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착각

by 키다리 아빠

얼마 전 호수공원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집앞 슈퍼마켓에 들러 물건값을 계산하려고 계산대에 갔더니 대학생 정도 되는 핸섬한 청년이 저를 보더니 산 물건을 담을 종량제 봉투가 걸려있는 쪽을 가리키며

대뜸 "big or small(size)?"이라고 하길래 순간 당황하며 속으로 "이건 뭐지? 슈퍼마켓 주인 아들이 외국 유학갔다 잠시 집에 와서 부모님을 도와주는 것인가?"라고 지레 짐작하고 "big으로 주세요?"라고 했더니 그 청년이 당황하는 눈빛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하다고 하며 절보고 자주 여기에 들르는 외국인으로 착각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전세계에 만연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제가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린 데다 190센티에 100킬로였으니 언듯보면 외국사람 이미지와 비슷했었나 봅니다. 물론 그 청년은 슈퍼마켓 주인 아들도 아니고 외국 유학생도 아닌 그냥 알바하는 대학생이었습니다.


마켓을 나오면서 서로의 잠깐의 착각이 빚은 에피소드를 생각합니다. 착각은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 착각을 제자리로 돌리면서 우리들의 대상에 대한 인식의 불완전성을 생각합니다. 살아오면서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것들이 사실은 자신만의 착각에 불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마음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경향성이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을 겁니다. 특히 그러한 경향성은 가족, 친구, 연인 등 친한 사이일 수록 강합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경우가 많은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한두번 그러고 나면 나중에는 지나치게 남을 믿지 않는 상황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삶속에서 지나치게 남을 믿지 않거나 정반대로 지나치게 의심의 여지없이 믿는 경우가 문제를 일으킵니다. 특히 이것은 불신을 죄악시하는 이단 종교의 신앙심에서 극에 달합니다.

성경이라는 텍스트 자체를 그대로 확신하게 되면 성경의 모든 구절이 자신이 확신한대로 해석되어질 가능성도 매우 높아지게 됩니다. 실제로는 해석의 여지가 다분하고 상당한 간극이 있음에도 그 확신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죠.




요즘 전세계를 공포와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이제 우리 교정시설에도 발등의 불이 된지 오랩니다. 수용자들이 다닥다닥 좁은 공간에 밀집되어 있는 감옥의 특성상 바이러스가 한번 퍼지면 걷잡을 수 없기에 유입될 소지가 있는 요소를 사전에 원천 차단하고 방역에 총력투쟁을 벌이느라 밤낮이 따로 없습니다.


교도소 정문을 들어오기 전에 모든 직원과 외부인은 발열검사를 통과해야 하고 모든 신입수용자는 발열검사 및 문진표를 작성하고 일단 격리수용동에 2주간 격리후에 이상증상이 나타나지 않을때만 일반수용동에 수용하며, 발열 등 의심증상이 있는 수용자는 즉시 외부병원에 설치된 선별진료소에 가서 검사를 실시하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엄중 격리된 시설에 수용하며, 직원은 출근이 금지되고 일정기간 자가격리를 감수해야 합니다.

또한 비대면 방식의 모바일 접견을 제외한 직접 방문접견이 잠정적으로 중지되고, 구내에 설치된 공중전화로 접견을 대신하며, 코로나 사태가 진정될때까지 교정시설간 수용자 이송이 중지되고 각종 집합교육 및 공동행사도 중지되었습니다.




이렇듯 교정시설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가 하루하루 피말리는 전염병과의 사투를 벌이는 이러한 중차대한 시기에 언론에서는 연일 일명 '신천지'라 불리는 단체가 일반교회에 몰래 속칭 '추숫군'을 잠입시켜 신도를 포섭하거나, 한 사람을 포섭하기 위해 여러명의 신천지 교인이 자신들의 신분을 숨기고 합동작전을 펼치는 밀교형식의 전도방식을 고수하고, 이렇게 교인이 된 신도는 전재산을 그곳에 다바치고 어린 자녀도 버리고 가출하거나 이혼으로 가정이 파탄되는 지경에 이른다는 보도내용으로 가득합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지금의 코로나사태를 두고 자신들이 말하는 심판의 날이 왔다고 하며 요한계시록에 나온다는 14만4천명만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를 절대적으로 믿고, 코로나바이러스가 양성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숨기고 의료기관에서 선별검사도 받지 않고, 심지어 공직자 중에도 자신이 신천지 교인임을 숨기고 코러나 검사를 받지 않고 있다가 발각되는 경우도 있으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호소하는 정부의 외침에도 기어코 밀집된 교회에 모여 자신들만의 예배를 강행하는 신천지 교회의 비상식적인 대응에 충격을 넘어 경악하면서 문득 그 교인들의 비협조적인 자세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비협조를 통해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것을 상쇄하고도 남을만한 자신들만의 신념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아마도 그들은 자신을 가을 추수철에 가라지속에서 알곡을 골라내듯 악한자 속에서 선한자를 선별하는 추숫군이라 칭하며 지금 코로나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기가 심판의 날이라고 믿으며 심판의 날에 선택된 일부만 천국으로 간다는 교리를 내세우는 성경의 구절을 신봉하는 듯 합니다.




