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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choice Jul 14. 2023

어떤 강원도살이는 이렇게 끝난다

잡음으로 가득한 도시에서는 알 수 없었던 것들

강원도에서 한 일주일 지냈더니 마음이 많이 편해지고 번아웃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로 끝나는 아름다운 여정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여전히, 일주일 정도는 크게 아파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적고 있다.


강원도에서의 아홉째 날 밤, 양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후였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강원도에 온 이후 처음이었다. 잊고 있었던 불안이 갑작스레 마음에 들이닥친 것이다.


원인은 5일 후에 있을 이사였다. 정해진 퇴사일에 맞춰 짐을 정리하고, 비어있는 동생 집으로 이사를 갈지 본가로 내려갈지를 선택해야 했다. 애초에 짐이 별로 없어 정리하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이 문제였다.


선택지가 단 두 개 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결정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아무런 선택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이 들었다. 감당할 수 없는 불안과 스트레스가 마음을 잠식했다. 그날 밤 참 많이도 울었다.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일찍이 서울로 출발하는 버스표를 끊고 강원도를 떠났다. 남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어젯밤이 강원도에서의 마지막 밤이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해결해야 하는 일에 대한 불안감이 너무 커져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었다. 강원도와 서울을 잇는 양양고속도로를 지나며 나는 두 시간 내내 뚝뚝 눈물만 흘렸다. 할 일을 외면하고 강원도에 남을 수도, 복잡한 서울에 남아 생활을 이어갈 수도 없었다. 어느 곳에 있어도 하루하루 지옥이 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열흘 간의 강원도살이는 어이없이 끝나게 되었다.




서울에 돌아온 이후, 반나절 만에 모든 짐을 정리했다. 당분간 혼자 서울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동안 서울에서 나의 삶을 지탱해줬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싸는데, 자꾸만 눈물이 났다. 짐을 하나 올리면 그 위에 눈물이 툭 하고 떨어졌다. 그러면 조용히 그 위에 다른 짐을 올렸다. 그동안 이 방에서 어떻게 웃으며 살아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음 날 나는 본가로 내려가는 차에 짐과 몸을 실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조금 막막했다. 그래도 조금만 막막해서 다행이었다. 아직 버틸 힘이 남아있는 듯 했다.



그저 이유 있는 삶을 살고 싶을 뿐이었는데 그랬다. 누가 왜냐고 물었을 때 확신을 갖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랬다.


누군가는 이유보다는 그냥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고, 또 다른 누구는 시간에 맞춰 일을 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 모든 것이 정답이다. 그리고 여전히, 나에게는 이유가 있는 길을 가는 것이 정답이다.


질문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고 하지만 나는 답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인생이란 똑같이 주어진 삶이라는 질문에 나만의 답을 하며 살아내는 것이다. 사회의 표준에 그냥 등 떠밀려 가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연결짓는 다양한 선택의 이유를 직접 설명하는 사람이고 싶다.


강원도의 파도 앞에서 나를 무너뜨리는 두려움을 만났다. 그리고 자신만의 인생을 선택한 사람들을 보며 조그만 용기를 얻기도 했다. 어떤 날은 그 용기로 힘차게 파도를 타고 나아가 보았다. 그러다 지쳐 주저앉고 싶을때쯤, 멀리서도 나를 지탱해주는 사랑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 사랑들에 기대어 조금씩 숨을 쉬어 본다.


열흘 간의 강원도살이는 어이없이 끝났지만 허무하진 않았다. 나는 강원도 땅에 발을 딛고 서서 무엇으로 삶을 채워나가야 하는지를 보았다. 도시를 가득 채운 잡음 속에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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