개혁의 취지를 최대한 살려 교정본부가 명실공히 인사, 예산, 조직면에서 외청으로 독립하여 늘어나는 교정행정 수요에 실효적으로 대응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교도관만큼 재소자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정신과 의사, 상담전문가 등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여행자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여행지에 대한 신기하고 특이하고 설레는 여행자의 마음은 그곳을 떠나면 추억이 되고 잊혀지고 그걸로 끝입니다. 대학에서 연구를 하는 강단 교정도 현장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여태까지 법무부 내 하나의 보조기관에 불과한 교정본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과거 교정정책이 교도관의 고유한 시각이 아닌 속칭 힘 있는 타자의 시각으로 재단되고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를 경험한 적이 수없이 많았으니 말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세상에서 교도관만큼 재소자를 잘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경찰・검찰은 범죄 수사의 전문가이고, 법관은 형사 재판의 전문가 이듯 교도관이 범죄인 교정교화의 전문가인 것은 맞지만 전문가라는 틀에만 함몰되어 복잡다단한 이 세계에서 삶의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자칫 교정이라는 협소한 틀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는 우를 범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혹자는 교도관의 자질 문제를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 교도관 중에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감옥을 지키는 그 옛날 ‘간수’의 마인드를 깨부수고 나오지 못하면 제아무리 인재가 차고 넘쳐도 교정교화 전문가는 언감생심 먼 나라 이야기일 뿐입니다. 요즘 수용자 인권문제만 나오면 서로가 극단의 논리로 맞서게 되는 상황으로는 현재와 미래의 교정행정을 담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수용자의 인권이 절대적으로 배제되는것이 아니라 범죄피해자의 인권, 새로운 교도관의 인권과 조화를 이루는 접점을 찾아가는 사고의 전환이 모두에게 필요한 시기입니다.
미래를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에 대한 창조적 파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것은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와 신념의 문제일 것입니다.이제 우리 스스로의 역량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우리 의사와는 상관없이 외부로부터 강제로 변화를 당하거나 정체된 채로 터덕터덕 퇴보의 길을 걸을 것입니다. 지엽말단에서 벗어나 교정행정을 바라보는 관점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기가 도래했다고 교도관 모두에게 우리 시대가 손짓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전혀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할 길 위에서 지금 어느 길을 갈 것인지 우리 앞에 운명적인 선택이 가로놓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