철학자 도올 김용옥은 자신의 책 "도마복음 한글역주"에서 현존하는 기독교 복음서 중 가장 예수의 말을 오리지널한 모습 그대로 전달하는 복음서는 '도마복음'이라고 말합니다. 그 중 신천지 교회가 교세확장의 방법으로 가라지와 알곡, 추숫군을 인용하며 주로 내세우는 복음서인 마태복음 구절을 도마복음과 서로 비교하여 주석을 단 도올의 해석을 보는 것은 현재의 신천지 사태를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도마복음 제57장)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의 나라는 좋은 씨를 [심은 밭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도 같다.그의 원수가 밤중에 몰래와서 그 좋은 씨들 사이에 가라지를 덧뿌렷다. 그러나 그 사람(밭의 주인)은 종들을 시켜 그 가라지를 뽑게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들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내버려 두어라! 너희가 가서 가라지를 뽑으려 하다가, 가라지와 더불어 좋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왜냐하면 추수의 그날에는 가라지는 현저히 드러나게 마련이므로 뽑히어 불사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본 장에서 우리는 마태에만 나오는 그 유명한 "가라지의 비유"의 원형을 발견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마태라는 복음서의 저자가 도마의 원자료를 활용하여 어떻게 불리고 어떻게 종말론적 해석을 가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대비적으로 검출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13:24~30)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때에 그 원수가 몰래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라. 그리하여 싹이 나고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도대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겨난 것이오니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가로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때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곡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태는 도마의 간결한 논리구조를 마태교단의 사정과 관련하여 부풀리고 있다. 26절부터 28절까지의 종들과 주인의 대화양식은 마태의 확대부분이다. 뿐만아니라 마태는 이 비유를 해석함으로써 최후의 심판이라는 종말론적 협박을 아주 명료하게 못박아놓고 있다. 제자들이 가라지의 비유를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간청하자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태복음 13:37~43)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자는 인자(人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다. 그리고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날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자들과 악행을 일삼은 자들을 추려 내어 모조리 풀무 불구덩이에 처넣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그때에 의로운 자들은 그들의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과연 마태가 해설하는 그런 시각에서 이 가라지의 비유가 이해되어야만 할것인가? 마태가 열정적으로 열불을 올리고 있는 것은, 세상이 끝나는 마지막 심판의 날에 선인과 악인이 갈리는 무서운 결말이 도래하리라는 그 결론적 사실에 대한 협박이다.
(중략)
도마의 비유에서 감지되는 아버지의 나라의 모습은 "시간적 긴박성"이 아니라 "여유로움"이다. "추수의 그 날"이 마지막 심판의 날이라는 보장도 전혀 없다. 추수는 직선적 시간의 최종극점이 아니라 항상 반복되는 자연의 순환점이다. 여기 도마의 시간관은 직선적(linear)이 아니라 순환적(circular)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사실은 선과 악의 공존에 대한 관용이다.
(중략)
선과 악은 반드시 공존할 때만 선과 악일 뿐이다. 그것이 지금 악의 씨라고 해서 미친듯이 뽑아 버리는 그러한 짓을 천국에서는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완벽하게 성숙하기 전까지는 그 악함을 다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선한 씨와 같이 섞여서 자라나는 끝에 최종적으로 악한 것으로 판명되었을 때(현저하게 드러났을 때)자연스럽게 제거되는 것이다.

# 가라지: 지자니아(zizania). 학명- 롤리움 테물렌툼(lolium temulentum). 보통 다넬(darnel,毒麥 독보리)이라고 부름. 레방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독초(毒草). 보리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독성이 있음.




이 세상에서 악인으로 치자면 각종 죄를 짓고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들만큼 악인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하느님의 심판을 받고 교도소에 들어온 것은 아닐 테고, 더더욱 태어날때부터 누구는 악인으로 태어나고 누구는 선한자로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삶은 자신의 생각과 해석이 낳은 행동의 결과물이지 본질적으로 하느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이를 하느님과 연관지으려는 시도 자체가 미신일 것입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천벌론'이 있습니다. 극악한 죄를 짓고도 스스로 죄를 반성하지 않고 잘먹고 잘사는 자에 대해 우리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하늘의 힘이라도 빌리고 싶은 마음에서 기원하는 '천벌론'은 단지 감정풀이로 유효할뿐 이 또한 미신에 불과할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생각자체가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마음의 집단감염 사태는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스스로가 지은 죄이다라는 생각이 자신에게서 온전히 일어나면 그것이 바로 '갱생(更生)'이고 그렇지 않으면 평생 윤회를 거듭할 뿐입니다. 착각은 시간의 장단이 있을뿐 삿된 종교나 사상으로 세뇌된 마음은 단지 아주 오래된 착각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 착각에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오래된 만큼 더 힘이 들겠지요. 우리는 생각하는 만큼 생각하고 생각하는 만큼이 그 사람의 한계입니다. 평생 배운다는 의미는 이것저것 자격증을 따서 쌓아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은 자신을 옭아매는 평생 배워온 낡은 지식이나 허튼 신념에 대한 버림의 용기는 아닐까요?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Δε φοβούμαι τίποτα.

Είμαι λέφτερος)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1883~1957 , 그리스 크레타 섬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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