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성장을 마냥 축하하기엔 생각이 너무 많아
아들+사춘기+중증 자폐=최강 조합
아이가 언제부턴가 달라졌다.
여전히 아기 같은 얼굴로 웃고 따르지만.
아침마다 불쑥 나타나는 신체적인 변화,
가끔씩 내는 목소리가 탁해지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굵어진 걸 보며
아이에게 사춘기가 왔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컸구나.
크고 있구나.
너에게도 싱그런 젊음이 오는구나.
주체할 수 없는 마음과 몸에 힘들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더 넓고 깊어지겠지.
곁에서 널 언제나 사랑하고 또 응원하는 엄마아빠가 있단 걸 기억해 주고 언제든 기대렴.
이런 응원을 해주고 싶지만,
복잡하고도 무거운 생각들로 종잡기 힘들다.
첫 번째 생각.
아직도 갈 길이 먼데.. 벌써? 시간이 없다.
- 아이의 시간은 너무나 빠르다. 여전히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고 나와 남편 없이는 스스로 해내는 것들이 턱없이 부족한데 마감기한 지난 업무처럼 마음이 바빠진다. 아이를 하루종일 가르쳐도 어른이 되기 전에 다 배우고 익힐 수 있을지 걱정이다.
두 번째 생각.
지금까지는 맛보기였다? 상상초월로 힘들어지는 건가? 마음 단단히 먹자.
-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어려움은 세 발의 피였다는 선배엄마들의 말 때문인지 반가움보다는 두려움이 더 크다. 나름 열심히 키웠고 잘 자라주었으나, 사춘기 때 엄마도 지쳐(보통 엄마들은 완경기다 보니) 다 내려놨더니 아이가 걷잡을 수 없이 퇴보했다는 지인 분의 경험담이 가장 두렵다.
세 번째 생각.
내가 제어할 수 없어진다면?
성인이 된 아이가 갈 곳이 없다면?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걱정이다.
- 어디로 나갈지 몰라 n 중 잠금을 한 집, 어른이 된 중증 자폐 아들 몸과 자신의 손을 끈으로 묶어 종일 이곳저곳을 같이 다니던 모자를 티비에서 본 적이 있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몸과 세진 힘은 타의로 아이를 움직이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갈 곳이 없게 된다면 나와 아이는 형태만 다를 뿐,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온갖 곳을 헤맬 것이다.
사춘기.
사실 지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아이가 한바탕 힘든 시간을 보냈다.
예측불허의 아이의 짜증과 폭력성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던 적이 있었다,
짜증이 나면 꼬집었고 그 상처는 생각보다 깊고 아팠다. 더 큰 문제는 대상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
잠든 아이를 깨워 등교 전 가볍게 오르막길이나 한적한 길을 20분 정도 걸었고,
일상을 예측 가능하도록 시각적으로 알아보기 쉽게 스케줄을 제시했고,
선택지를 주어 의사표현의 기회를 주었고,
스스로 아니오라고 말하거나 쓰게 하여 싫은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대체행동을 보다 잘 사용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뭐가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게,
다양하게 접근했고
다행히 아이는 진정 국면을 맞아 올해는 평화로웠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감정기복이 사춘기 때문이었나 싶다.
"짜증 나" 한 마디를 하거나
친구랑 놀면서 풀어질 법도 한데 그러질 못하니
점점 쌓였을 것이다.
사춘기 아들.
게다가 중증 자폐.
이 두 조합만으로도 충분히 험난하고 어려울 시기를 잘 보내보려 한다.
좀 더 행복하게.
좀 더 수월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