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서 나는 더 이상 울지 않게 되었다
강원도에서의 여덟째 날, 친구 민이에게서 안부 문자를 받았다. 강원도는 어떻느냐고. 거기서는 울지 않고, 잘 지내고 있냐는 물음에 그제서야 나의 짧은 강원도살이를 되돌아 볼 수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울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8일 내내.
서울에 있는 동안 밥을 먹으면서도, 걸어가면서도 그치지 않던 눈물이 여기서 멈췄다. 강원도에 오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가 3개월 동안 그치지 않던 눈물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였다. 시도때도 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나를 보며 조이가 말했었다. 언제부터 그 마음에 병이 들었었던 거냐고. 그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 내 마음에 병이 들었다는 사실을. 울지 않게 된 지금도 그때 조이의 말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울컥하다. 금방이라도 다시 눈물을 쏟아낼 것 같다. 그래서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닫는다. 이제 울지는 않지만, 아직 마음의 병이 다 나은 건 아니라는 사실.
<일단 일주일동안 울지는 않았어>라고 답장을 보냈다. 민이는 그거면 성공이라고 말했다.
쉬려고 강원도에 왔건만, 사실 많이 쉬지는 못했다. 오히려 아주 바쁜 일주일을 보낸 듯 하다. 3일 내내 서핑을 했고, 일을 그만두는 용기도 냈다. 그저께는 도망치듯 대한민국 최북단에 다녀왔다. 7일 동안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기에는 꽤 많은 일이었다. 사실 강원도에 살아보겠다고, 처음 용기내어 적었던 날에 꿈꿨던 강원도살이와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난 그저 나른하게 해가 중천에 뜰 무렵 일어나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는 일상을 바랬었는데. 지난 일주일은 여백 없이 채워진 듯 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여백이 있으면 있었던 대로, 없으면 없었던 대로 괜찮았다. 그냥 그 나름대로 강원도에서 보낸 시간들이 내 인생 한 켠에 새겨지고 있었다.
강원도에 있는 동안 나는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일, 자연, 쉼, 번아웃, 친구, 사랑, 그리고 가족 같은 것. 그 중에서도 병든 내 마음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했다. 잘 살아오던 내가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아프게 되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하다 보니 알게 된 것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의 병은 사랑과 참 많이 닮아 있다. 사랑이라는 순간이 그렇지 않은가.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를 설명하기 어렵다. 이미 사랑하게 되었는데 이유와 때를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 웅크리고 있는 내 마음을 스스로 조명하여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 마음에 대해 어떤 액션을 취할 것인지 또는 취하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마음의 병을 다루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 전에 먼저 아픔을 알아봐 준 친구들에게 감사하다. 그게 병이라는 걸 몰랐기에 스스로 일시정지 버튼을 누를 수 없었던 나에게 잠깐 멈출 수 있는 용기를 준 것에도 감사하다. 마음의 병을 핑계 삼아 나를 지탱하는 많은 사랑을 깨닫는다. 마음의 병과 사랑은 이렇게나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