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청년들이 살아가는 방법
지난 1년간 강원도에 거의 살다시피 드나들었지만 양양 읍내는 처음이다. 양양에 들르더라도 늘 바다에 용건이 있었기 때문에, 육지에 발 디딜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굳이 양양에 대한 선명한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작년 어느 여름밤이 있다. 밤 여덟 시쯤 자주 가던 식당에서 친구와 함께 떢볶이를 먹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다른 친구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우리 지금 서핑 간다~'는 내용이었다. 짐이고 뭐고 아무것도 챙겨둔 게 없었지만, 나도 데려가라며 먹던 떡볶이를 내팽겨치고 식당을 뛰쳐나왔다. 그렇게 처음 양양 죽도로 가는 길에 올랐었다.
양양이 강원도의 핫플레이스라더니 진짜였다. 나는 그곳이 정말로 강원도가 아니라 홍대의 어느 골목이거나 강남인 줄 알았다. 새벽까지 번쩍거리는 불빛과 펍들과 포차들과 그곳을 단 한 자리의 여백도 없이 빼곡히 채운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다. 너무 놀라웠다. 그리고 이후 죽도와 인구는 다시 찾지 않게 되었다. 거긴...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과한 힙함이었다.
그랬지만 어쩌다 오늘의 목적지는 양양 읍내가 되었다. 친구의 볼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네이버 지도를 켜고 양양 읍내를 미리 탐방했다. 평면으로 된 양양읍을 이리저리 꼬집어 보고 돌려 보았다. 병원도 있고, BBQ도 있고, 신전떡볶이도 있고…. 익숙한 이름들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크기가 꽤 컸다.
“오, 생각보다 있을 것도 다 있는데?”
“읍이면 아무래도 꽤 크지~”
동과, 읍과, 면과, 리의 섬세한 차이를 피부로 느끼며 살아보지 못한 나는 금세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아무래도 양양은 사람들이 많이 찾을테니, 어떤 골목은 인구처럼 핫플레이스로 꾸며져 있지 않을까? 막 아파트도 되게 많을까? 그래도 꽤 큰 도시 같을까? 그런 상상을 하며 9번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도착한 양양 읍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사실 내가 지도에서 본 것들이 그대로 있긴 했다. BBQ, 김밥천국, 맘스터치, 마라탕집까지. 그런데 그들이 배치된 구조와 주변 풍경이 나의 상상과 많이 달랐을 뿐이다.
우리는 길을 따라 걸어가며 양양 읍내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꽤 많았다. 특히 학교를 막 마친 듯한 교복 입은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들다가 분식집 안으로 유유히 사라지곤 했다.
한참을 걷다가 내가 물었다.
"근데, 여기 애들은 진짜 뭐 하고 놀지? 서핑 아니면 휴대폰 말고는 학원도 없는데?"
"딱히 뭐 할 건 없지. 그냥 노는 거 아니면 운동 뿐이지. 밖에 나가서 놀고, 실컷 운동하고...."
"서울이었으면 할 게 많았을지도 모르는데. 지하철 타고 어디 가보고 뭐 매번 새로운 게 생기니까."
"아무래도 그랬을지도 모르지."
그러다가 금세 저녁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양양 읍내에 새로 생겼다는 야끼토리 집에 방문했다. 서핑과 SUP를 탄다는 두 젊은 사장님이 함께 차린 가게였다. 전체적으로 빈티지하게 꾸며진 매장 내부 한쪽에 서핑보드와 패들보드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그 모습에서 그들이 서핑과 함께 살아온 수많은 날들이 그려졌다.
야끼토리 몇 꼬치와 하이볼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사장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서핑에 대한 이야기. 가게를 차리게 된 이야기. 그 이야기들을 여기에 다 담을 수는 없지만, 들으면서 생각했다.
여지껏 지켜본 강원도의 삶에는 여백이 많았다. 아니, 그래 보였다.
강원도에 오가면서 도시의 몇몇 사람들이 '시골 사람들은 거기서 뭐 할 거 없잖아'라고 치부하는 말들도 간혹 들어왔다. 내가 양양 읍내서 본 아이들이 무엇으로 하루를 보내는지 궁금했던 것처럼.
할 게 많은 것이 좋은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강원도의 아이들은 적어도 학원에서 하루를 다 보내지는 않는다. 소위 '핫플'이라는 곳을 찾아다니기 위해 돈과 시간과 노력을 쏟지 않는다. 내가 만난 강원도의 청년들 역시 집 한 채 마련하는 것에 삶의 목표를 두지 않는다. 그저 좋아하는 일을 오래도록 할 수 있도록 돈을 벌고 성장해 나간다. 회사에 기대지 않고 안정적인 삶을 일구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노력한다.
그들은 많아 보이는 여백을 자신의 삶으로 온전히 채워 나가기 바쁘다. 미래에 더 잘 살기 위해, 더 큰 무엇이 되기 위해 현재를 바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지금' 무엇이 된다.